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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느 과학기술자의 평범한 나눔

2016.02.17.

“교수님! 정년퇴직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저에게 잘 보이세요!” 얼마 전 선배 교수님께 농담 삼아 한 말이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에다 ‘적정기술학회’ 회장을 한다고 농담처럼 조금 유세를 떤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년이 늦은 대학교수이지만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막상 정년 이후에 어떻게 살지 고민이다. “장소만 고르세요! 캄보디아의 프놈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네팔의 카트만두, 몽골의 울란바토르,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대학에서 할 일 만들어 드릴게요. 체류비 정도는 드릴 수 있어요.” 한번 시작한 농담은 산을 더해간다. 앞서 언급한 지역은 실제로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원들이 참여하고 활동하는 곳이다.

2009년 설립된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는 과학기술을 통해 나눔 활동을 하는 봉사단체다. 과학기술의 혜택이 인류에게 좀 더 고루 돌아가도록 애쓴다. 농업, 에너지, 바이오, ICT, 국제협력, 정책 개발 및 지원 등 모든 학문 분야를 망라해서 활동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재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의사들의 조직인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과학기술이라는 분야로 세계 빈곤 지역에서 헌신하는 과학기술자들의 모임이다.

몇 년 전 영양 상태가 부족한 어린이들을 돌보는 캄보디아 한 봉사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해당 지역민들이 먹는 물의 수원인 지하수가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긴 급수 장치의 동영상을 받고 원거리 컨설팅을 시작했다. 수질 분석과 간단한 공정설계로 식수 장치를 지원해주었다. 국내 후원단체와 정부 국제지원 프로그램 도움도 받았다. 큰 비용은 아니었다. 식수 장치는 설치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잘 사용되고 있고, 안전한 식수를 이웃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준단다. 코끝이 찡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굶주림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음향으로 세계적 오케스트라 연주를 집에서 듣고, 멀리 사는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는 등 편리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세계인이 이러한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안전한 물이 공급되지 않는 지역의 많은 어린이는 쉽게 전염병에 걸리고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반성에서 과학기술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90% 사람들을 위한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이 테크놀로지는 아니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에는 충분한 ‘적정기술’이다. 먹는 물을 만들고 연구하는 교수로서 ‘내가 알고 있는 과학기술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적정기술 활동의 출발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런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구촌 이웃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몇 시간을 내는 정도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선한 인재 양성을 추구하는 서울대인들이라면 누구든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나눔을 통해서 세상은 보다 밝아지며 개인은 발전하고 성숙해진다.

윤 제 용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적정기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