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윤조 작가(조소과 1997년 졸업)가 상기시켜주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만큼 그녀와 의사소통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청각 장애를 딛고 미국 뉴저지 몽클레어 주립대에서 아트 스튜디오 석사를 하고 돌아온 전 작가. 그녀는 지금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한격(限隔)-경계가 막힘’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세 살 때 신우신염을 앓았어요. 그 때 시달린 고열로 청력을 잃었죠. 그 후 단어 하나의 발음을 수백 번씩 연습하면서 말하기를 익혔어요.”
전 작가는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주변의 평가에 중학교 3학년 때 미술을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예고에 진학했고, 석고상을 빚는 흙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조소를 전공했다. 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어훈련이 안 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릴 때와 비교하면 조소 작업까지 하고 있는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라며 미소를 띄운다.
“귀나 입이 아니라 작품만으로 최소한 공감은 가능할 것 같아요. 그 욕심이 학업과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죠. 내 손 안에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모양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저는 제 몸도 뜻대로 하기 힘든데...”
장애인을 소재로 ‘소통’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렇게 자아가 반영된 작품을 남들에게 보이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너는 남들과 다른데 왜 만드는 것은 똑같지?”라는 지적을 받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일반인들만큼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욕심, 보는 이들이 불편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을 그때 떨쳐낼 수 있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고민과 갈등은 마음속에서 계속되지만, 소통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면서 공감에 만족할 줄 아는 여유를 얻은 셈이다.
공부와 작업에는 누구보다 욕심쟁이이지만, 전 작가 역시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아내이고 엄마였다. 열 살과 네 살 난 두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동안, 그리고 잠든 시간에 짬짬이 작업을 한다는 그녀는 지난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 작업을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의 배려가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느라 조금 늦는다던 전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후 작은 아이 유치원 선생님과의 면담에 간다고 한다. 조금 더 이기적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그래도 저는 제 어머니보다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이었다. 듣지 못 하는 딸에게 “너는 귀머거리”라는 말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사과”라는 발음을 수백 번 연습시켰던 분, 그 분이 바로 전윤조 작가의 어머니이셨다. 그녀는 그러한 어머니의 그 딸이었다.
<서울대사람들> 16호 게재 (2008. 12. 8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