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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학도들이여 모두 상류인이 되시라...- 주경철 교수

2009.02.17.

청년학도들이여 모두 상류인이 되시라 주경철 서양사학과 교수

지금부터 꼭 백 년 전인 1909년에 『서북학회월보』라는 잡지에 춘몽자(春夢子)라는 필명의 작가가 쓴 ?國民의普通知識?이라는 글의 일부다. 어려운 한자어 때문에 독해하기가 쉽지 않으나, ‘번역’해 보면 이쯤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상류인도 없고 중류인도 없고 하류인도 없도다. 사람들의 신분 구분은 힘의 강약, 몸의 크고 작음, 혹은 빈부귀천이 아니라 지식이 기준이 될 것이니, 맑고 환한 연못의 수면처럼 지식에 밝으면 상류인이 되고, 여기에 못 미치면 중류인이 되고, 가슴이 꽉 막혀 답답할 정도로 지식이 열등하면 하류인이 되리로다.”

이 글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엄청난 교육열이 적어도 백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반ㆍ상민의 구분이 사라져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이니, 그 시대에 이것은 정말로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교육을 통한 사회 변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비천하다 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고, 혹시 내가 이루지 못 한다 해도 내 자식 대에는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6.25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사는 동네에서도 천막으로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가 아닌가.

현재 중년에 이른 사람들은 대개 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 선친께서는 동네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신 의사셨다. 지금의 의사는 어떨지 몰라도, 모두들 어렵게 살던 1960년대에는 동네 의원이라는 것이 구멍가게 수준이어서 때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아버지의 캐비닛 안에는 돈 통이 두 개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생계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환자를 한 명 보고 나면 왼쪽 돈 통으로 입금하고, 다음 환자를 보고 나면 오른쪽 돈 통으로 입금했다. 어머니의 평가대로 “정말 책임감이 강한 사나이”였던 것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최 빈민 국가에서 오늘날 이런 정도로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교육 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 윗세대가 우리 세대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우리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교육 투자를 계속 해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교육의 방향이 이제까지와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들 잘 알다시피 요즘 좋은 대학 가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몇 년을 거의 공부하는 노예처럼 살아야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서 대학에 왔다면 비상한 천재들이 되어 입학해야 마땅한데, 솔직히 말하면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쪼다’가 되어서 들어온다. 이를 두고 신입생들을 비난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점수에 연연해하지 않았다면 입학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도록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하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죽도록 공부하면서 좋은 학점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에 대해 외국 대학 당국은 점차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좋은 지도자 감은 못 되고 기껏해야 좋은 참모가 될 정도의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 교육 투자를 아끼지 말되 조금 큰 안목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 같다. 사실 백 년 전에 교육을 통해 ‘상류인’이 되어야 한다고 힘껏 주장한 춘몽자 할아버지도 순전히 개인의 영달을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아국(我國) 청년들이여, 이제는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노예처럼 묶여 살지 말고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 세계의 상류인이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