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훈 동문
작은 점을 하나하나 찍어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있다. 2013년에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웹툰 ‘데미지 오버 타임’을 연재한 만화가이자 만화평론가인 선우훈 씨다.
Q: 전공과는 다른 길,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A: 맨 처음 미술을 배웠던 이유가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만화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만화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었다. 대학에 와서도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만화나 스토리 쓰는 일에는 관심이 있었다.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고, 게임스타트업에서 게임스토리를 썼던 적도 있었다. 졸업한 후 스토리를 쓰는 일을 하다가 만화를 여러 포털사이트에 연재했고 다음 웹툰에 정식으로 연재하게 됐다.
Q: 도트라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A: 어렸을 때 집이 문구점을 했었다. 덕분에 문구점에 놓인 오락기를 통해 많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100원짜리 오락기로 ‘킹오브파이터즈’ 같은 격투게임을 주로 하면서 도트를 처음 접하게 됐고, 이후에도 전자오락을 즐겨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학교 수업 과제로 도트를 통한 작품을 낸 적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도트를 통해 만화를 그려볼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웹툰 ‘데미지 오버 타임’
Q: 연재하고 있는 ‘데미지 오버 타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세요.
A: ‘인물들의 집단을 점들의 집합으로 표현하는 만화’ 작품을 구상하면서 형식과 내용이 합치되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 도트로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형식과 내용이 잘 합치된다고 생각했다. ‘데미지 오버 타임’은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작중 인물들이 ‘내가 잘해야 모두가 살 수 있어’라는 말을 하며 ‘우리’를 위해 일부가 죽어나간다. 그런 장면이 반복되면서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다.
Q: 차기작에서 시도할 형식은?
A: 차기작에서도 마찬가지로 형식과 내용이 부합하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데미지 오버 타임’ 만큼 형식에 부합한 내용을 그려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다. 차기작에서도 도트를 통한 표현방식을 이어갈 것 같다. 도트를 통해 그리는 만화가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직은 형식에 맞는 내용을 찾지는 못했다. 페미니즘 정도를 차기작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
Q: 만화 평론의 계기
A: (선 작가는 최근, 웹툰 비평 팟캐스트인 ‘주간웹툰’을 진행하고 있으며, 만화평론 신인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등단하였다.) 현재 만화비평계는 황무지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고작 두세 명 정도에 불과하다. 만화비평의 대부분이 심도 없는 리뷰에 불과하고, 진지한 비평도 찾아보기 힘들다. 만화비평의 가뭄과 같은 현상에 문제점을 느낀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화비평을 했을 뿐이다. 이번에 상을 받은 비평도 잘 쓴 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워낙 응모한 글이 적었기 때문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만화비평계의 환경이 조금 더 좋아져 많은 글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Q: 서울대에서의 경험이 작가에게 미친 영향은?
전공 교육과 동아리 등 대학에서의 여러 활동들도 도움이 됐지만, 서울대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획일적인 고등학교에서의 만남이 아니라 서울대에 다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자아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처럼 회사원이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찾게 되었고, 만화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