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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속에서 미래를 찾는 졸업생들에게...- 이중식 교수

2009.03.10.

현수막 속에서 미래를 찾는 졸업생들에게 이중식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경기침체가 불러온 고용 한파 때문인지 몰라도 며칠 전에 졸업한 18명의 학부 졸업생들 중 상당수가 대학원에 진학했다. 물론 대학원이 취업보다 못한 선택은 아니지만 지난 10월쯤에 나를 만나 진로 상담을 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고 싶어 했었기 때문에 무언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느낌이다.

흥미로운 점은 취업 면담 과정에서 학생들이 가고 싶어 했던 ‘희망 기업’들이 상당부분 교정에 걸려 있는 취업설명회 현수막들과 일치했다는 점이다. 대기업, 컨설팅회사, 외국계 기업 등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회사 이외에는 이들의 인식에 파고드는 중소 규모의 다양한 회사들이 없었다. 어찌 보면 고도의 리쿠르팅 전략을 가진 회사들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론 요즘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해 수동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가 싶다. 중기적 커리어 목표를 설정해 놓고 능동적으로 대안을 찾기 보다는 주어진 옵션 속에서 답을 고르는 객관식형 커리어 선택의 경향이 읽히는 것이 안타깝다.

왜 예비 졸업생들은 '미래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었을까? 아마 4년을 넘어서는 대학생활의 노곤한 안정감이 '내가 무얼 원했는지'를 잊어버리게 할 만큼의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치열한 학점 따기와 스펙 높이기의 경쟁 속에서 현재를 딛고 일어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겠다는 에너지도 많이 소진된 듯하다. 한편 학생들은 꽤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부지불식간에 타협하고 있었다. 높은 봉급과 ‘고향에 계신 어머니도 아실만한’ 브랜드의 회사라면 꿈을 접고 타협할 수 있다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현수막 속에서 찾아진 미래는 그리 의연해 보이지 않았다.

한편 현수막을 능동적으로 넘어서려 해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인 소명(calling)을 발견하는 작업이란 평생의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운이 좋게 소명을 일찍 발견해 자기 일에 매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중년이 될 때까지 소명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리 오던 늦게 오던 소명을 찾아 나서는 일만큼 중요한 게 없다.

윌리암 워즈워드는 캠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시인으로서 명료한 방향성을 가졌다. 신동 워즈워드는 대학시절 학교가 맞지 않아 주위를 겉돌고 가방만 들고 학교를 오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 고향을 다녀오는 길의 눈에 들어온 세상에서 ‘시’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소명(calling)을 대학졸업과 함께 발견한 것이다.

반면 존 밀턴은 50이 가까워 <실락원>을 쓰고 나서야 작가로서 자리를 잡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밀턴은 학교와 교육이 너무 잘 맞아 자신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문학 속의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오게 된다. 36세까지 고작 한 편의 시를 발간하고 그 시에서도 시를 씀에 대한 자신 없음을 탄식한다. 20년간 정치적인 논쟁에 휩쓸리기고 했다. 하지만 밀턴은 방황의 기간 동안 '늦음' 혹은 ‘늦게 익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학)교육이 만들어준 자신의 ‘내적 성숙’을 의심하지 않았다.

두 시인의 삶을 비교해 보면 인생은 나에게 맞는 소명을 ‘빨리’ 찾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제대로’ 찾기 위한 지난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소명을 빨리 찾은 학생들은 명쾌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삶의 속도를 높일 수 있으나, 가끔 자신의 선택(chosen)이 진정한 선택(given)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졸업을 했음에도 소명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비록 안개 속을 더듬거리며 걷는 답답한 느낌이 있겠지만 나의 소명을 제대로 찾기 위한 '제대로 된 혼돈' 속에 놓여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대학교에서의 교육은 이 길을 굳건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confidence)을 심어 주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