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한국 경제와 대학 (2004.8.20)
등록일: 2009. 7. 3. 조회수: 14077
내가 본 한국 경제와 대학
1. 서론
안녕하십니까?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수출은 호조를 보이는데도 내수는 여전히 침체되었고, 카드사와 여러 실물기업들의 부실과 여전히 심각한 가계 부채는 아직도 우리 경제가 튼튼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단기회복과 장기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종합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거시면에서 보면 괜찮은데 미시 쪽에서 보면 허약한 형상이었습니다. 그 허약함이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 위기가 오곤 했지요. 그러나 위기를 거시정책으로만 풀었지 미시정책으로 푸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미시 면에서 고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비용이 들더라도 구조조정이 필연적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려면 교육이 중요합니다. 특히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에서 우수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의 요체입니다.
2. 경제를 보는 두 가지 시각: 거시경기와 미시구조
경제를 보는 시각은 거시 경기적 시각과 미시 구조적 시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시 경기적 시각은 경제를 하나의 커다란 숲으로 보고, 그 숲을 멀리서 망원경을 가지고 보듯이, 경제를 파악합니다. 그런데 비해서 미시 구조적 시각은 그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 하나 하나 혹은 나무와 나무 간의 관계를 현미경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거시 경기적으로 볼 때는, 성장률․고용․물가수준․이자율․국제수지․주가지수․외환보유고․환율과 같은 경제 지표들을 분석합니다. 그에 비해서,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의 수익률이라든지 기업의 국제경쟁력․기업 활동의 투명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미시 구조적 시각을 취하는 것입니다.
먼저 지난 40년 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거시경기적으로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고성장의 신화는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미시구조적으로 보자면,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가 밖으로 표출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겪었던 기업부실 문제∘70년대 말의 중동건설 실패∘80년대 중반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어려움에 빠졌던 상황∘90년대 후반에 겪은 외환위기 같은 것들이 소위 ‘위기’입니다. 그런 위기들을 미시 구조적으로 표현한다면, 경제체질이 약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대체로 잘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부양책을 사용하여 경제가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시와 거시라는 거울로 지적인 게임을 계속해 봅시다. 한국경제를 거시지표 몇 가지를 통해 분석하고, 또 미시적으로도 재해석해 보기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거시 경기로 본 한국경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1. 거시경기로 본 한국경제
우선 성장률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연평균 8% 성장을 했으니, 40년을 산술적으로 단순합산하면 320%의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19C 초반부터 20C 중반까지 150년 동안에 성장한 것을 산술적으로 합해도 320%가 안 되었습니다. 아마도 1960-9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 기록은 세계사에서 이변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경제성장의 부작용도 많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파괴되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불균형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사회는 빈부격차∘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도농간의 격차와 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불균형의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 자체는 세계사적으로 남을 만한 대단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8%의 고속성장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GDP로나 GNP로 연 5백조 원 이상, 달러로는 5천억 달러가 되는 경제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규모에서 어찌 8%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많은 산업에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성장의 끝부분에 와 있습니다. 남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성장하는 과거의 양적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신화를 잊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경제성장률 대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달성되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만,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게다가 ‘2만 달러’나 ‘1만 달러’라는 구호는 계수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1달러 당 환율이 1,200원이어서, 우리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전후에서 변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환위기 이전 환율인 800원을 고수하였더라면, 우리 국민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5천 달러’인 나라에 살고 있는 격이 됩니다. 결국 ‘1인당 국민소득 몇 달러’라는 수치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현재 우리는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자꾸 국민소득을 올리려는 경기 부양적 시각으로만 한국경제를 운용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용을 통하여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3, 4년 전까지는 한국이 고용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수준을 유지하였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실업률이 연 3-4%인 경제였으니, 국제비교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 할만 합니다. 단지, 고용에서 임시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 대기업 중심의 고용구조라서 중소기업은 인력채용이 힘들다는 점,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용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용 상황은 괜찮았다고 평가내릴 수 있습니다.
