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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연구에 몰입한 삶

2020.09.11.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1997년 처음 서울대학교에 부임했을 때만해도 미지의 영역이었던 나노 소재 분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과학자를 정의한 현택환 석좌교수는 ‘균일한 나노입자를 합성하는 승온법 (heat-up process)’ 연구로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2016)을 수상하고 향후 노벨상 화학 부문 수상자에도 가까이 다가간 세계적 과학자로 평가 받는다. 그에게 오롯이 연구에 몰입한 삶의 비결을 물었다.

과학자로서 기적의해를 맞이하다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는 것은 모든 과학자의 꿈이다. 2020년 1월부터 4월까지 현택환 교수는 〈네이처(Nature)〉, 〈네이처 머터리얼스(Nature Materials)〉,〈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 〈사이언스(Science)〉 학술지 각각에 총 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나노 입자를 주제로 기초 화학 연구부터 의료와 에너지 분야 응용연구까지 각기 다른 분야에서 그가 한 해 동안 이룬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각각의 연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나노입자를 통해 소재의 결함 구조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발표한 네이처 표지논문은 연구만 7년 이상이 걸렸다. 물과 산소만으로 과산화수소수를 만드는 연구, 뇌전증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센서 개발 연구, 공동 연구로 참여한 나노 입자의 정확한 결정 구조를 액체 상태에서 밝히는 기초연구까지 그는 학생 및 연구원들과 오랫동안 수행한 연구가 좋은 논문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고 했다. “올해 제가 발표한 3편의 네이처 논문과 1편의 사이언스 논문은 전부 저자가 10명 이상이에요. 네이처 표지논문에는 서울대 교수 3명을 포함해서 UC버클리와 스탠퍼드까지 교수만 7명이 넘게 참여했습니다. 예전처럼 한 명의 천재가 혼자서 큰 논문을 발표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21세기에는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여러 명이 모여야 세계 최고의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우리가 풀어야할 문제도 복잡해지기 때문이죠.”

제가 이룬 성과는 23년간 함께 한 제자들의 열정, 공동 연구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국비 유학으로 지원받았고, 많은 연구비를 받는 등 대한민국 국민으로 과분한 혜택을 받았습니다. 빚진 마음을 가지고 늘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승온법 논문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등은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부품은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즉 어떤 완제품이 좋은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본 구성 단위인 ‘소재’의 성질이 우수해야 한다. 바로 이 소재의 성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것이 나노과학 기술의 핵심이다. 나노미터의 크기를 가진 나노입자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크기의 입자를 균질하게 조절하는 것. 대표적으로 반도체 나노입자 크기를 6.3nm부터 2.5nm로 조절해서 자외선을 쪼이면 크기에 따라 형광의 빛깔이 결정되고, 이것이 디스플레이의 선명도를 조정하는 핵심기술인 것이다. 2001년 미국 화학회지에 발표한 ‘균일한 나노입자를 크기분리 과정 없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승온법(heat-up process)’ 논문. 세계에서 2천 번 정도 인용이 된 이 논문과 3년 후에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대량 생산의 길을 연 2004년 네이처 머터리얼스 발표 논문은 4천 번 가량 인용된 그의 대표 논문이다. “제 연구 전에 MIT와 UC버클리에서 좋은 논문을 발표했어요. 화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혼합되어 있는 입자에서 같은 크기의 입자를 일일이 골라내는 방법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대량 생산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는데 저희의 논문은 획기적으로 합성법을 개선해서 훨씬 싸고, 쉽게,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균일한 나노입자를 1000배 정도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기초 화학연구에서 나노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현택환 교수가 처음 서울대학교에 부임했을 때,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화학과 출신의 자연과학자가 공대에 부임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초 화학을 넓고, 깊게 공부한 이후 공학으로 연결지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하지 않는 본인만의 연구 주제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할 당시는 막 나노과학 분야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이 분야가 상당히 흥미롭게 와 닿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교수가 되면 꼭 독립된 연구자로서 새로운 연구를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연구 주제였던 음파화학과 전혀 다른 나노과학 분야의 논문들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후 본격적으로 나노과학기술 분야 연구를 학생들과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이 나노입자 분야에서 20여 년간 이룩한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나노기술 연구자가 전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서울대 공대 교수 중 거의 30% 이상이 관련 연구를 한다. 이제 한국은 세계 3위권의 나노기술 강국이다.

“교수로 임용되었을 당시 정착금 4천만 원을 받아서 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 논문을 부임 후 일찍 발표하여 이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연구비를 받고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임용 4년 후인 2002년에 창의연구단에 선정되었고, 2012년에 IBS에 선정되었습니다. 현재 저희 IBS 나노입자 연구단은 장비 및 연구 환경, 참여교수/연구원/대학원생 등의 인적 구성 등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입니다.”

단순하고 집중하는 삶을 살며

나노기술 분야 최고 권위자의 삶은 단순하다. 매일 평균 10시간, 하루 대부분의 활동은 오로지 연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11년째 맡고 있는 미국화학회지 편집장, IBS 단장으로 하는 일 등 꼭 해야 되는 일들 외에는 연구에 집중한다. “하루 일과 대부분은 논문을 읽거나 논문을 쓰는 것입니다. 최근 탑 저널에 나온 논문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내거나, 우리 연구실에서 한 연구 결과들을 논문으로 정리합니다.”

그는 종종 연구를 물고기 잡는 과정에 비유하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지요. 어부로 따지면 어디에 고기가 많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최신 소나(sonar)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이든 물고기가 어디에서 잡히는지 알아야죠. 그다음 실험 테크닉과 스킬을 잘 배워서 결과를 내고, 자기 언어로 스토리텔링하면 한 편의 논문이 만들어집니다. 이후 편집자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논문의 질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것이죠. 자기 힘으로 그것들을 해내야 세계적인 연구자로 설 수 있어요.”

자신이 그랬듯, 학생들을 지도할 때 항상 ‘독립적 연구자’로서 그들이 성공하길 바라는 현택환 교수. 앞선 사람이 걷는 바른 걸음이 뒤따르는 사람의 길이 된다는 마음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제자가 나오길 기대하며 그는 오늘도 묵묵히 연구실로 향한다. “제가 서울대를 떠날 때 제자들이 저를 보면서 현택환 교수를 닮고 싶다는 말을 한다면,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국민에게 빚진 마음으로 항상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가 연구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

1. 박사 전까지 세계 탑 저널에 논문 2편을 발표하며 독립된 연구자로서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2.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부대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3. 항상 다른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겸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