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대학소개 / 역사

기록으로 만나는 서울대

역사 /

기록으로 만나는 서울대

미네소타 프로젝트, 서울대학교 재건을 위한 노력

2021.04.12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체결이후 9월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을 시작으로 단과대학들이 서울 캠퍼스로 복귀하였다. 부산 피난에서 돌아온 후 서울대학교는 약대 건물 안에 대학본부를 설치하고 종합후원회와 재건기성회를 조직하는 등 학교 재건활동에 착수했다. 그러나 전화로 인한 서울대학교의 막대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대학 스스로의 재건활동만으로는 역부족이었으며 외부 지원이 필요했다. 당시 정전 직후의 정부는 교육 · 학술 부문에 지원할 재원이 고갈된 상태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 전체 정부예산의 11.4%를 차지하던 문교부 예산은 지속적으로 급감하여 1953년 2.6%를 기록하였다. 서울로 복귀한 서울대학교의 재정 상태는 최악이었다. 한국전쟁 이전 458동(62,527평)에 달하던 서울대학교 건물 중에서 수리 혹은 재건해야 할 건물이 276동(24,313평)이었고, 모든 시설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12억 6,000만 환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1953년도 국가 예산의 약 10%를 차지하는 액수였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서울대학교 최규남 총장은 정부와 문교부에 해외 교육원조자금 전체를 서울대학교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여러 차례 제안하였다. 결국 문교부는 이를 수용하여 서울대학교에 미국 대외활동본부(Foreign Operation Administration, FOA)의 자금 30만불 전액을 제공하기로 하였고, 재건계획을 협의하면서 점차 복구비를 증액하였다.

“내가 이 사업을 추진시킨 주목적은 이 원조를 통해서 서울대학교를 장차 등에 지고 나갈 유능한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데에서였다. 그러므로 물론 교수도 많이 파견하여 시찰 연구케 할 것이지만 우리 대학의 졸업생-서울대학교를 나온 우수한 청년들을 3년 혹은 4년 동안 장기간 유학시켜 충분히 연구시킨 뒤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하여 서울대학교의 지도자가 되게끔 하려는 것이 내 마음이다.” - 최규남 총장

미네소타 대학 총장 서한, 1954

미네소타 대학 총장 서한, 1954
한국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 교육 원조 기구로는 미네소타대학교가, 대상 학교로는 서울대학교가 결정되어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1954년 9월 28일 미네소타 대학이 서울대학교와 협정을 체결하여 교류하기로 한 것에 관한 서한의 일부 내용이다.

“Whereas, On the twenty-eighth day of September, 1954, the University of Minnesota entered into a contract with the Foreign Operations Administration designed to assist in strengthening and developing the educational and research programs of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Korea …”

이렇게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국립서울대학교 협력프로젝트(Seoul National University Cooperative Project)’였고, 원조 계획의 실행을 미네소타대학교에 일임하여 진행되었기 때문에 통상 ‘미네소타 프로젝트’ 라고 불리게 되었다. 미네소타대학교가 서울대학교 기술 협력 프로그램을 주도할 대학으로 선정된 까닭은 미네소타대학교가 보유하고 있었던 농학, 공학, 의학 분야의 우수성과 인적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였다. 당시 미네소타대학교 캠퍼스에서 사업을 총괄할 조정관(full-time coordinator)으로 교육학과의 타일러(Tracy F. Tyler) 교수가 임명되었으며 서울대학교 수석자문관(chief advisor)에는 임학과 부교수 슈나이더(Arthur E. Schneider)가 선임되었다. 미네소타대학교에서는 원조 계획의 수행을 위하여 사절단을 파견하였고 이 사절단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1954년 9월 28일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였다. 대외활동본부에서 관장하던 원조사업은 1955년부터 국제협력처(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ICA)로 이관되었다. 서울대학교는 1955년부터 1958년 7월 31일까지 농학 · 공학 · 의학 부문 3개 단과대학의 교환교수 프로그램, 시설복구, 장비지원 등의 사업에 총 545만 1,000달러를 지원받았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1957년 한미합동경제위원회(the 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for KOREA, OEC)의 주재로 1961년 9월 28일까지 연장되어 서울대학교는 추가로 434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이에 따라 행정대학원, 수의과대학, 간호학과, 보건대학원으로 원조 부문을 확장하여 농학, 공학, 의학, 행정학, 수의학, 간호학, 보건학 등 총 7개 학문 분야를 지원했다. 행정대학원과 보건대학원은 이 시기 해외 원조 사업으로 인해 1959년 독자적인 특수대학원으로 신설되었다.

