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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람들, 한가한 것이 두렵다?

2008.12.30.

더 행복해도 될 텐데 김난도(소비자학과 교수)

학회 때문에 어느 대학에 다녀왔다. 사실 이름도 잘 모르던 곳이었다. 교정은 옹색하고 건물도 낡았지만, 무척 인상적인 것은 그곳 학생들의 표정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생들은 다들 구김살 없이 웃고 장난치고 있었다. 하나 같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교수식당이 어딥니까?”하고 길을 묻는 내게 그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몰려나와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 때 내 가슴에는 <서울대학교 김난도>하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는데, 어디선가 “와아~ 서울대학교다, 서울대학교!”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음날, 서울대학교의 캠퍼스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그렇게 선망하던 곳이다. 전일(前日)과 선명히 비교되는 점 하나는 학생들의 표정이 전혀 밝지 않다는 것이다. 웃는 학생도 장난치는 학생도 별로 없다. 교수휴게실로 돌아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교수들도 여간해서 웃지 않는다. 연구며 행정잡무에 치여 늘 탈진 상태다. 교수건 학생이건 이 교정 안에서는 모두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철학시간에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우리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한 고등학생이 되기보다는 성적 좋은 수재여야 했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누리기보다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학생이 돼야 했다. 좋은 데 취직했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제는 더 많은 연봉을 받고 더 빠른 승진을 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성취다. 행복은 항상 뒷전이었다. 더 큰 성취가 바로 더 큰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애써 자기 최면을 걸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성취와 행복을 등치(等値)시키는, 아니 성취를 행복보다 우선시하는, 성취지향의 시대다. 온국민이 성취를 향해 뛴 결과 1960년대의 최빈국(最貧國)이 경제규모 11위권의 대국으로 자라났으니, 대한민국을 성취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중에서도 공부에 관한 한 가장 탁월한 성취를 보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서울대학교다. 그 정도 이루었으면 조금 숨 돌릴 만도 한데, 사정은 더 딱하다.

서울대 식구들은 공한족(恐閑族)이다. 한가한 것이 두렵다. 쉬느니 뭐라도 배우는 것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즐겨 읽은 것은 전공서 아니면 자기계발서다. 어쩌다 소설책을 읽더라도 ‘더 나은 나’를 위해 필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예전엔 애정ㆍ가족문제로 상담을 청하는 학생이 많았는데, 요즘에 하나 같이 진로에 관한 고민으로 내 방 문을 두드린다.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못 말리는 일중독의 성취강박자다. 번잡한 일상에 치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게 됐다. 새까맣게 꽉 찬 다이어리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핸드폰과 이메일 없이는 하루도 불안해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일정(日程)이 지시하는 삶이, 다소의 성취가 있다고 해서,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행복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서 만족을 찾을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하려면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수시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여유가 중요하다. 스스로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벌거벗은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여백을 위해 삶을 비울 수 있어야 한다. 용기가 중요하다. 타인의 인정(認定)때문에 휘둘려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더 행복해도 될 텐데…. 조금 덜 이루더라도, 조금 늦더라도,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른 길 아니겠는가? 비우고 버릴 용기 없이, 행복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