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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송지원 연구교수, 조선시대 궁중음악 이야기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펴내

2010.11.26

규장각 송지원 연구교수, 조선시대 궁중음악 이야기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펴내
땀과 恨으로 연주한 조선시대 악공들

사극 ‘동이’에는 조선시대 궁중 음악기관이었던 장악원이 등장한다. 장악원의 두 악공(주식, 영달)은 극중 주인공인 동이의 든든한 후원자이면서 또한 임금 숙종의 술 친구 노릇도 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장악원 관리들에게 늘 업신여김을 당한다. 실제 장악원 악공의 모습을 어땠을까.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송지원 교수는 책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에서 이렇게 말한다. “악공과 악생은 이른바 3D 직종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래서 전쟁 후 흩어졌던 악공과 악생 중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악공과 악생의 수가 모자라 충원하는 데에 애를 먹었으며, 정원을 채우지 못할 때도 허다했다.”

유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음악은 단지 듣고 즐기는 수단이 아니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운항하는 우주의 섭리를 담아낸 것이었다. 왕실과 조정은 엄격한 예법에 따라 음악 의식을 관리했고,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궁중음악하면 흥보다는 격식, 화려함보다는 절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오늘날의 보통 사람들에게 궁중음악은 다소 따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송 교수는 중국에 간 박지원이 중국학자들과 음악이야기를 하느라 이미 삶아놓은 양고기 먹는 것을 잊어버린 일화에서 보듯 궁중음악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책의 1장은 장악원 풍경을 중심으로 조선의 음악이 만들어져 연주되는 과정에서 그 주체들이 흘린 땀과 쏟아 부은 열정, 그리고 회한을 생생하게 그렸다. 오늘날의 국립국악원에 해당하는 장악원에는 많게는 1000여명의 음악인이 예악정치를 표방한 조선 궁중음악의 완성을 위해 밤낮으로 매진했다.

2장에서는 예(禮)와 악(樂)의 조화를 추구한 궁중음악이 실제로는 어떤 절차와 내용으로 그것을 완성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어려운 용어와 정제된 선율, 경직된 동선으로만 기억되던 궁중음악에 관한 일화, 예컨대 영조 때 인정전 화재 사건 뒤에 있었던 악기 복원 작업 등의 이야기들을 통해 전한다. 오동나무로 만든 가야금 1부 제작비가 4냥 5전이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3장은 조선 음악의 기틀을 세운 맹사성과 박연부터, 실질적 완성자인 성현, 그리고 르네상스 군주 정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용겸까지 조선의 대표 음악가 10인의 고군분투기가 펼쳐진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읽히는 사람 이야기를 통해 조선 음악사의 흐름을 꿰뚫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4장은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비파, 생황 등 조선의 대표 악기들이 등장한다. 단순히 악기의 역사와 구조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대 악기 연주의 달인들 이야기 등이 곁들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