물가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1960, 70년대까지 물가상승률은 20~30%나 되었습니다.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1980대와 90년대에는 계속해서 물가를 한 자리 숫자로 지켜냈습니다. 油價가 안정되는 등 외적 요인도 물가안정 정책을 도와주었겠지만, 한 자리 숫자의 인플레이션율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게다가 경제가 개방된 이후, 우리들은 물가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줄어들었습니다. 개방경제에서는 물가가 상승되더라도, 수입이 즉시 늘어나서, 물가가 다시 잡히기 때문입니다. 또 경제이론으로 보자면, 디플레이션보다는, 완만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약간의 물가상승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자율도 외환위기 이후 10%이하까지 떨어지더니, 요즘에는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주가지수 역시 한때 200-300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700-800선에 올라가 있습니다. 외환도 1,500억 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환위기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지표를 보건대, 거시적 측면에서 본 한국경제는 최근까지 대체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2-2. 미시구조로 본 한국경제
이번에는 한국경제를 미시구조적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즉 기업의 수익률이나 국제경쟁력 등의 기준에서 한국경제를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의 초라함에 상당히 실망하실 것입니다.
제조업에서의 총자산수익률은, 자산에 비해서 수익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총자산수익률, 즉 기업수익률은 1960년대 이래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왔습니다. 해외비교를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은 상황입니다. 1960년대는 8.5, 70년대는 4.3, 80년대는 2.6, 90년대 와서 1.4로 떨어졌습니다. 90년대의 총자산수익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일본 역시 낮아서 3.4, 독일은 10.2, 타이완이 5.6, 미국이 6.7입니다. 즉, 실물부문에서 한국 제조업의 총자산수익률이 너무 낮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채권이 아주 많습니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아직도 3-4%대를 맴돌고, 상호저축은행, 투신사와 같은 제 2 금융권은 20% 전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부실채권비중이 1-2%만 되면 금융 감독 당국에서 해당 금융기관에 경고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두 높으니, 누구에게도 경고신호를 보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면 “거시 경기적으로는 좋은데 미시 구조적으로는 나쁘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비유해 보지요. 거시 경기적 상황은 체온으로, 미시 구조적 상황은 체질로 1:1 대응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의문은 “체질은 나쁜데 체온이 좋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되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약한 체질에 링거주사를 주어서 생기를 어거지로 돋우어 체온은 유지시켰지만, 체질개선에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답변하겠습니다. 즉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경제운영자들이 약한 체질의 경제에 자꾸 불을 때어 경기는 좋게 유지해왔고, 체질을 튼튼히 하는데는 소홀히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식의 임시방편이 한계에 도달하여, 1997년 후반에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 잠깐, 즉 98년-99년 초까지만 해도, “이제는 거시 경기가 아니라 미시 구조다.”라는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IMF 차입금을 다 갚더니, 이제 체질개선을 다 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이후 주로 경기 불때기에 눈을 돌리면서 과거의 행동방식을 재연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에 다시 어려움을 가져온 것입니다. 약 3-4년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특소세 면제, 아파트 분양권 전매 허용 등의 무리한 정책을 통해서 경기를 살려놓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에 의한 일시적 경기회복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경기가 계속 나빠져 왔고, 내년이후에 회복될 전망도 불투명합니다. 응급처방식 경기부양에 치중하느라, 결국 경기부양과 미시구조 조정, 둘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경제가 체온 즉 거시경기는 괜찮은데, 경제의 체질 즉 미시구조는 괜찮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에 축적된 문제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미시구조적으로 허약한 경제체질을 갖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과거의 성장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좋은 거시경기 속의 나쁜 미시구조’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어 시장에 직접 개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자원배분과 경쟁제한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유망산업을 선정해서 기업별로 사업영역을 구분해 주었고, 금융을 산업정책수단으로 이용하여 산업별ㆍ기업별로 자금지원규모를 결정ㆍ집행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들을 경쟁과 자금동원의 압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서구 여러 나라들이 100, 200년에 걸쳐서 이룩한 성장을 한국경제 40여년 만에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구조가 왜곡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심화되어 왔습니다. 경제를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우선 실물부문에서의 중복-과잉투자가 경제의 효율성과 신축성을 떨어뜨리고 거품경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대출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결과 부실대출을 양산했습니다.
