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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관제센터에 가다

2008.11.25.

혼돈 속 내일의 예언가, 기상청 예보과장 정관영

삶의 모든 것이 마치 물리 공식처럼 척척 들어맞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한 정답이 있는 문제를 좋아하는 나에게, 삶이라는 카오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내일로 인해 섣불리 진로를 선택할 수 없었던 나는 기상청에 근무하는 정관영(대기학과 87년 졸업)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08:00 예보 인수인계, 근무 교대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국가기상센터 종합관제시스템실에서 만난 정관영 선배는 아침부터 무척이나 분주했다. 기상청의 업무는 예보 5개 과 중 한 과가 교육을 나가고, 나머지 4개 과가 교대로 근무를 맡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매일 24시간 기상 관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나뉘는 교대 근무가 필요한 탓이다. 이 날 낮 근무를 맡았던 정 선배의 팀(예보 4과)은 밤 근무를 했던 과의 관측 결과나 예보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인수인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 선배는 바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면서 “하루가 정신없이 진행될 테니 잘 보라”며 등을 다독여 주셨다.

11:30 세계기상통신망(GTS) 통한 자료 수신 완료
기상청에서는 하루에 예보가 수시로 나간다. 보통 11시, 14시, 17시, 20시에 예보가 나가는데, 예보가 나갈 때마다 기상청의 관제센터는 한층 바빠진다. 다음 날의 날씨 예보를 위해서는 세계기상통신망을 이용한 수많은 자료 수신이 필요하다. 오전부터 수신하던 많은 자료는 분석을 위해 중도차단(cut-off) 해야 한다. 이 방대한 양의 초기 자료는 슈퍼컴퓨터로 분석하여 객관적인 수치예보모델을 뽑아내는 데에 활용된다. 정관영 선배는 이 예보모델이 객관적인 자료임은 분명하지만 100%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슈퍼컴퓨터로 수많은 변수를 한참이나 계산하더라도 세상은 결국 공식화될 수 없는 카오스야.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있어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날씨도 우리 삶과 참 비슷하지?” 실제로 40% 정도의 정확성만을 가지고 있다는 수치예보모델은 그야말로 ‘모델’일 뿐 정확한 예언일 수 없었다.

15:30 지방기상청과의 화상회의
오후 5시의 예보는 하루 예보의 기본이 되는 예보라서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예보가 있기 한 시간쯤 전에 지방기상센터의 예보관들과 그동안 관측하고 예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회의를 하는 시간은 더욱 긴장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보다 정확한 예보를 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지방 예보관들과의 회의는 수시로 예보가 있을 때마다 하게 되는데, 이 회의는 지방과의 신속한 정보 교환이 핵심이기에 화상 회의로 진행된다. 회의를 하며 지시를 내리는 정관영 선배의 표정도 매우 진지했다. 보다 더 정확한 예보를 위해 끊임없이 토론을 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혼돈에도 굴하지 않고 정답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17:00 일일 예보 발표
드디어 5시 예보를 발표했다. 새벽의 자료부터 모두 끌어모아 그 다음날의 날씨를 맞추는 것이란 수 시간의 분석과 예보관의 직관, 분석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당장 내일의 날씨를 예언하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큰 노력 없이 공식 하나로 삶의 방향을 모두 알고 싶어 했던 내 욕심이 너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선배는 지금의 공부에 충실하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앞을 알기 위해선 먼저 현재를 잘 알아야 해. 지금의 일기도, 기압골, 구름의 이동 등에 계속 몰두해서 분석 하다보면 어느 정도 앞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지.” 지금 학부 시절 공부가 내 삶의 직관을 형성시켜주고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큰 바탕이 되어줄 것이란 말씀이었다.

20:00 인수인계, 그리고 아쉬운 헤어짐
하루 동안 긴장감 넘치는 예보와 자료 분석을 체험해본 것은 미래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꾸어 놓는 경험이었다. 그동안 지구환경과학 분야 중에서도 특히 대기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이론 공부 중에도 겪게 되는 그 특유의 불확실성을 견뎌내지 못하고 곧잘 포기하곤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있어야 예측이 있고, 앞을 예측하는 과정 속에서 현재의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정 선배의 말은 확실한 정답만을 찾느라 포기가 잦았던 나에게, 불확실한 정답에 근접하기 위한 끈기 있는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박훈영 (지구환경과학부 07)

2008. 11. 25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