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푸른 하늘보다 넓고도 깊은 한시의 세계

2015.12.15.

동양 시문학의 기틀이 되는 두보와 이백. 이영주 교수는 천 년 전 지어진 그들의 시를 연구하고, 번역한다. 최근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이백의 시 완역에 성공했다.

중어중문학과 이영주 교수
중어중문학과 이영주 교수

30년, 한시(漢詩)의 길을 파다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강의한 지 올해로 27년째를 맞이한 이영주 교수의 연구실. 사방으로 빼곡한 책과 책상 위에 손때 묻은 지필묵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중어중문학을 연구하는 이영주 교수는 이곳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고,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그보다 오래 교수로서 교단에 섰다. 휑뎅그렁했던 관악산 아래 캠퍼스에는 하나둘 건물이 들어서고, 젊은 중국문학 연구자의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이 교수가 중국 고전 시가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그냥 한문이 좋고 한시가 좋아서 중문학을 전공했어요. 좋아했던 일에 몰두한 것뿐입니다.” 한국에서 중국 문학 연구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공동 한자 문화권이었던 역사적인 특성상 예로부터 중국 한시를 번역하고 소개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대표적인 중국 고전 시인의 작품 중 완역된 것은 몇 없다. 역자가 선택하여 발간한 선집과 달리 완역집은 시인의 시 세계 전모를 파악하게 해주는 것으로 방대한 노력과 집념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중문학 연구자로서 이영주 교수는 중국 시사 최고봉의 자리를 차지하는 두보(杜甫, 712~770)와 이백(李白, 701~762)의 시를 완역하기로 뜻을 세웠다.

1072수 이백의 시, 한글로 풀이하다

시성(詩聖)과 시선(詩仙)으로 불리며 천 여 수가 넘는 시를 남긴 두보와 이백은 중국 한시의 기틀을 완성하고 그 형식미를 최고조로 꽃피운 시인이다. 1481년 조선에서 두보 시의 세계 최초 완역본 <두시언해>가 출간됐으나 오늘날 읽기는 어렵다. 이백의 시는 역사적으로 완역이 시도된 적 조차 없다. 다수의 시가 언제 어디서 지어졌는지 알려져 있지 않고, 즉흥적으로 시를 지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전후 맥락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영주 교수는 25년 전 대학원생들과 함께 번역을 시작했다가 중단했던 이백 시의 완역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동료 교수와 함께 재개하여 마무리했다. “이백의 시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구가 많아서 가능한 맥락을 분석해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한문을 한글로 옮기는 차원이 아니라 상세한 해설이 필요한 이유다. 전 8권의 <이태백 시집>은 완역의 결과물이다.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 역대 연구 성과를 참조해 작품마다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시가 지어진 계기와 시대 배경을 설명하고 시 내용도 축약해서 소개했다. 덕분에 한시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백이 지닌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게 됐다. “호방한 필치와 멋들어진 표현이 가득한 이백의 시에는 슬픔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일반 인간과는 다른 특출한 존재가 되고자 했던 그의 꿈과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뇌가 담겨있는 것이지요.”

1300번의 화요일, 쉼 없이 연구하다

이백 시 완역 작업을 끝내고 나니 숙제 하나를 처리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이영주 교수.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남은 숙제가 있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연구자들과 25년 넘게 작업하고 있는 두보 시 1,405수의 완역이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개인적 연구는 잘 하지만 공동으로 연구하는 풍토가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하여 ‘두시독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 다양한 주석서들을 읽어보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시는 주관적인 예술이기에 번역하는 연구자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끈기와 집념은 고전 연구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다른 나라보다 늦게 완역에 도전하는 만큼 정확한 번역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공동으로 해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오류를 검토하며 진행하다 보니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정해진 글자 수와 규칙 아래 개인적 고뇌와 시대의 아픔을 녹여낸 한시는 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에게 크나큰 울림을 전한다. 한시에는 시대와 국경을 넘는 세계가 담겨있다. 이영주 교수가 거니는 한시의 세계는 걸을수록 그 경계를 확장한다.

<이태백 시집> (전 8권)

난해시(難解詩)라 불려질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이백의 시를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의 역대 주석가와 번역가의 연구 성과를 모두 참조하여 현재 남아있는 모든 시와 일부 구절만 남아있는 것까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냈다.

<두보의 삶과 문학>

두보의 작품을 조선 성종(1481)과 인조(1632) 시대 각각 번역해서 펴낸 <두시언해> 이후 최초로 두보의 시 완역을 목표로 하는 현대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모임 ‘두시독회’가 펴낸 7번째 결과물이다. 이영주 교수가 직접 표지 글씨를 적었다.

이영주 교수 | 이영주 교수는 1989년부터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국어문학회장, 한시협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唐詩)를 주로 연구하며 6권의 자작 한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자자의론>, <한국 시화에 보이는 두시>, <사불휴-두보의 삶과 문학>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