우선 실물부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원리의 기본법칙은 적자생존입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뒤쳐지고 이윤을 내는 효율적 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40년간 재벌기업은 정부의 보호 속에서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생산규모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재벌기업들은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키며 재고조정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자금회수는 늦어졌고, 금융비용이 급증해서 현금흐름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재벌기업들이 연쇄도산하면서 1997년에 경제위기가 촉발한 것입니다.
기업이 중복과잉투자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비효율을 낳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한국에서는 내적 기준이 아닌 외적 기준에 따라서 기업이 평가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기업규모보다 수익성이 기업성패를 좌우합니다. 기업이 작다는 이유로 투자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인프라스트럭쳐가 미비된 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내적 기준에 해당하는) 수익성을 산정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히 기업이 금융기관이나 정부와 협상할 때, (기업)규모와 같은 외적기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은 담보제공능력이 좋습니다. 설혹 사업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국가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우려한 정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규모만 크면 망하지 않는다, 즉 ‘Too big to fail’이라는 원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대마불사의 신화는 IMF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따라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보다는 규모 극대화를 추구해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중복과잉투자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로, 금융기관도 이른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었습니다. 혹시 금융기관이 위험한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서 손실을 보더라도,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손실을 보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이른바 downside-risk보다는 upside-gain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행은 자연히 기업들의 대출신청심사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게 되고, 철저한 심사 없이 대출을 해 주었습니다. 방만한 대출의 결과는 당연히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투자가 집행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외에 정치적 측면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3공이나 유신, 5공, 6공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정부는 정통성 결여나 여러 가지 과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수단으로 가시적 경제성장을 무리하게 추구해왔습니다. 예컨대 경제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기업에게 분별없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기업들은 중복・ 과잉투자를 하게 되었고, 기업의 현금흐름은 더 나빠져 갔습니다. 기업의 현금흐름이 나쁘니 채무상환이 안 되고, 은행에는 부실채권이 쌓였습니다. 결국 은행도 기업도 모두 어렵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그런데 어떻게 거시 경제적으로 성공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에 대해서 대개의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충 이런 것들입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는 노동력이 풍부했고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도 용이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 마저 단순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87년 이전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기술도입 용이성, 기업경영의 단순함 덕분에 성장이 쉬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 70년대는 동서냉전의 기류속에서 외국의 원조를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70년대의 중동건설 붐, 오일 달러의 환류, 80년대의 3저 현상과 같은 것들도 고도성장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보너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이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려움의 절정이 마침내 1997년에 경제위기로 나타났습니다.
