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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명강 인터뷰 시리즈 - 신뢰 사회로 향하는 과도기에 선 한국

2020.06.04.

서가명강에서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주제로 인기 강의를 진행한 이재열 교수(사회학과)
서가명강에서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라는 주제로 인기 강의를 진행한 이재열 교수(사회학과)

2017년에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교수들의 인기 강의를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강연 프로그램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를 줄여 ‘서가명강’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정치·사회·역사·철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강의를 여러 플랫폼을 통해 대중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주 열리는 현장 강연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서가명강의 다채로운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2019년부터는 강연과 오디오를 통한 콘텐츠를 재구성한 ‘서가명강 시리즈’가 도서로도 출간되고 있다.

2019년 5월, 서가명강 시리즈의 네 번째 책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가 출간되었다. 이재열 교수(사회학과)의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으로, 이 교수는 “어렵고 까다로운 이론적 내용을 사회 현실에 접목시켜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이 교수는 1996년부터 서울대에서 사회적 신뢰, 사회의 품격, 네트워크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연구를 개진하였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 서가명강 시리즈의 출판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를 관통하는 핵심은 ‘사회의 품격’이다. 이재열 교수는 “사람한테 지위나 경제력 외에도 인품이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인품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며 “그것이 바로 품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국격, 즉 사회적인 품위는 단순히 경제적 성장 수준, 민주화 달성 정도 등의 지표만으로는 갖춰지지 않는 사회적 관계와 신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교수는 “거시적인 집단의 목표와 각 개인의 창의성이 동적인 균형을 형성할 때에 품격 있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설명하며 “제도와 시민의 참여가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사회의 품격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동태적인 균형점 속에서 나온다.

이러한 ‘사회의 품격’ 개념에 비추어볼 때, 이재열 교수가 진단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불신 사회’로 묘사된다. 이때의 불신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불신’ 개념에 대해 “좁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다 보니 신뢰의 반경이 축소되는 현상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가족, 친구 등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전적인 신뢰를 보이지만, 불특정 다수, 국회의원 등의 다소 먼 사람들에게는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재열 교수는 ‘불신 사회’가 ‘심판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 혹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회’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불신 사회’에서 벗어날 타개책으로 ‘일상생활 속에서의 정치적 참여’와 ‘규칙의 예측가능성’을 꼽았다. 이 교수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정치적 참여는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정치 주체에 대한 관찰과 견제를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규칙의 예측가능성’은 사회적 규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지 않고,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제정되고 유지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 두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주변인을 넘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까지 신뢰의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열 교수는 신뢰사회와 관련하여,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분석도 빼놓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한국사회가 ‘신뢰사회’로 이행하는 조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것이 곧장 ‘불신 사회’에서 ‘신뢰 사회’로의 도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신중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에서의 정치 참여, 공공성 확대와 연결될 수 있지만, 이는 신뢰도 제고로 인한 현상이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의 학습효과”라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마련된 방역 제도의 구축과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 효능감 향상이 맞물려 코로나 19에 대한 안정적인 대처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실험 단계이며, ‘신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라는 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재열 교수는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에 대한 회고를 풀어놓았다. 이 교수는 공대에서 사회학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라이트 밀즈의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의 서문이라고 한다. 라이트 밀즈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적인 삶, 사회 구조, 역사라는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각 꼭짓점의 관점을 바꾸어갈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교수는 이러한 라이트 밀즈의 말에 대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문제를 역사와 사회 구조와 연결짓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책의 독자들이 시야를 넓혀 사회적·역사적인 분야로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총체적인 사고를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소통팀 학생기자
안소연(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