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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를 통해 알아본 ‘철학함’의 중요성

2020.07.10.

2017년에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교수들의 인기 강의를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강연 프로그램이 지속되고 있다.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를 줄여 ‘서가명강’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정치·사회·역사·철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강의를 여러 플랫폼을 통해 대중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주 열리는 현장 강연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서가명강의 다채로운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다. 2019년부터는 강연과 오디오를 통한 콘텐츠를 재구성한 ‘서가명강 시리즈’가 도서로도 출간되고 있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강의이자, 최근 출간된 <왜 칸트인가>를 설명하는 김상환 교수(철학과)/출처: 21세기북스 Youtube채널
서가명강 시리즈의 강의이자, 최근 출간된 <왜 칸트인가>를 설명하는 김상환 교수(철학과)/출처: 21세기북스 Youtube채널

지난해 6월, 서가명강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왜 칸트인가>가 출간되었다. 김상환 교수(철학과)의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으로, 김 교수는 “학생들이 칸트 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단순한 언어와 일상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김 교수는 현재 서울대에서 ‘프랑스철학’과 ‘서양철학개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현대철학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고등과학원 초학제 독립연구단 연구책임자와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네이버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에서 자문위원 및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 안팎에서 활발한 연구 및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와 <서가명강>에 관해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상환 교수는 본래 프랑스 철학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입문 강의에서는 칸트 철학을 주로 가르치고, 서가명강 강의의 주제로도 칸트 철학을 선택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 이유로 “칸트 철학은 서양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고대와 현대를 잇는 가장 중요한 가교”라는 점을 꼽았다. 칸트는 비판 정신의 화신이며, 칸트 철학의 내용은 철학사적 흐름에서도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학생들에게 이론철학·실천철학·예술철학을 골고루 소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칸트가 윤리학·미학·국제학·과학·형이상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방대한 이론을 개진했기 때문에, 철학에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소개하기에 칸트 철학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김상환 교수는 학생들이 칸트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우리 삶의 필수 역량인 ‘비판 정신’을 학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칸트 철학은 비판철학”이며 “칸트 이후의 철학사는 칸트적 비판 정신의 계승과 변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칸트 철학은 전제, 문제, 기원, 목적, 원리 등을 다시 묻는 이론적 비판, 현실 참여를 향도하고 공동체의 진보를 추구하는 실천적 비판, 그리고 예술적 표현의 가치를 둘러싼 심미적 비평을 모두 아우르는, 비판의 원형에 가까운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김 교수는 “칸트를 읽고 배운다는 것은 비판 정신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라며 “우리 사회가 칸트를 가까이할수록 좀 더 투명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칸트 철학과 관련한 자신의 지론을 밝혔다.

칸트의 비판 정신은 김 교수가 강조하는 ‘철학함’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김 교수는 ‘철학’과 ‘철학함’을 대비하며, ‘철학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이미 생성을 완료한 정지된 이론이고 주로 철학사 연구 및 교육의 대상”인 반면, “‘철학함’이란 우리 각자가 자신의 고유한 물음에 부딪혀 그것에 답하는 과정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철학을 스스로 실천하는 과정”이다. ‘철학’이 고정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친다면, ‘철학함’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사고 과정의 방식을 체득하고, 이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철학’ 지식의 암기에 있지 않고, ‘철학함’의 과정을 삶에 실천하는 데 있기 때문에 ‘철학함’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예컨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지식의 내용적 확장을 가져오면서도 그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초월론적 차원의 인식을 구축하며 답을 한다.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진다’라는 명제는 ‘세 변’이 삼각형의 정의 속에 함축되어 있으므로,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타당하지만, 지식의 내용적 확장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반면 ‘이 삼각형은 초록이다’라는 명제는 지식의 내용적 확장을 가져오지만, 보편적이거나 필연적으로 타당하지는 않다. 지식의 내용적 확장과 필연적 타당성의 양립 불가능성이 기존 철학 논의의 딜레마였다면, 칸트는 이 문제를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초월적 영역의 개척을 통해 해결해냈다. 철학적 난제와 관련해 자문하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 영역을 구축한 칸트 철학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철학함’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김상환 교수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어려운 철학에 대한 지적 도전을 학생들에게 권했다. <왜 칸트인가>가 출간되고 이 책을 수업 교재로 삼으면서, 이 책을 서점에서 미리 살펴보고 내용이 어렵다고 판단한 학생들이 수강 취소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어려워 보이는 내용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지 말고 수업을 찬찬히 따라간다면, 어려운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는 지적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김 교수는 “철학은, 특히 어려운 철학일수록, 그것을 한 번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생각의 수준과 시야의 범위가 확연히 달라지게 만들어주는 묘약(妙藥)과 같은 것”이라며 어렵지만 뿌듯한 지적 여정에 도전해 볼 것을 권장했다.

소통팀 학생기자
안소연(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