4.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 평가
이제는 외환위기를 맞은 후에 한국경제가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거시경기적으로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도 거시경기적으로는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의 성장잠재능력에 비해서 더 많이 성장했고, 물가도 안정되었습니다. 국제수지도 큰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은 오래 못 가는 법입니다. 6% 성장은 무리한 경기부양책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가는 정부정책 덕분이라기보다는 개방경제라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수지는 수출이 잘 되서가 아니라 수입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개선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미시구조적인 눈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실물부문에서는 1999년 이후에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여왔으므로, 문닫아야 할 상당수의 한계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연쇄부도를 차단하기 위해 크게 확대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이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계속 연장되고 있어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창업을 지원하기보다는 기존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지원에 치우쳐 경쟁력 없는 기업이 계속 살아남아 가고 있습니다. 즉 시장 내 잠재부실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이자보상배율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말해봅시다. 이자보상배율이란 영업이익을 차익금 이자로 나눈 수치(=영업이익/차입금이자)입니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큰 기업은 이자를 내고도 영업이익이 생기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아서 영업이익이 금융비용, 즉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 제조업체가 1999-2000년 동안에 30%나 됩니다. 3년 이상 이자보상배율이 1이하 이면서도 생존한 기업도 5%나 됩니다. 정부는 한국경제가 고통을 겪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키며, 또 다시 경기진작이라는 유혹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아직도 요원하니,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금융부문의 부실채권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하겠습니다. 2003년 3월말 기준으로 국내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 규모는, 느슨한 한국기준으로도, 35조원이나 됩니다. 은행권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서 부실비율이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 금융권의 부실채권 문제는 아직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2 금융권 중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보험사, 종금사,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건전합니다. 그러나 같은 제2 금융권이라도 투신사, 상호저축은행, 리스사의 부실은 심각합니다. 부실채권이 많아서는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금융권 전체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LG카드 사태로 대변되는 신용카드사의 부실문제도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아직도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소비침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을 통한 거품성 경기부양책과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의 대량 발생,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 올 수밖에 없었던 카드사 부실의 고리는 아직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상태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대출행태의 변화로 등장한 가계부채문제도 한국경제를 뒤흔들 만큼의 위력을 가진 새 불씨로 등장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금융회사들은 기업대출을 매우 꺼려하였고, 가계대출이라는 손쉬운 대출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는 급속하게 늘어갔고, 자금흐름의 불균형 현상을 유발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규모가 97년에 247조 원이었다가, 2003년 3월에 462조원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업부채는 같은 기간 동안에 644조 원에서 699조 원으로 증가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가계들이 빚을 못 갚는 것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것입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서 물가가 하락하면, 가계부채의 실질치가 커집니다. 가계는 훨씬 더 소비를 줄일 것이고, 경기는 더욱 더 수렁에 빠져들 것입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가 “제2의 위기”로 갈 우려가 커집니다. 과거의 금융위기가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기업 때문에 일어난 외환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가계로 인해 금융위기와 ‘심각한 디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경제위기를 동시에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5. 한국경제의 중단기적 과제 -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경제개혁의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구조조정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에 대해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알고, 구조조정을 행할 추진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제를 맡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구조조정을 격려하되, 그 역작용인 실업대책도 강구해야 합니다.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의 많은 정책 관여자들은 글로벌 시대라는 이유로 혹은 선진국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될 텐데 자꾸 정부가 개입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시장체제가 만족스럽게 확립되지 않은 경제에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는 개입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야 경제를 시장에 맡기되, 구조조정만은 정부가 일정수준에서 개입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가 확립된 곳에서 거시 경기가 나쁠 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케인즈주의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입장이 시장주의입니다. 