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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IT 산업의 선구자가 닦아온 길

2018.09.03.

한국 IT산업사의 발전에 한 개인의 궤적이 겹친다. 국내 최초 컴퓨터를 들여와 주민등록, 승차권 전산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뤘다. 이주용KCC정보통신 회장(사회학과 53년 입학)이 생생하게 저장된 50년 전의 기억을 들려줬다.

이주용 동문(사회학과 53년 입학)
이주용 동문(사회학과 53년 입학)

우연한 기회 속에서 미래틀 내다보는 안목

이주용 회장은 올해로 창립 51주년을 맞은 국내 첫IT 기업, KCC정보통신을 일구고 키워왔다. 소프트웨어 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의 성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금탑산업훈장도 수여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며 사회학을 공부했고 미시간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 한 그가 어떻게 1세대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한국 IT 산업의 개척자가 되었을까. "유학을 떠나 전공을 살려 취직하려 했으나 인종차별을 겪었습니다. 제 처지를 알게 된 주임교수가 미시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컴퓨터 오퍼레이터 일자리를 구해줬죠. 그때 접했던 것이 IBM에서 처음 만든 컴퓨터인 IBM 650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기계인가 놀랍더군요. 작동법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매뉴얼을 보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초기 모델의 컴퓨터부터 다룰 기회를 가지게 되었죠."

이후 IBM에 입사해 세계 컴퓨터 발전의 역사와 나란히 함께한 그는 우연히 들른 한국에서 컴퓨터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을 보고 국내 IT 산업 발전을 위해 고국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컴퓨터 도입의 필요성을 말했더니, 병을 진단하는데 컴퓨터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더군요. 국내에서는 컴퓨터를 겨우 커다란 계산기 정도로만 여기던 시절이었죠. 가장 힘들었던 것이 인식 개선이었어요."

길을 정했다면, 전력투구의 정신으로 도전한다

한국의 첫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이주용 회장은 한국은행 외환 관리 전산 시스템 구축을 진두지휘했고, 철도청 승차권 전산화 작업도 맡았다. 철도청 전산화 작업은 이후 태국에 수출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첫 소프트웨어 수출이었다. 또한 조선업과 건축업에 컴퓨터를 도입하는 데 힘써 성장과 수출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도 큰 업적 중 하나다. "자칫 연령과 성별이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류와 변조를 막기 위해 개발한 체크 디짓의 필요성과 원리를 군부독재 시절 납득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그가 바라보는 지금은 새로운 기회가 몰려오는 시기다. "산업혁명은 점점 물리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듯 유연하게.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들이 닥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준비를 해야죠." 서울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 발전 기금에 나란히 10억씩 기부를 약정하고, 최근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을 설립하여 IT산업의 미래를 지원한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살아 보니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힘들더군요. 하고 싶은 일을 따라가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경제적으로 곤란한 학생을 돕고 다음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지금 제게 당연합니다." 꿈 하나만 바라보고 무모해 보이는 길을 걸었던 그가 다시 도전정신을 가진 젊은이를 응원하는 이유다.

미래와 소프트웨어 재단
이주용 이사장이 사재 100억 원을 기증했으며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벤처 육성, 기술 발굴, 산업 활성이라는 미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