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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플랜트에 정차한 접촉의 순간들 – 《접촉 스테이션 vol.1》

2026. 1. 6.

《접촉 스테이션 vol.1》 전시 포스터
《접촉 스테이션 vol.1》 전시 포스터

지하철은 도시에서 가장 익숙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장소다. 매일 수많은 몸이 모이고 흩어지며 보이지 않는 접촉을 교환한다. 《접촉 스테이션 vol.1》은 바로 이 접촉을 중심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지만, 동시에 놓쳐온 감각들을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설치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다.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이하 파워플랜트)에서 진행된 본 전시의 주최·주관은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에서, 기획·운영은 콜렉티브 유실번역(이하 유실번역)에서 맡았다. 유실번역은 언어로 옮겨질 수 없는 몸에 대해, 몸과 함께 사유하고 창작하는 예술가, 연구자, 비평가들의 모임이다. 그 의미에 맞게 접촉이라는 단어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다양한 매체와 구조로 펼쳐 보였다. 작품들은 단지 시각적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감상자의 신체적 개입과 시간의 흐름을 통해 각각 다른 접촉의 순간을 재생했다.

가상의 정거장, 네 개의 방

파워플랜트 내부는 네 개의 공간으로 나뉘었다. 유실번역의 대표 봉혜언 작가는 이 구조들을 “각자의 경험을 담은 네 개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각각의 공간은 마치 지하철의 개별 정거장처럼 독립적이되, 연결된 흐름 속에서 이어졌다.

각 작품은 하나의 방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감상자가 직접 들어가 머물며 내부를 구경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지하철 안의 밀집된 감각과 텍스트 혹은 이미지가 분절적으로 배치돼, 관람객의 감각을 다양한 층위로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 우리에게 익숙한 ‘출입문 닫습니다.’, ‘발 빠짐 주의’와 같은 지하철 안내음을 활용해 친숙한 느낌을 줬다.

이 네 개의 공간은 각각 한 명(팀)의 작가가 맡았고, 그 안에는 작가들이 지하철에서 직접 경험한 감각적 순간들이 반영되어 있다. 입구부터 시작되는 점자블록을 따라 걸으면 첫 번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양지혜 작가의 전시 작품
양지혜 작가의 전시 작품

Ⅰ. 〈지지〉: 밀집과 흔들림의 구조

전시를 여는 첫 번째 공간은 양지혜 작가의 〈지지〉다. 지하철 내부에서 경험하는 밀집과 흔들림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구조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속 PVC 막과 구조물은 감상자의 시야를 굴절시키는 동시에 작품을 더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했다. 또한 개미집을 연상시키는 조각의 손잡이를 잡고 움직이며 소리와 진동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게 했다.

양지혜 작가는 개미들이 집을 오가며 접촉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이 사람들이 지하철을 오가며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유사성 속에서 드러나는 접촉의 우연성과 군집성, 그리고 겉보기에는 일률적이지만 미세한 차이들이 어떻게 흔들리며 발생하는지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양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감상자가 지하철 안에서 몸을 비켜 가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게 되는 감각을 직접 경험하며, 일상 속 접촉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소민 작가의 전시 작품
국소민 작가의 전시 작품

Ⅱ. 〈remembering, re-membering〉: 소리와 기억의 층위

두 번째 방에서는 국소민 작가의 사운드 설치와 영상적 요소가 결합한 작품이 펼쳐졌다.
〈remembering, re-membering〉은 여러 층위의 소리가 중첩되고 진동을 통해 흰 모래 위에 적힌 텍스트를 흔든다. 나무 조각 위에 앉아 작품을 더욱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었다. 또 다른 영상 설치 〈rainy window〉는 비 내리는 지하철 창밖 풍경과 파워플랜트 내부의 이미지가 레이어로 겹치게 의도됐다. 실제 지하철 창문 너머의 풍경처럼 감각을 혼재시켰다. 마지막으로 〈서울대입구역 예술무대 위에서 춤추는 나무〉는 지하철역의 낯선 구조물을 새로운 공간 속에서 재해석했다.

안소영·지승윤 작가의 전시 작품
안소영·지승윤 작가의 전시 작품

Ⅲ. 〈눈-녹기〉: 관계의 어긋남과 지속

세 번째 공간은 안소영, 지승윤 작가의〈눈-녹기〉이다. 두 작가는 접촉을 관계 맺음으로 이해하고, 관계 맺음에서 발생하는 간극의 구조를 선보였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송출된 영상에서는 두 작가가 지하철에서 관계에 대한 글을 한 줄씩 번갈아 읽고, 문장이 어긋나는 순간에는 지하철에서 내려 다음 역까지 걸으며 상대의 말을 소화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설치된 각 텐트는 내부에 배치된 빔 프로젝터와 태블릿 PC를 통해 텍스트와 영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텐트에 직접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고 두 작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었다.

봉혜언 작가의 전시 작품
봉혜언 작가의 전시 작품

Ⅳ. 〈접촉 명상〉: 감각의 수행

마지막 공간에서는 봉혜언 작가의〈접촉 명상〉이 펼쳐졌다. 이 작품은 봉 작가가 직접 수행한 접촉 명상의 기록으로부터 비롯된 다층적 사운드와 텍스트를 포함했다. 트레이싱지 위에 인쇄된 작품〈접촉 명상: 물질-텍스트〉는 작가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명상을 수행한 경험을 물성을 띈 글로 표현한 작품이다. 감상자는 트레이싱지를 가져가 전시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상의 공간에서도 접촉 경험을 다시 더듬어 볼 수 있다. 또 다른 작품 〈접촉 명상: 감각하며 감각되는 몸〉에서는 이동하는 발과 움직임이 화면에 등장하며, 음성 가이드를 통해 감상자 또한 자신의 몸의 경험을 의식적으로 살피도록 제안했다. 봉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접촉이 ‘지금-여기’에 있는 자신의 몸을 일인칭적인 관점에서 인식하도록 돕는 감각으로 체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성 가이드와 텍스트 작업을 통해 감상자가 전시장 안에서뿐 아니라, 이후 일상의 공간에서도 자신의 접촉 경험을 다시 더듬어 보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전경

다시 보는 일상, 다시 쓰는 감각

《접촉 스테이션 vol.1》은 단순히 지하철에서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시 공간에 구현하기 보다는, 도시의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고, 일상적 감각을 하나의 질문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네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은 각각의 방식으로 접촉을 체험하고, 그 순간들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지나치듯 스쳐온 순간들에 주목하며, 이 전시는 보지 못했던 감각을 보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고, 느끼지 못했던 접촉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박다윤 기자
dayun03@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