거시적 케인즈주의라고 하는 것은 ‘시장이 확립된 경제에서 거시 경기적 상황이 과도하게 끓으면 진정시키고, 지나치게 냉각되면 부양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확립되지 않은 곳에서는, 거시적 케인즈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시장 확립을 위한 제도개편 등을 추진하는 미시적 케인즈주의도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결국 실물이건 금융이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은 간단하게 두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물기업이건 금융기업이건 그 활동상황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잘 되는 기업은 시장에서 보상을 받고, 잘 안 되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기업은 문닫고 싶은데 정부가 사회적 충격을 고려해서 못 닫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정부는 문을 닫기 원하지만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재벌 그룹이 소유한 수많은 기업 가운데, 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3년 이상 1 미만이라고 합시다. 그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벌 그룹이 그 기업을 키우고 싶어서, 잘 되는 타기업의 이윤을 그 쪽으로 돌리고, 문닫지 않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적인 자원배분 측면에서 그런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정부는 문 닫으려는 기업이 있으면 그대로 문 닫게 두고, 또 문닫아야 할 기업들이 문을 안 닫으면 문을 닫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투명성과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입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취업자수가 감소하고 있고, 소비의 위축으로 자영업주, 일용직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경기를 살리기 보다는 실업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 안전망 확충을 비롯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6.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 - 인적자원 재구축으로서의 교육 개혁
한국 경제가 이와 같은 경제정책 외에 중․장기적 대책의 하나로 역점을 두어야 할 중요한 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육정책, 즉 인적자원의 재구축정책입니다. 저는 작년 7월 하순에 ‘차세대 성장엔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 소르망이나 폴 로머 같은 발표자들 모두가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대로 교육받은 인적자원이 경제운영의 핵심 엔진’이라는 평소의 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세계가 개방되었기 때문에 자본부족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이 모자라면, 외국자본을 유치할 환경을 조성하면 됩니다. 하지만 WTO 체제에서도 사람의 이동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인적자원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몇 가지만 추려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 대학의 현실과 문제들을 지적해보고, 이 문제들을 타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대학의 구조조정과 선발방법의 다양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6-1. 한국 대학의 현실
과거 3․40년 동안,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의 지식격차가 컸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우리의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왔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교수들로부터 선진지식을 습득하고, 사회 각 곳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써, 자본과 자원이 모두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연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대학은 경제성장의 동인이 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성공적으로 양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하였습니다. 우리와 선진 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을 전수할 뿐 아니라, 창출도 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면에서 볼 때 교수들은 학생들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배양해주는 강의를 해야 합니다. 즉,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주어진 빈칸을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빈칸 밖까지 사고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아직도 지식창출이 아니라 지식전수 중심대학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경제나 마찬가지로 대학도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뒤떨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연구는 어떻습니까, SCI라는 것이 있습니다. SCI는 Science Citation Index의 약자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ISI라는 회사에서 세계 유명 학술지 4천 개를 선정한 후, 그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학자들의 국적과 소속대학을 따져서 순위를 매기는 것입니다. 한국은 여기서 13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제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가 SCI의 35등입니다. 밖에 나가서 크게 자랑할 성과입니다. 세계에 대학이 적어도 1만개는 넘을텐데, 그 중에서 35등이면 괜찮지 않습니까? 일본은 네 개 대학, 즉 동경대학, 경도대학, 동북대학, 구주대학이 서울대학보다 앞서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옥스퍼드대와 켐브리지대만 서울대학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 밖에 토론토 대학과 브라질 대학이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나머지 대학은 모두 미국대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 자연과학자들의 논문 피인용 횟수는 35등이 못 됩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의 교수들 중에서 논문이 피인용 되는 횟수가 1,500회 이상인 분들은 고작해야 20여 명 정도입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약 4,500회 정도 인용되어야 한다는데 노벨상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이지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학도 한국경제처럼 양적 팽창이 앞섰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갈 길이 먼 것이 분명합니다. 교육시설 부문에서는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대학생 수는 시설투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아니 한국경제보다 한국대학이 더 뒤떨어져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대학은 한국경제처럼 IMF에 의해 구조조정 당하는 기회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대학들이 왜 그렇게 부실팽창을 거듭해왔을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한국대학은 한국경제와 쌍둥이처럼 이른바 나도주의(me-tooism)에 젖어서 팽창을 계속해 왔습니다. 한 대학이 종합대학을 하면 다른 대학도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거의 모든 대학이 커다란 종합대학이 되었고, 과잉규모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학도 한국 경제처럼 규모의 경제를 과신했습니다. 대학의 규모를 키워 학생 수가 많아지면 원가 절감이 된다는 생각에 집착해 왔기에, 팽창노선을 계속해왔습니다.