미네소타 대학교와 기술원조 협조 협정 체결, 1954.9.5.
미네소타 대학교와 기술원조 협조 협정 체결, 1954.9.5.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주된 목적은 서울대학교를 한국 최고의 고등교육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교수들의 연구 · 지도 · 행정력을 배양하고 도서관 · 연구소 등의 장비 지원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내세웠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기술원조와 시설원조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기술원조는 서울대학교 교환교수 연수 프로그램 운영과 미국 자문단을 서울대학교로 파견하는 것이었고 시설원조는 시설의 복구 및 재건과 물품 · 장비 등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교류활동을 통하여 서울대학교가 원조 받은 총액은 1천만 달러에 상당하는 액수로 교환교수 프로그램에 348만 9천여 달러, 시설 부문에 267만 달러와 대충자금(Counterpart Fund) 3억 5천만 환, 기재와 기구 도입에 272만여 달러와 대충자금 231만 환, 그리고 도서비로 15만 6천여 달러 등이 투입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서울대학교의 교육, 연구 체제를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교수진의 재교육을 포함한 인재 양성 계획이었다. 1955년부터 1962년까지 이 계획을 통해서 파견된 서울대학교 교수 218명이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4년까지 교육을 받았고, 평균 참여 기간은 18개월이었다. 교환교수 연수 프로그램의 초점은 신진 교수진의 교육과 연구 능력 증진이었기 때문에 조교수 이하의 젊은 교수진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들은 대학원 석 · 박사 과정 교육을 받았고 영어 과정 특별 프로그램 등에도 참여하였다. 그 결과 15명이 박사학위를, 71명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박사학위 중 농학 4명, 수의학 2명, 공학 6명, 의학 2명, 행정학 1명 / 석사학위 중 농학 23명, 수의학 4명, 공학 21명, 의학 11명, 행정학 12명)

대학신문은 1958년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중간성과를 평가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기술 원조 과정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원한의 6.25 포탄의 세례를 사정없이 받았던 서울대학교 농 · 공 · 의 · 수의대 등 5개 대학은 1954년 9월 28일 체결된 ICA(당시는 FOA)와 미네소타 대학 간의 협조 협정에 따라 전화의 상흔이 점차 아무러가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여 외국의 저명대학에 어깨를 겨누는 데 거의 손색이 없게 되어가고 있다. 3년 계획으로 총액 180만 불을 계상했던 인사교류는 착착 실현되어 첫해인 55년에 53명, 56년에 50명, 57년에 30명, 58년에 18명 도합 151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도미하여 외국의 문물과 교육의 시찰을 마치고 105명이 귀국, 46명은 현재 도미 중에 있으며 미네소타 대학에서 각각 전공 분야의 연구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대학신문, 1958.10.15.)

오순섭 수의대 학장의 미네소타 대학교 이수증 및 승인서류, 신광순 명예교수 기증, 1957
오순섭 수의대 학장의 미네소타 대학교 이수증 및 승인서류, 신광순 명예교수 기증, 1957
1957년 미네소타 프로젝트 당시, 오순섭 학장이 미네소타 대학교 수의학 교육 프로그램 시찰 및 이수를 완료했음을 증명하는 이수증이다.(1957.1.28.)
우측에는 주한 수석 자문관인 슈나이더(Schneider) 교수가 오순섭 수의대 학장에게 보내는 UN OEC의 승인서류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수행된 원조 사업은 미네소타대학교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관리하였다. 자문단은 43개의 분야에서 선발된 59명의 자문관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미네소타대학교의 중견 교수들이었다. 자문관들은 수석자문관(Chief advisor), 총괄자문관(overall advisor), 일반자문관(advisor)으로 나뉘어 서울대학교의 조직개편, 행정, 인사, 교육 및 연구에 필요한 시설 복구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고 각종 시설 및 장비 관리 등 다방면에 걸친 자문을 했다. 분야별로는 프로젝트 행정에 3명, 농학 10명, 공학 12명, 의학 11명, 수의학 2명, 행정학 15명, 고등교육 조사에 7명의 자문관이 파견되었다. 자문단은 사업 전반에 관한 반기별 보고서를(semi-annual progress report) ICA에 제출했고, 근무 종료 후에는 자문활동 관련의 최종보고서(final report)를 제출하였다.

