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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인의 목소리 - 학생간행물 둘러보기(2)

2022.04.19.

학내 자치언론은 1980년대 들어 신군부 정권의 학원 탄압과 보도 통제로 인해 자율성을 잃어갔다. 『대학신문』의 경우 1981년 이후부터 학생 기자 징계 및 집단 사표 제출이 이어졌고 휴간과 복간을 반복했다. 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편집권 등 학생 기자의 권한과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이에 학생들의 불신은 커졌고 『대학신문』 수령을 집단으로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는 1983년 12월 학원자율화조치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유화국면을 조성했다. 학생운동과 관련해 제적된 학생들의 복교를 허용하고 학내 사복경찰을 철수시키는 등 선도 위주의 정책으로 바꾸었다. 학생운동 진영은 이러한 틈새를 이용해 점차 조직적이고 대중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4년 3월 서울대생들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이하 ‘학자추위’)를 결성하여 학생자치와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학원자율화운동을 이끌었다. 학생언론은 1980년대 학생회 재건과 학원자율화운동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다.

개학 후 첫 신문, 1977
개학 후 첫 신문, 1977

학자추위가 결성되던 무렵 학생자치에 바탕을 둔 대안 언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단과대학 학보사 편집실의 편집위원들을 중심으로 1984년 3월 28일 언론협의체를 결성했다. 언론협의체는 1984년 5월 14일 진정한 학생의 신문을 표방하는 『자유언론』을 창간하며, 제도권 언론에 대항하는 대안 언론 기능을 수행했다.

『자유언론』은 타블로이드판 4면 구성으로 제작했으나 학생들의 호응을 얻으며 8면으로 늘어났다. 『자유언론』의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84년 10월, 편집장 김종유(당시 국문과 3학년)가 제11호를 인쇄하러 을지로의 인쇄소에 갔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자유언론』 제2호는 창간 2주 후인 5월 28일 발행되었다. “민중생활조사위에 바란다”, “무등을 향하여 광주항쟁 4주년”, “언론협의체 창립 SYMPOSIUM” 등의 기사가 실렸다. 1985년 5월 4일 이후 잠시 휴간했다가 5월 17일 제22호부터 재간했고, 6월 27일 제26호를 끝으로 종간한 후, 1985년 9월 『민주선언』으로 이름을 바꾸어 발간했다. 『민주선언』은 창간사에서 그 형식과 내용, 학내 언론으로서 위치와 역할에 관해 『자유언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밝혔다. “학생회 재건과 2학기 학생운동의 방향”, “민주제개헌과 민중민주화운동!”, “학원안정법 시안분석” 등을 포함하는 사설, 기획, 칼럼, 투고, 정세분석 기사들로 구성되었다. 『민주선언』은 학생 투쟁과 농성의 현장을 보도하는 호외들도 다수 펴냈다.

자유언론 창간호, 1984.5.14.
자유언론 창간호
1984.5.14.

민주선언 창간호, 1985.9.13., 임선웅 전 직원 기증
민주선언 창간호
1985.9.13.
임선웅 전 직원 기증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의 기관지 『아크로폴리스』도 『자유언론』 창간호와 같은 날인 1984년 5월 14일 창간되었다. 당시 『대학신문』은 같은 날에 창간된 『자유언론』과 『아크로폴리스』를 소개하며 『아크로폴리스』의 발간 취지를 실었다.

“아크로폴리스지의 편집진은 창간사에서, 『학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결코 학원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우리스스로 우리의 언론기구를 만들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고 요구하는바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학생자율신문 발간”, 「대학신문」, 1984.5.28.)