셋째, 대학은 사회의 장기적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국가정책 목표에 따라 단기적 공급 측면을 따라 학생 수를 늘려왔습니다. 정부가 고급 노동력이 부족해서 한 대학교의 공대정원을 늘리면, 다른 대학교들도 모두 공대를 육성했습니다. 서울대가 대학원 중심대학을 한다고 하면, 다른 대학도 대학원 중심 대학을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4년제 대학이 200개이고, 전문대학이 160개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천명당 대학원생 수가 미국은 3.9명, 일본은 1.9명인데, 우리나라는 6.1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학생 수는 전체 인구 대비 4.08%입니다.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대학을 양질의 교육과 연구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바로잡아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6-2. 대학의 구조조정
대학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잘 안 되는 대학은 문을 닫고, 지금 잘 되는 대학도 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우선 방만하게 늘어난 대학원 규모부터라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서울대 대학원생 수가 1만 천명인데, 세상에서 이렇게 큰 대학원이 많지 않습니다. 숫자로 비슷한 대학이 하버드대와 콜럼비아대학인데, 그 대학들도 특수대학원인 법대․상경대․신학대․의대등의 대학원생을 제외하면, 일반대학원생 숫자는 3-4천명에 불과합니다. 이러니 ‘서울대 대학원이 정원미달’이라는 신문기사가 전혀 놀라운 소식이 아닌 것입니다. 서울대가 정원을 못 채우니, 서울의 다른 대학이나 지방대학도 정원미달입니다. 정원을 못 채우니, 지방대학은 지방의 기관장(예: 세무서장, 경찰서장)들을 대학원에 유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총장이 된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학원정원 감축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신통하지 않습니다. 지난 1년간 줄인 대학원 정원이 겨우 500명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여러 구성원들이 팽창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은 임기 동안 서울대대학원 정원을 대폭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정시점에서 각 교수들에게 대학원생을 2-3명 배정하고, 대학원생 전원은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지급하는 학문후속세대로 기를 예정입니다. 그 이상으로 지도 대학원생 숫자를 늘리려는 교수가 있다면, 교수 자신이 연구비 등을 통해 모든 대학원생을 전액 장학생으로 만들기 위한 경비를 조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사과정 정원 축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대는 그동안 꾸준히 정원을 감축하였지만, 현재도 매년 4천명 정도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고대는 각각 5000명 이상씩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세 대학에서 1년 동안 약 만 오천여 명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하바드 대학은 1년에 1,500명 뽑습니다. 예일대는 1,300명을, 프린스턴 대학은 1,100명을 선발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고 크다는 10개정도 사립대학에서 1년에 배출되는 학생 수가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습니다.
미국인구의 1/5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명문대라는 SKY(서울,고려,연세)대학출신의 숫자가 미국 최일류 대학 졸업생 수의 거의 1.5배를 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극단적으로 비유해, 대한민국 직업세계 피라미드의 정상에 만 오천자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SKY 대학 출신만으로도 이미 그 자리는 다 충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그 곳에 갈 여지가 희박하게 되니,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사회통합이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학벌 혹은 대학서열 철폐운동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SKY 대학이외의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학정원 감축은 사회 형평성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면 질좋은 교육을 효율적으로 시키기 어렵다는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2003년에 서울대 신입생 기본교육의 일환으로 ‘글쓰기 훈련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전년도 예산에 편성된 사업이 아니다보니, 예산을 3억 밖에 투입하지 못했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신입생이 주로 수강하는 12개 학과목에 한해서,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글을 써오라고 하였습니다. 미미한 횟수에도 불구하고 센터 조교들은 ‘제대로’ 첨삭과 지도를 해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학생 수를 대폭 줄여야, 내실있는 글쓰기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같은 논리가 다른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과 대학 시설의 이상적인 비율, 교육의 질을 고려한다면 정원축소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미 1년에 3,900명의 정원을 3,250명으로 줄였습니다. 많은 저항이 있었으나 설득을 통해 성사시켰습니다.