아놀드 박사 방문 기념 단체사진, 신광순 명예교수 기증, 1960년대 초

아놀드 박사 방문 기념 단체사진
신광순 명예교수 기증, 1960년대 초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수의학 분야 자문관으로 온 미네소타대학교 아놀드(John P. Arnold)박사와 교수 일동이 연건동 수의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1960년에서 1961년 사이로 추정된다.
앞쪽 왼쪽부터 윤쾌병, 홍병욱, 오순섭 학장, 아놀드 박사, 이영소, 이장락, 옥종화, 윤석봉 교수이며, 뒷줄 왼쪽부터 임창형, 조병율, 이정재, 김상남, 한수남 교수이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시설원조 사업은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서울대학교의 시설을 복구하고 장비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재원은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사업비와 한국정부의 대충자금으로 구성되었다. 각 단과대학별로 투입된 자금과 이에 따른 캠퍼스 재건 현황을 살펴보면 먼저, 한국 전쟁 중 건물의 38%를 상실한 농과대학은 시설복구비로 120만 달러(한화 약 10억여 환)를 받아 이 자금으로 본관을 3층으로 증축하고 강당, 신관, 도서관, 식당 등을 신축했으며 각 과의 실험 실습장을 완비하고 전라남도에 보유했던 연습림의 시설 복구를 위해 5천만 환을 지출했다. 의과대학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의한 국제협력처 원조 자금 68만 달러로 의과대학 건물과 병원을 개축 수리하고, 5만 갤런의 저수탱크를 만들었으며 기타 난방 환기 시설을 완비했고, 간호학과 건물도 준공했다. 또한 50만 달러의 국제협력처 원조로 방사선치료기, 혈액가스측정기, 조직배양시설, 현미경 등 각종 시설과 실습 기재 기구를 완비할 수 있었다. 공과대학은 전쟁 중 건물 43동 가운데 21동이 전화를 입었다. 그 가운데 특히 4호동의 가스 제조실과 6호동의 차고가 격심하게 폭격을 당하였으나 원조자금에 힘입어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들을 완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60만 달러에 해당되는 자재를 미국에서 도입하여 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신축했고 선박모형 시험수조와 고속 실험기를 설치했다. 수의과대학은 국제협력처 원조 자금으로 실험 실습 기구를 구입했으며 성북구 하월곡동에 부속실험동물사육장을 신설했고 강의실, 실험실, 도서실, 회의실, 사무실을 포함하는 최신식 건물도 준공했다. 치과대학은 유엔한국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UNKRA)과 국제협력처의 원조에 의해 치료 기재 한 대를 교체하고, 부속 병원 내 체어유니트를 60여 세트로 늘려 임상실습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행정대학원 및 법대 부속도서관을 신축하였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교수 학생 미술작품 교환 전시회, 1958

미국 미네소타 대학 교수 학생 미술작품 교환 전시회, 1958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일차적으로 농학 · 의학 · 공학 · 행정학 등의 학문 분야를 지원하고 시설을 복구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두 나라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는 교환 미술전시회를 열어 문화교류를 다졌다. 1957년 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미술전시회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열렸으며, 이듬해에는 미네소타대학교 교수와 학생의 미술 작품이 서울대학교 대강당에서 전시되었다.


서울대 발전에 큰 기여 - 미네소타 원조, 6월말로 종료, 대학신문, 1961.7.10.

서울대 발전에 큰 기여 - 미네소타 원조, 6월말로 종료
대학신문, 1961.7.10.

1954년 9월 28일, 서울대학교 재건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1962년 6월 30일 서울대학교에 주재하던 미네소타 고문 슈나이더 박사가 본국으로 귀환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미국 ICA 기술원조계획에 의하여 「미네소타」 대학과 서울대 간에 체결되었던 원조 계약은 1955년부터 지금까지 7개년간의 약정기간을 마치고 지난 6월말로서 만료되었다. 1954년도에 계약을 체결하여 1955년도부터 개시된 동 원조계획은 서울대학교에 대한기술원조에 중점을 두어 교수파견 및 교류 기계기구 및 건축자재의 원조 등의 내용을 가지고 시행되어 그동안 서울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온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해방 이후 고등교육기관으로써의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할 시간도 없이 한국전쟁을 맞아 막대한 물적, 인적 피해를 동시에 입었다. 1954년 9월부터 1962년 6월까지 총 7년 9개월간 진행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대학교는 미국의 대한(對韓) 고등 교육 원조의 78%에 해당하는 집중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교육과 연구 여건 및 대학 운영 체제를 획기적으로 변모시켜 오늘날과 같은 연구중심 종합대학으로써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미네소타 계획의 지원 결과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발간한 공식 보고서는 ‘서울대학의 교육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지만, 농학, 의학, 공학, 행정학 분야에서 미네소타대학교의 주요한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공학 · 농학 · 의학 등 이공계통에 집중적인 외국지원이 이루어져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1960~1970년대 공업화의 기반이 되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이어진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 간의 관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미네소타대학교 아카이브를 통해 관련 기록물을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40년사』, 1986.
서울대학교 5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50년사』, 1996.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서울대학교 기록관, 『지성과 역동의 시대를 열다 1953-1975』, 201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신문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담당부서/기록관 (http://archive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