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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는 불황에 강하다

2008.12.26.

정재응행복한 엔지니어는 불황에 강하다

정재응 | 컴퓨터공학과 94학번

- 벤처기업에 입사해 최소 생활비로 3년 버티고 희망하던 직장으로 이동
-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내 직관을 믿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좋아하다가 벤처 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에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고 벤처기업에 입사해 국민 내비게이션 '아XXX'를 제작. 3년 후 S전자에 입사. 2007년부터 공대생의 꿈의 직장인 구글로 옮겨 '행ㅂ고한 엔지니어'로 살고 있다.

진심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 달 네팔 산 자락에 올라서 나는 거듭 내 몸으로 확신했다. “나는 행복하다.”

- 94학번의 입시 대란
학업성적이 우수했다기보다 수학능력시험에 잘 적응해 운 좋게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공대 공부가 어렵기만 하고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학교를 그만 둘까를 심각히 고민하다가, 그래도 컴퓨터를 좋아했으니 정말 이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한번 실험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의 실험은 전력을 투구해서 올 A를 받으면 학교에 남는 것이고, 그래도 올 A를 못 받으면 떠나는 것이었다.
95년 가을, 나는 하루 종일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고등학교 때처럼 예습 복습을 반복했다. 그 결과 내 머리로도 올 A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전공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때의 성공의 경험과 내가 타고난 ‘공돌이’라는 확신은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 동안 내 선택을 이끌어 주는 큰 힘이 되었다. 방대한 전공 공부 때문에 겁부터 먹고 수능문제집을 펼쳐보거나 고시학원을 기웃거리는 후배들에게, 우선 전공공부를 고시만큼 한 번 열심히 해 보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 공대 석사, 모든 이공계생의 방황
IMF환란이 한창이던 때에 졸업했지만 다행히 대기업의 장학지원을 받아 대학원이 입학해 평소에 존경하던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목표 의식이 없이 들어갔던지라 연구 과제에 몰입하지 못 했다. 교수님께 죄송스럽게도 2년을 허송 세월로 낭비하며 보냈다. 대학원 공부를 하던 99~00년에는 IMF 환란이 벤처 버블로 이어져 성공한 벤처 기업 신화가 쏟아져 나왔다. 나이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 학과 선배들이 ‘벤처 재벌’로 불리며 미디어에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과감히 전공을 버리고 사법고시에 도전해 2년 만에 합격하는 선배들도 보았고, 연구하던 좋은 머리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동기들도 생겼다. 나는 연구실에 앉아 이 바깥에 무슨 세상이 있을지 하염없이 상상하며 방황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 때 차마 지도교수님께는 말씀을 못 드리고 다른 방 교수님께 진로 상담을 드렸더니, “얘기하는 거 보니까 넌 딱 공돌인데 뭘 방황하니?”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모든 방황을 접지는 못했지만 학위를 마칠 때까지 힘은 얻을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도 힘들 때에는 주저 없이 교수님 방문을 두드리라고 충고하고 싶다.

- 벤처 기업에 입사, 최소 생계비로 버텨
석사학위 취득 후 벤처기업에 도전해 보고 싶었던 나는 대기업에서 입사 조건으로 받았던 거액의 장학금을 환불하고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현재 국민 내비게이션이 된 대표 모델을 만들어낸 회사지만, 당시에는 직원 50명 규모의 그야말로 벤처회사였다. 적은 연봉에서 장학금을 환불해 내고 남은 600만원으로 1년을 버티면서 하루 걸러 밤새워 일하는 프로그래머 생활을 계속했다. 가난 때문에 힘들었고, 무엇보다 명함을 들고 가면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위축되었다. 하지만, 나는 벤처기업을 경험해 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는 개발자들이 시키는 일만 하게 되지만,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이어서 내가 개발과 기획에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개발했던 모듈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엔지니어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 길을 버리려다가 길을 찾다
3년간 벤처를 경험한 나는 국내 기업 중 최고인 S전자의 휴대폰 개발팀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대기업 입사로 명함을 내밀 때의 시선이 달라지고 괜찮은 연봉도 받게 되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에서의 엔지니어는 사업팀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기술인력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고 그런 기술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영어를 공부했고 사업 기획을 어떻게 하는지 틈틈이 엿보았다. 이런 나의 노력을 눈치채고 회사는 나를 사내 리더십 프로그램에 넣어 주었는데, S그룹 전체에서 40명을 선발해 하바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에게 트레이닝을 받게 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엔지니어보다 ‘끗발 있는’ 기획자가 되기 위해 안 되는 영어로 열심히 하바드식 케이스 스터디를 따라갔다. 그 때 나온 사례가 구글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한 것이었는데, 그 사례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는지 벼락처럼 깨닫게 되었다. 과정을 마친 나는 버렸던 꿈을 다시 집어 구글 입사를 준비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 ‘죽음의 면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상세히 배우고 두 달간 밤을 새며 준비한 끝에 나는 ‘엔지니어’로 현 직장에 입사했다.

- 행복한 엔지니어 되기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일요일이면 다음날 출근할 생각에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별난 직장인이다. 엔지니어로 이 사회에 살아가다보면 거의 모두에게 찾아오는 방황의 순간들이 있다. 나는 후배들에게 그것들을 극복하고 행복한 엔지니어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대에 입학하면 다른 과보다 많은 공부량에 시달려야 하고 (공대처럼 대학에서도 수시로 쪽지시험을 치르는 전공은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이 노력으로 고시를 보면 금방 성공하겠다는 유혹을 느낀다. 또, 전공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보면, 어차피 오래 공부할 거 의대를 가면 더 돈을 많이 벌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하면 끝도 없는 업무량에 시달리면서 이러느니 금융계나 컨설팅업계로 옮겨서 연봉을 세배로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번 이상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공대 출신 중 이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결국 다들 생각하는 탈출구가 같기 때문에 오히려 그 탈출구가 미어 터져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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