아크로폴리스 창간호, 1984.5.14., 홍순민 동문 기증
아크로폴리스 창간호
1984.5.14.
홍순민 동문 기증
민주전선 제5호, 1984.9.6., 홍순민 동문 기증
민주전선 제5호
1984.9.6.
홍순민 동문 기증

『자유언론』이 신문 형태였다면, 『아크로폴리스』는 4·6배판 책자로 제작되었다. 지면에는 기획, 논설, 칼럼, 투고, 특집, 여학생란, 학생운동, 사회운동 소식 등의 기사들이 게재되었다. 1984년 5월 발행된 제2호는 논설 “광주민중항쟁의 지속과 실천”을 시작으로 광주 문제를 보도특집으로 다루었다. “찢어진 기폭-어느 목격자의 증언”, “광주일지-피맺힌 민중항쟁 10일” 등의 목격자 증언 내용을 수록했다. 공안 당국은 경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시행하는 등 『아크로폴리스』 제2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3호 편집후기에는 “지난 2호가 교문 앞에서 경찰복을 입은 강도에게 수많이 빼앗겼습니다”라고 적혀있어, 당시 경찰의 압수가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는 1984년 9월 제5호부터 『민주전선』으로 제호를 변경했으며, 제6호는 발행인을 언론협의회로 바꾸었다. 1984년 2학기에 학생회 재건에 성공한 언론협의체가 학생회 산하 기구인 언론협의회로 재편되면서 『자유언론』과 『민주전선』의 발행을 맡게 되었다. 언론협의회는 1985년 3월 민중의식과 대중언론의 기치를 내건 『관악평론』을 창간하여, 학생운동을 비롯한 정치, 경제, 사회, 학원, 문화 등 종합학술지의 기능을 맡았다. 이렇게 서울대 학생들은 1984년 들어 『자유언론』과 『아크로폴리스』 등의 대안매체를 만들어 내며 적극적인 학생언론 운동을 이끌었다.

단과대학 언론
단과대학 언론
『상아언론』 제5호(치과대학, 1985.5.28. 김철위 명예교수 기증), 『민주서둔』 제8호(농과대학, 1985.6.19.),
『농대신문』 호외(농과대학, 1984.11.7.), 『향상언론』 제3호(경영학과, 1985.6.4.), 『사대문화』 제333호(사범대학, 1984.5.25.)

『자유언론』이나 『아크로폴리스』 이외에도 단과대학 단위로 간행물이 만들어졌다. 1984년 언론협의체 연대가 구성되면서 학생언론 운동의 주체가 단과대 중심에서 서울대 중심으로 재정립되어 갔지만, 단과대학도 학생운동 대중화의 연대성에 부응하여 기동성과 시의성을 갖춘 월간지나 주간지, 계간지, 소식지 등의 형태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한 예로, 농과대학 언론활동위원회가 농대 학생신문 『민주서둔』을 펴냈다. 1985년 6월 19일 제8호의 지면에는 “가자! 아직도 동트지 않은 거친 황토로!”, “민족통일·민중쟁취·민중해방!”, “깨어있는 투쟁하는 승리하는 농대! -85년 1학기 농대학생운동일지-” 등의 기사가 실렸다. 제8호 4면의 알림란에는 “지난 민주서둔 7호의 1면 톱기사 ‘광주의 피의 역사를 증언하라’는 정부의 인쇄물 탄압조치로 삭제되었습니다”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편집자주에는 “정부의 간행물 탄압조치로 신문 발행이 미루어져 내용의 일부를 생략하고 늦게나마 실어봅니다”라고 쓰여있어 당시 학생간행물에 대한 삼엄한 검열통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전진 창간호, 1984.9.17.
전진 창간호
1984.9.17.

또 다른 주목할만한 매체로는 복학생협의회가 발행한 『전진』이 있다. 복학생협의회는 학생시위 관련으로 제적되었다가 학원자율화조치로 복학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1984년 9월 17일 구성되었다. 협의회장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던 유시민이 맡았다.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칙에 따르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기여하는 민주화된 대학의 건설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회원 상호간의 단결을 도모하고 연대의식을 제고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17일 복학생협의회 구성”, 「대학신문」, 1984.9.24.)
『전진』 창간호는 “언론이란 독자를 일방적으로 교육, 세뇌하는 편향성과 경직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학생운동을 겪은 선배로서 서로의 경험과 사고를 공유하고 배우며 북돋는 것을 창간의 목적으로 밝힌다. 신문 형태로 시작하여 제5호부터는 소책자로 제작했다. 사건 보도보다는 평론, 사설, 기획 중심의 심층 분석 기사들로 구성되었다.

