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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없어도 작품을 통해 공감을 넘어 소통으로

2008.12.22.

소리가 없어도 작품을 통해 공감을 넘어 소통으로 전윤조 작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윤조 작가(조소과 1997년 졸업)가 상기시켜주지 않았다면 잊고 있었을 만큼 그녀와 의사소통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청각 장애를 딛고 미국 뉴저지 몽클레어 주립대에서 아트 스튜디오 석사를 하고 돌아온 전 작가. 그녀는 지금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한격(限隔)-경계가 막힘’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세 살 때 신우신염을 앓았어요. 그 때 시달린 고열로 청력을 잃었죠. 그 후 단어 하나의 발음을 수백 번씩 연습하면서 말하기를 익혔어요.”

전 작가는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주변의 평가에 중학교 3학년 때 미술을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예고에 진학했고, 석고상을 빚는 흙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조소를 전공했다. 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어훈련이 안 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릴 때와 비교하면 조소 작업까지 하고 있는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라며 미소를 띄운다.

“귀나 입이 아니라 작품만으로 최소한 공감은 가능할 것 같아요. 그 욕심이 학업과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죠. 내 손 안에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모양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저는 제 몸도 뜻대로 하기 힘든데...”

장애인을 소재로 ‘소통’이라는 주제를 담은 작품을 많이 하고 있지만, 이렇게 자아가 반영된 작품을 남들에게 보이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너는 남들과 다른데 왜 만드는 것은 똑같지?”라는 지적을 받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일반인들만큼의 능력을 보여주려는 욕심, 보는 이들이 불편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을 그때 떨쳐낼 수 있었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고민과 갈등은 마음속에서 계속되지만, 소통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면서 공감에 만족할 줄 아는 여유를 얻은 셈이다.

공부와 작업에는 누구보다 욕심쟁이이지만, 전 작가 역시 가족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아내이고 엄마였다. 열 살과 네 살 난 두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동안, 그리고 잠든 시간에 짬짬이 작업을 한다는 그녀는 지난 전시회를 앞두고 밤샘 작업을 묵묵히 지켜봐준 가족들의 배려가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오느라 조금 늦는다던 전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후 작은 아이 유치원 선생님과의 면담에 간다고 한다. 조금 더 이기적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그래도 저는 제 어머니보다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이었다. 듣지 못 하는 딸에게 “너는 귀머거리”라는 말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사과”라는 발음을 수백 번 연습시켰던 분, 그 분이 바로 전윤조 작가의 어머니이셨다. 그녀는 그러한 어머니의 그 딸이었다.

<서울대사람들> 16호 게재 (2008. 12. 8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