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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큼이나 깊은, 오로라만큼이나 아름다운 우정

2015.06.23.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인연. 천문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20여 년 밤의 유산을 지켜온 두 사람의 인연이 놀랍다.

권오철 천체사진가(왼쪽), 이태형 천문학자(오른쪽)
권오철 천체사진가(왼쪽), 이태형 천문학자(오른쪽)

권오철 천체사진가_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인 최초로 NASA ‘오늘의 천체 사진’에 선정된 바 있으며 전 세계 천체사진가 모임인 TWAN(The World At Night)의 멤버이자 한국 최고의 별 사진 전문가다.

이태형 천문학자_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재학 중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발간했으며, 국내 처음으로 영월과 대전 등에 시민천문대를 세웠다. 현재 천문우주기획의 대표로 대중에게 별을 알리기 위해 활동한다.

후배 이야기, 한 권의 책으로 바뀐 인생

세계적인 천체사진가로 인정받는 권오철 작가의 이력은 그의 직업만큼이나 독특하다.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과 벤처를 오가며 잠수함도 만들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했어요.” 도무지 ‘별’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떻게 천체사진가가 되었을까? 그것도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국내 초중고 과학 교과서에 실릴만큼이나 대단한 사진을 찍는 작가로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꿨죠.” 고등학생 시절에 읽은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란 책이 권 작가에게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천문 동아리에서 대학 시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것도 이 책의 영향이 컸다. “당시 책의 저자가 서울대학교 출신이고, 이 동아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나이가 9년 차이라 계속 있을 줄은 몰랐죠.” 활발하기보단 조용한 편에 속했던 권 작가는 그의 영웅, 선배 이태형과 그렇게 조우했다. “선배는 동아리에서도 여러 활동을 했어요. 아이들에게 별을 알려주는 일이나, 잡지 등에 기고하며 사람들에게 별을 알렸죠. 그러면서 PC통신 동호회도 만들었는데, 제가 거기에도 가입하면서 조금씩 친해졌어요.”
그렇게 시작한 인연으로 20여 년의 우정을 쌓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니까 일주일 만에 전화가 왔어요. 같이 놀자고요. 그때 코가 꿰어서 사장과 직원으로 일하게 된 거예요(웃음).” 권오철 작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별을 찍는 천체사진가로, 선배 이태형 천문학자는 별을 알리는 사람으로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인터뷰가 있기 몇 주 전에도 같이 오로라를 보고 왔다는 권 작가는 기억에 남는 여정으로 호주에서 마주한 개기일식을 꼽았다. “베스트 포인트를 찾기 위해 노숙하며 산을 돌아다녔어요. 나중엔 호주 사람들도 우리가 찾은 곳으로 오더군요.”
한때 자신의 영웅으로, 이제는 같은 곳을 향하는 동료로 우정을 쌓고 있는 두 사람. 권오철 작가는 말한다. “선배는 꿈이 있는 사람이에요. 별로 시작된 꿈을 계속 키워가는 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것도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별을 알려주겠다는 꿈이잖아요. 저는 그 꿈에 기생하고 있는 거예요.”

선배 이야기, 별지기의 한결같은 꿈

“취미로 시작했어요. 좋아서 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은 이태형 천문학자가 대학원생 시절 사람들에게 별을 알리기 위해 쓴 책이다. “당시 전국의 천문 동아리에 신입 회원 수를 두 배 이상 올리는 데 한몫을 했죠.” 그를 따랐던 수 많은 후배가 동아리에 가입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파트너이자 동료지만, 당시엔 까마득한 후배였던 권오철 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 친구가 굉장히 조용하거든요. 그런데 동호회에서도 또 만나고 왜 이렇게 나를 따라다니나 싶었어요.”
권오철 작가가 기업에 다니며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태형 천문학자는 별을 알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천문대에 데리고 가요. 그리고는 ‘앞으로 너의 무대는 여기(지구)가 아니고 저기(하늘)다’라고 하죠. 마을마다 천문대가 있는 이유예요.”
그는 우리나라에도 천문대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영월, 대전, 김해 등에 시민천문대를 기획했다. 돈이 좀 생기려고 하면 계속 일을 벌였다. “사람들에게 천문대를 보급하려니까 잡지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창간했어요. 일단 홍보하려면 영상이나 그림이 좋아야 하잖아요. 그때 카메라를 맡아줄 이 친구가 있었던 거죠.”
회사를 다니면서도 틈틈이 사진을 찍었던 권오철 작가는 회사를 나옴과 동시에 본격적인 천체사진가의 길을 걸으며 국내 천체 사진의 정점을 찍는다. “이 친구 사진 찍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해요. 기본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재능을 돋보이게 하는 건 열정과 끈기거든요. 단순히 별을 좋아한다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이태형 천문학자는 이제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예전엔 별 사진을 찍었지만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신 잘 찍는 사람을 밀어주자 결심했죠.”
20여 년 전, 수많은 사람을 밤하늘에 빠져들게 한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의 개정판이 나왔다. 책 속의 사진은 이제 권오철 작가의 사진으로 모두 바뀌었다. “우리는 서울에 천문대를 짓는 게 꿈이에요. 잘되면 5~10년 후 이곳에서 권오철 작가의 사진을 보며 별을 이야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