“새로운 언론운동의 기수 과편집부”, 「자유언론」 제2호, 1984.5.28.

“새로운 언론운동의 기수 과편집부”, 「자유언론」 제2호, 1984.5.28.

학과에서 만든 과회지들도 민주언론 정립을 위한 학생 자율의 간행물 발간 활동에 힘을 보탰다. 당시 각 과 학생회는 사회부, 문화부 등 부서와 함께 편집부를 설치해 과회지를 펴냈다. 과회지는 학과 단위로 대중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1982년 무렵부터 간행되었는데, 1984년 학원자율화를 추진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1984년 5월 『자유언론』 제2호는 “새로운 언론운동의 기수 과편집부”라는 제목으로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 등 단과대학에서 과신문 형식의 정기적 간행물이 연이어 나오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필자와 독자층의 확대, 과특성을 반영한 내용의 심화, 과내 활동과의 연계, 단대 편집실과의 협업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당시 발행된 과회지들 중 몇몇을 살펴보면, 1984년 외교학과는 『청산(靑山)』을 창간했다. 1984년 11월 제7호에는 사설 “허구적인 자율화 본 모습을 드러내다”, 추모글 “황정하 학형과 전태일 동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서평 “권력 엘리트의 일반적 성격” 등이 실렸다. 같은 해 식품영양학과는 『식품영양학과 회보』를, 영어교육과는 『여명』을 창간했다. 서어서문학과는 1985년 5월 『그루터기』를 창간했다. 창간호에는 광주민중항쟁 특집 “다시 5월을 맞으며”, 에세이 “관악인의 하나됨을 바라며” 시론 “수입개방과 민중경제의 파탄”, “대학에서의 주체적 인간” 등이 게재되었다. 1986년 3월에는 교육학과에서 『끈』을 발행하며, 창간사에 “과성원 개인의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해방교육”의 실시를 위한 교육학우의 “신뢰의 끈”을 형성하는 “장”의 마련”임을 밝혔다.

과지 및 회보
과지 및 회보
상단 왼쪽부터 『두레』 제3호(고고미술사학과, 1984.11.19. 임선웅 전 직원 기증), 『날개』 창간호(의류학과, 1988.5. 유효선 교수 기증),
『식품영양학과 회보』 제1호(식품영양학과, 1984.9.1.), 두 번째 줄 왼쪽부터 『그루터기』 창간호(서어서문학과, 1985.5.10. 임선웅 전 직원 기증),
『경제과보』 제3호(경제학과, 1984), 『청산』 별호(외교학과, 1984.10.12. 임선웅 전 직원 기증), 『철부지』 제1호(철학과, 1991. 정원재 교수 기증),
세 번째 줄 왼쪽부터 『여명』(영어교육과, 1984), 『끈』 창간호(교육학과, 1986.3.29.), 『틈』 제4호(불어교육학과, 1984.10.18.),
하단 왼쪽부터 『SO 깨비』 창간호(화학과, 1992.3.14. 자치도서관 이관), 『풋사과』 제6호(약학과, 1990, 자치도서관 이관),
『우리의 터를 찾아서』 제23호(물리학과, 1989. 자치도서관 이관)이다.

한편 총학생회는 기관지 발행을 위한 준비호 성격으로 1987년 3월 25일 『진군』을 펴냈다. 학생회의 방향성과 대학 언론의 현주소, 정세평가와 투쟁 등에 관한 사설, 기획, 특집, 성명서 등이 실렸다. 이후 1987년 4월 24일 기관지 『아크로폴리스』를 창간했다. 창간호에서는 “역사는 민중에 의해 진보한다”는 세계관을 내걸고 “그를 믿고 살아가며 투쟁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실을 것”을 선언하였다. 『아크로폴리스』는 그해 6월 항쟁 직전 6월 4일 제4호를 발행한 후, 10월 12일 『자주관악』으로 이름을 바꾸어 간행했다.

