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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영어 강의, 한국어 강의

2007.06.14.

김병동 교수글: 김병동 교수 (농생대·식물생산과학부)

우리 대학도 국제화 촉진의 일환으로 영어로 하는 강의가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은 물론,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 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도 영어 강의는 필연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 같다. 교재와 강의 내용이 이미 영어로 잘 정리되어 있는 전공 분야에서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교재 개발이 잘 되지 않은 과목이나 인문 사회 예술계의 특수 전공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겠다.

나는 1992년 봄 학기 이래로 대학원 과목을 벌써 16년째 줄곧 영어로 강의해 왔다. 농생대 대학원 공통과목인 ‘세포생물학특강’, ‘분자유전학’, ‘유전자조작론’, ‘유전체학’을 두꺼운 원서로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바로 바꿔 가며 학생들을 위해 독파해 주었다. 범위도 많고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교재를 하버드, 엠아이티, 캠브리지 대학은 물론,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도 그리고 국내 다른 경쟁 대학에서도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긍심과 명예를 걸고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학생들이 최신 논문을 읽어 발표할 때 영어로 하면 가산점을 주어 독려했다. 앞으로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게 될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호응했고, 해가 갈수록 그 수와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 당시 내 영어 강의를 듣고 유학의 길에 올랐던 많은 학생이 이제는 귀국도 하여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영어 강의를 시작할 그 시절, 주소와 성명을 밝히지 않은 어느 암자의 수도승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나라말을 버리고 민족정신을 흐리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니 즉시 중단하라는 권유였다. 깊은 생각 끝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탈출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나의 영어 강의는 계속되었다. 국제화로 치닫는 지구촌 시대가 지속되는 한, 대학의 영어강의는 더욱 확대 보급될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3~4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세계화도 크게 신장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 달리 깨닫고 있다. 영어로만 읽고 쓰기를 계속하는 한, 과학 기술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먼 서양에서 빌려 온 동화 속 이야기 또는 수입 상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하되, 과학적 사고 자체를 영어를 통해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요구할 것인가? 젊은이와 일반인이 과학과 문화를 우리말로 배우고 생각하고 쓰는 가운데, 창조적 과학과 원천 기술이 샘솟아 나오는 시대를 원한다면,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일까?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에게 보급한 마틴 루터가 처했을 시대적 상황과 관념의 두터운 장벽을, 그리고 후세에 끼친 영향을 잠깐만이라도 음미해 본다면, 우리말 교재와 강의의 병행은 너무나도 작은 망상이 아닐까? 영어도 처음부터 국제어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누군가 물줄기를 바꿀 것이면 그것이 오늘 우리들여서는 안 될까?

[대학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