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인터뷰

대학,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우는 시간

2020.06.16.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

초유의 온라인 개학 시대를 맞아 조용한 봄날의 캠퍼스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평소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왔기 때문에 일상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북에 그림 한 장 올리고, 자기 전에 음악 링크 하나 올립니다. 그사이에 할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몽상에 잠기고, 디저트를 먹고, 대소변을 봅니다.

동영상 강의 준비에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학기가 시작하고 꽤 지났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수업은 강의실에서 공간적 배치가 중요합니다. 그 배치에 따라 제 동선도 결정됩니다. 그 모든 움직임은 강의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대면 강의는 제게 큰 도전입니다. 토론 역시 상대의 바디 랭귀지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어우러져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동영상 강의로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동영상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단순히 강의를 촬영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치 하나의 영화를 찍는 듯한 구성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평소 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의 변화를 중시합니다. 수업을 들어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인생은 짧기에, 수업 시간이 지루하지 않기 바랍니다. 두 달 전쯤, 서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 한 낯선 졸업생이 제 책을 읽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거기에 “학교를 그렇게 오래 다녔어도 ‘이 학교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강의”가 드물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고 느낄 수 있는 강의를 퇴임 전에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졸업생들까지 포함해 답사를 떠나거나, 결혼 축사를 해주시는 등 학생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맺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두루 유대감을 맺을 능력은 없습니다. 지금은 관계가 단절된 학생도 있고요. 졸업한 후에도 자신의 투병 생활을 전해오는 졸업생도 있는 것을 보면, 유대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의 비결은 모르겠으나, 학생들 비위를 맞춘다고 유대감이 형성되는 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수업 외 활동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업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공부 모임과 답사 모임이 학생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과 함께,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한반도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네요. 누군가 아무런 간섭과 제약을 가하지 않으면서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양질의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해 볼 생각이 있습니다.

수업에서 글쓰기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원하는 학생에 한해 기말 리포트를 꼼꼼하게 첨삭하고, 글을 고쳐 써오도록 하는 지도 방식을 창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첨삭지도는 저 이외에도 여러 선생님들이 하고 계시겠지요. 다만 그분들이 다수가 아니다 보니, 질문에 “창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글쓰기란, 대부분의 수업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대학 교육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현 환경에서는 각오와 희생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수업 성격상 글쓰기가 필요한데 그 수업에서 글쓰기 지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라면 그런 수업을 피하겠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부임 다음 해인 2007년부터 블로그처럼 게시글을 올리기 시작하셨는데요. 조회수가 천 단위입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방문하나요?

십수 년 전에 학교에서 교수들이 홈페이지를 개설하라고 독려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학과에서 제가 가장 젊은 교수였기 때문에, 나라도 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덧글을 달지 못하게 되어 있는 홈페이지라서 방문객이 누구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잉여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을까요?

트위터 세대와 종이 신문 세대를 아우르며 교수님의 글에 ‘입덕’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글쓰기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간혹 글을 잘 읽었다고 정성스러운 이메일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제 글을 즐겨 읽는 분들이 어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느 글과 다른 점이 있어서 즐겨 읽는다고 추측해봅니다. 현재 한국어로 통용되는 글 다수에 “깊은 빡침”이 있고, 그 분노가 다른 글을 쓰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연구 논문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와 칼럼 등 말과 글을 통해서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전공을 감안하면 사회와의 소통 역시 충분히 할만한, 심지어 당연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그러나 40대에는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소통에 중독되어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정치사상의 여러 테마를 다루는 글들, 만화비평, 제가 경험한 좋은 글의 소개, 전시 기획 등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사상사는 다학제적 학문이며, 그 해석 대상을 가리지 않으므로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텍스트로 소통은 활발하게 하시지만 이미지로 매스컴이나 대중 앞에 노출을 꺼리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알아보는 일이 과연 좋을까요? 그래서 여러 TV 출연 요청과 광고모델 제의를 거절해왔습니다. 그런데 TV 출연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역시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TV 출연을 자제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 신문 기고와 달리 TV 출연은 시간 소모가 많아, 저같이 게으른 사람의 경우 자칫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줄지도 모릅니다. 둘째, 라디오와 달리 TV 출연은 담당 PD에게 훨씬 큰 편집권이 있어서 제 발언에 자율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잘 해소된다면, TV 같은 매스컴에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말 논어 에세이를 출간하시고 10년 동안 새로운 논어 번역서와 해설서 출간 계획을 발표하셨는데요. 동아시아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갖고 계신 비전이 궁금합니다.

논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고전 읽기에 관한 기존의 관행을 일신하고, 좀 더 풍부한 레퍼런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올여름에는 천 페이지가 넘는 <중국정치사상사>를 출간할 계획인데, 중국 정치사상에 관한 기존 내러티브를 일신하고, 한국정치사상사 연구를 위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향후 과제로는 <한국정치사상사> 저술이 있는데, 상당한 건강, 노력, 지원,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서, 실현 가능성은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나름 흥미롭게 여기는 계획이 있으나 비밀입니다.

앞으로 어떤 정년을 맞이하고 싶으신가요?

우선, 부끄럽지 않은 직장에서 정년을 맞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직장이 너무 부끄러운 곳이 되면, 많은 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버리겠지요. 근년에 서울대가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점진적 개선에 만족하지 말고, 과감한 개혁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관료적인 시각을 가지고 개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대가 논문을 얼마나 양산하는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지 등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서울대가 매사에 좀 더 지적으로 활성화된 곳이기를 바랍니다. 교육제도 개편이든 총장제도 개선이든 매사에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지적인 토론이 일어나고, 그에 어울리는 양질의 텍스트가 유통되기를 바랍니다. 행사를 위한 행사,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는 그만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사람으로 정년을 맞을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심사를 맡은 논문은 늘 꼼꼼히 읽는 교수, 맡은 수업에 변함없이 충실한 교수로 있다가 은퇴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불성실한 수업을 하며, 합당한 자격이나 성취가 없는데도 수상 경력을 쌓아나가는 교수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졸업식 축사 모음집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졸업 후에 서울대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길 바라는지 다시 한번 당부하신다면.

음... “서울대인”이라니, 닭살이 돋아 날아갈 것 같은 표현이군요... 한국의 대학이 예식을 자주 치르기는 하지만 제대로 치르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학과장을 맡아 정말 졸업생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졸업식사에 담고 싶었습니다. 졸업 이후에도 그 졸업식사들을 다시 읽어보고 기운을 얻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뻤습니다. 학교 혹은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돈을 넣고 캔커피를 뽑아 마시는 것과 다릅니다.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참여의 몫을 늘 상기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정크 메일로 가득한 메일함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학창 시절에나 졸업한 이후에나 좋은 배움의 기회를 목마른 사람처럼 찾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 사기꾼들을 조심하면서.

(저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
http://polisci.snu.ac.kr/kimym/main.html

(책 속에서)
연구자의 정체성을 지닌 이가 칼럼을 쓰는 것이 반드시 연구와 무관한 일일까요? 제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는 마치 연구대상에 탐침봉을 넣듯이, 자신의 칼럼 이곳저곳에 다양한 센서를 장치한 뒤에 사회에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가 어디서 버튼을 누르는지, 어떤 센서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지 등을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저는 제 연구의 대상인 이 사회와 저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p.239,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