진군 창간호, 1987.3.25., 임선웅 전 직원 기증
진군 창간호
1987.3.25.
임선웅 전 직원 기증
아크로폴리스 창간호, 1984.9.6.
아크로폴리스 창간호
1987.4.24.

자주관악 제31호, 1990.5.28., 임선웅 전 직원 기증
자주관악 제31호
1990.5.28.
임선웅 전 직원 기증

『자주관악』은 주간지로 펴냈으며 집회 및 투쟁 기사, 당면 정세, 학생회칙 개정 문제 등 주로 학생운동 및 학생회 활동 관련 내용을 다루었다. 1993년 1학기부터는 월간으로 개편되어 4월에 첫 호를 발행했다. 기획특집 “의견개진운동의 의의와 역할”, “학내 식당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문민정부 출범 이후의 정세평가 등 주요 기사 이외에 대학가 강의 현실과 고시 열풍, 서울대인의 컴퓨터 통신 생활 등을 다루었다. 당시 언론의 관심 분야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정치, 문화, 학원, 부문진출 등 분량을 늘려 다양한 영역으로 주제를 세분화하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 자유와 학내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학생언론도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단과대학 신문들은 단대학생회 현황 및 과소식, 사회부문별 민족운동 정리, 시평, 기획기사, 문학작품, 시사만화 등 각 단대별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단대 언론활동과 문화활동을 이끌었다. 1990년 학생들의 손으로 엮은 통합 교지 『관악』이 창간되었고, 『대학신문』도 편집 자율성 등 학생 기자들의 권한이 확대되어 학생들에게 진보적 담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언론의 실현을 위해 긴 시간 투쟁한 결과였다.

한편 『자주관악』은 1995년 제호를 『우리세대』로 바꾸었다. 총학생회 기관지의 성격을 넘어 학교 안팎의 폭넓은 사안들로 학생 여론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1995년 5월 『우리세대』 창간 준비호에는 학부제, 지방자치제와 같은 학내 문제와 정치 문제 등이 중점적으로 수록되었다. 『우리세대』는 1997년 총학생회로부터 독립한 시사월간지로 전환하였고, 1990년대와는 구별되는 정체성 확보를 위해 2001년 9월호부터 제호를 『서울대저널』로 변경했다. 이렇게 『자주관악』이 『우리세대』를 거쳐 『서울대저널』로 이어지면서 독립적 자치언론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세대 창간호, 1995
우리세대 창간호
1995
서울대저널 제143호, 2017
서울대저널 제143호
2017

1990년대 이후부터 민주화가 진척되고 학생들의 탈정치 경향이 짙어지면서, 정치적 거대담론 속에 주목받지 못했던 학생들 개개인의 일상과 삶의 소재들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를 표출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시작한 서울대학교 여성주의 언론 ‘쥬이쌍스(jouissance)’는 2002년 여성주의 매체 『쥬이쌍스(jouissance)』를 창간했다. 익명의 페미니스트 필자들이 여성들의 욕망과 경험을 자유롭고 생생하게 다루어 학내 페미니즘 운동의 뒷받침이 되었다.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동아리 ‘큐이즈(QIS)’는 2006년 『퀴어플라이(Queer Fly)』를 발행했다. 학내 성소수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전적 에세이, 증언, 대담, 비평, 기획 기사 등으로 구성되었다.

서울대 자치언론은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학사회의 다양한 주제와 담론을 다루었다. 『스누퀼(THE SNU QUILL)』은 교내 유일의 영자신문으로, 영문과 故 신광현 교수와 학생들이 2005년 창간하여 국제화의 흐름에 따른 학내 외국인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이끌고 있다. 2007년에는 사범대학에서 『교육저널』을 발간해 현재까지 대학 안팎의 교육과 관련한 주제별 문제의식과 비평을 다루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대학교 포트레이츠 편집위원회가 ‘학생사회, 서사, 실천’을 기조로 『포트레이츠(Portraits)』 창간호를 펴내면서 대학사회의 다채로운 모습을 심도 있게 조명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2015년 장애인권동아리 ‘턴투에이블(TurnToAble)’에서 펴낸 『디스에이블(THISABLE)』은 장애를 주제로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아낸 문집이다. 학내 장애 인권 향상과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매 학기 초에 배포하고 있다.

