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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2016.02.02.

누구에게나 가장 평등한 진실 하나. 모든 사람은 죽는다. 먹먹한 절망 같은 이사실을 인간이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 말하는 의사가 있다. 국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개척자 윤영호 교수다.

윤영호 교수
윤영호 교수

뜨거운 심장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향해

바람이 코끝을 에는 겨울. 매서운 날씨에도 사람 과 차량의 기나긴 행렬이 서울대학교 병원에 이어 진다. 수많은 아픔과 희망이 피어나는 번잡한 병 원 한편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자리한다. 조용 한 건물에서 윤영호 교수를 만났다. 건네받은 명 함에는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글귀 와 그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 주소가 적혀있었 다.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글은 총 1,400여 개. 품 위 있는 죽음, 암환자의 삶의 질과 관련된 의학 자 료부터 경영 트렌드, 짤막한 영화평론, 자작시까 지 주제를 망라한 글이었다. 독서력이 느껴졌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요. 인문학적 소양이 의사 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치료 과정에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많은 도움을 줍니다.” ‘팔불충’이란 문예 모임을 만들 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뜨겁게 살았던 의예과 대 학 시절부터 경영, 철학, 심리 등을 아우르는 책이 가득한 연구실을 가진 교수가 되기까지, 그는 앞 선 발자취가 적은 길을 걸었다. “학생 때 가톨릭학 생회 활동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원목실에서 봉사 를 했습니다. 그때 위암 말기 환자분이 고통스럽 게 임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스피스 의료의 필요 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름도 낯선 호 스피스 의료는 성직자나 간호사의 영역으로 여겨 졌다. 그는 철학과 황경식 교수를 찾아 윤리학에 대한 배움을 청했다. 그리고 의료 윤리를 스스로 공부하며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틀을 잡아갔다. “<생의 윤리학이란?>을 시작으로 죽음과 윤리학, 응용윤리 등을 공부했습니다.” 책장에 빼곡히 꽂 힌 책들이 그 뜨거운 시절을 고스란히 증명해주는 듯했다. 윤 교수의 열정은 척박했던 사회 곳곳에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개념과 구체적인 실 천 지침을 정립하는 주춧돌을 마련했다. 2000년 국립암센터가 세워질 때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창 설해 통증관리 지침을 만들고, 말기 환자의 삶의 질 문제를 연구하며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해 한 단계, 한 단계씩 필요한 절차를 밟아 나갔다.

뚜벅뚜벅 걸어 길 위에 남긴 희망의 발자취

본과 4학년을 마친 윤 교수가 가정의학과를 전공 으로 선택하며 ‘호스피스 의료’를 하고 싶다 말했 을 때, 선배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2016 년 1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당 당히 통과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생명 연장이 불 가능한 임종 임박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나 심폐소 생술을 중단하는 이른바 ‘웰다잉 법’은 18년간 사 회 구성원의 치열한 논의 끝에 탄생했다. “임종이 임박해 생명 연장이 불가능할 경우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거나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것이 적절합 니다. 그런데도 행위를 함으로써 환자에게 고통 을 주고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상황은 의사와 환 자 모두의 윤리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윤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썼다. 정부, 의료 계, 종교계, 법조계의 이견을 조율하고, 1만4900 여 명의 동참을 이끌어내며 ‘호스피스 국민본부’를 설립했다. 인간중심적인 의료를 구현하는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계기가 된 이 법은 오랜 집념의 결 실이다. 하지만 윤영호 교수의 꿈은 끝이 아니다. “저는 인간이 가진 ‘질병’뿐 아니라 질병을 가진 ‘인 간’을 연구합니다. 앞으로의 병원은 치료 불가능 한 시점에서 환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생을 꾸려나 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그 질문은 자신을 절망의 나 락으로 무겁게 눌러 내릴 수도 있지만 더 나은 생 을 그려보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함께 했던 기억, 세상에 남긴 말과 글, 그리고 아름다운 유산으로 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된다. 그가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긴 모색의 길 위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은 여기 없는, 그러나 처음과 같이 영원히 함께할 사 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추억은 계속될 것이다. 윤 영호 교수가 말하는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삶의 생생한 모습이었다.

윤영호 교수 |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의과대학 교수 및 서울대학교 병원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내 호스피스·완화의료 연구의 권위자로서 국립암센터 설립 시 ‘삶의질향상연구과’를 창설했다.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등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