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교수칼럼

내가 대학생활을 다시 한다면 - 오세정 교수

2009.04.15.

내가 대학생활을 다시 한다면 오세종 물리천문학부 교수

영어에 hindsight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영한사전은 “때늦은 지혜”라고 재치있게 풀이하여 놓기도 했는데, 아마도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반성과 해석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예지(叡智)인 foresight는 비범한 선각자만이 발휘할 수 있지만, 지나간 일에 대한 hindsight는 나 같은 범인(凡人)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는지 알아낸다고 해도 당사자에게는 별 소용이 안 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하지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앞서 간 선배의 hindsight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을 졸업한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사회 경험을 통해 얻은 “때늦은 지혜”를 발휘해서 나의 대학생활을 돌아본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대학생활에 대하여 몇 가지 후회가 있다. 첫째는 공부를 너무 좁게 하였다는 점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물리학이 자연과학의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화학이나 생물학 같은 인접학문을 은근히 깔보는 생각이 있었다. 게다가 피 보기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중고등학교 때의 해부 실험만으로도 생물학을 멀리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물학이 자연과학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물리학에서도 biophysics가 가장 잘 나가는 첨단 분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나는 준비 부족으로 인해 감히 그 분야로 뛰어들기를 겁내고 있다. 이제 와서 대학교 때 생물학도 잘 공부해 둘 걸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둘째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과목도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내 전공인 물리학하기도 바쁜데 무슨 교양과목, 인문사회과학이냐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점점 필요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확충이나 병역특례 확대 등을 논의할 때에도 결국 인문사회를 전공한 공무원들과 언론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 국민들을 설득해야 되는데, 이런 능력을 미리 키웠으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셋째로는 친구들을 좀 더 폭넓게 사귀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network 사회이다. 결국 전문가들의 network가 중요하고, 이러한 network를 구축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각 분야의 미래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공부하는 대학이다. 심지어 미국의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Robert Reich 같은 저술가는 앞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이 얻을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맥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부유한 노예”, 2001, 김영사) 특히 서울대에는 전국의 인재들이 모이므로 이러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한번 미쳐보는 것이다. 그것이 연애일 수도 있고, 음악이나 축구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학생운동이거나 공부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한 큰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생활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진정으로 말하고 싶다. 세상을 크게 바꾸는 사람은 결국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