쥬이쌍스 창간호, 2002, 위선주 동문 기증
쥬이쌍스 창간호
2002
위선주 동문 기증
퀴어플라이 창간호, 2006, 큐이즈 기증
퀴어플라이 창간호
2006
큐이즈 기증
디스에이블 제5호, 2017
디스에이블 제5호
2017

2000년대 들어 인터넷 공간이 새로운 공론의 장으로 등장하는 와중에 학내 언론은 독자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종이 매체의 몰락, 대학운영과 학생자치에 관한 무관심 등이 이어지면서 학생 자치언론은 만성적인 인력난과 재정난을 겪게 되었다. 1993년 『공대저널』로 출발한 『이공대저널』은 단과대학 매체 중에 비교적 꾸준하게 발간됐지만, 2006년부터 1년 남짓 휴간한 후 종간되었다.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는 2008년 문을 닫았다. 『포트레이츠』는 2012년 제6호를 마지막으로 종간했다. 교지 『관악』은 2014년 제48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매체로는 시사종합월간지 『서울대저널』을 들 수 있다. 『서울대저널』은 ‘사회로 열린 안목, 역사를 품은 청년,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를 모토로 교육, 정치, 노동, 환경, 문화, 소수자 문제 등 대학 안팎의 여러 현안을 다루며 대학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저널』은 2013년부터 서울대저널 TV부가 출범하여 자체 다큐멘터리, 영상 속보, 사진 보도 등을 병행하고 있다. 2022년 4월 현재 제171호까지 간행되었다.

서울대학교 학생 자치언론은 1980년대 총학생회 재건에 큰 몫을 담당하며 학원 민주화·자율화 운동에 앞장섰다. 대학 사회를 대변하고 대학 언론의 지향을 제시하는 수많은 학생간행물을 펴냈다. 학생의 손으로 직접 만든 학내외 의사소통의 수단이자 진실과 접하는 통로였으며, 다양한 관점에서 자유로운 목소리를 전달하는 공론의 장이었다. SNS 등 디지털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에 학생 자치언론은 심층적 취재로 파편화된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학내외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으로 다양한 여론을 조성해왔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학생간행물의 발자취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여전히 충분하다.

“대학사회가 형성되어 대학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대학 언론은 대학사회에서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학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고, 대학 문화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편 이러한 사명의 실천에 있어서는 대학의 자유가 그 전제로 되어야 하고 대학 언론은 대학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침해 제한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이로부터 대학을 보호해야 한다. ··· ” (1971년 5월 11일 전국대학언론인협회, “대학 언론 헌장”, 「대학신문」, 1971.5.17.)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서울대학교 70년사 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70년사』, 2016.
서울대학교 기록관, 『도약의 나래를 펴라 1975-2017』, 2017.
유용태‧정숭교‧최갑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제1권 시대사』, 한울, 2020.
유용태‧정숭교‧최갑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제2권 사회문화사』, 한울, 2020.
유용태‧정숭교‧최갑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 : 제3권 증언집』, 한울, 2020.
서울대저널, 『서울대저널』, Vol.171, 202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대학신문 디지털 컬렉션, http://lib.snu.ac.kr/find/collections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뉴스, https://www.snua.or.kr/magazine?cateidx=11&sc=y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수집대상년도: 1946 ~ 현재, 기증 기록물 활용: 개교기념 역사 전시, 웹서비스 등 / 기록물유형: 사진, 영상, 문서, 기념물 등 / 기증 문의: 기록관 전문요원실(02-880-8819)

담당부서/기록관 (http://archive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