6-3.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제도
이처럼 학생 수를 줄이고 더 잘 교육해야겠는데, 어떤 학생을 가르칠 뽑을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선발하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신입생들을 다양한 출신지역에서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전국의 행정구역이 232개인데, 서울대에 학생을 하나도 못 넣는 행정구역이 70여개나 됩니다. 20년 후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퍼지게끔, 서울대는 다양한 지역출신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출신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놓으면 기대할 수 있는 부수효과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나누어 가지며, 이질적인 문화 자본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생기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창의성이 개발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전수단계에서 지식창출단계로 가는 필요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한다는 의미의 ‘지역 균형제’라는 입시제도가 탄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각 지역에 최소 4명의 쿼터를 배정하려 했으나, 현실적 난점이 있었고, 생각 끝에 내신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보다는 지방 고등학교에서 여러 과목 내신 1등을 하기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어, 지방학생들이 지역 균형제에서는 유리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전적으로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으면, 사후적으로 전국에서 골고루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외에 서울대는 수능만 잘하는 사람,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사람들도 뽑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골고루 잘 하는 평균인을 뽑던 입시제도에서 다양한 기준에서 다양한 재능을 갖춘 사람을 뽑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학부모님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 경시학원을 조장하는 ‘국내’ 올림피아드 입상경력이라든지, 과외를 하고 만든다는 자기소개서, 돈주고 만든다는 추천서 같은 것들은 입시자료에서 모두 폐지하거나 당락에 영향을 별로 안 미치게 할 것입니다.
사회일각에서는 서울대가 지역균형선발제를 통해 지방인재를 독식하려고 한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지역균형선발제는 입학정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지역균형 선발제 때문에 불합격한 우수학생들은 타대학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인재독식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의미있는 새 선발기준을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다양한 기준에서 학생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다양한 환경에 자극받아 창의성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7. 결론
실물부문에서의 구조조정, 금융구조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단ㆍ중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것은 장기적 대책입니다.
대학은 전문지식 뿐 아니라 지식, 지혜, 자긍심, 자기통제력, 사명감, 타인에 대한 감수성, 비판정신 등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창의성의 토양을 개발하고 경륜을 키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완수해야만, 비로소 한국의 미래가 밝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 할수록 개별지식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판별할 수 있는 감식안과 종합적 판단력을 갖춘 인재가 요구됩니다.
또한 대학교육은 전문지식의 전수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과 연관해서 정의, 고결함, 도덕관념,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지도력의 가치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행하는 역할과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이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예컨대 학생 1인당 교육경비, 교수와 학생의 비율, 도서관의 장서 수 등의 제고를 위해 과감한 교육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분위기는 학생들을 전통적인 학문 탐구보다는 자격증 획득에 더 관심을 보이도록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건강하고 본질적인 지식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기초학문의 지원이 시행되지 않으면 빈칸 밖에서 사고하는 창조적 능력의 습득은 요원해지고 그럴수록 새로운 지식창출은 어렵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연구지원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일부 분야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면 학문 전반적인 영역에서 기존연구자들이나 학문 후속세대들을 위한 지원체제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대학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해나갈 기회를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재능있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나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만드는데서나 제한이 있어선 곤란합니다. 최근 대학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학의 유연성과 능력을 제한하는 규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자율성을 더욱 허용해야 합니다.
경제와 대학에 대한 저의 제안들이 잘 시행된다면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세계 어딜 가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경제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 되어서, 한국경제나 대학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대학교 총장 정 운 찬
1. 서론
안녕하십니까?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수출은 호조를 보이는데도 내수는 여전히 침체되었고, 카드사와 여러 실물기업들의 부실과 여전히 심각한 가계 부채는 아직도 우리 경제가 튼튼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단기회복과 장기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종합진단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거시면에서 보면 괜찮은데 미시 쪽에서 보면 허약한 형상이었습니다. 그 허약함이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 위기가 오곤 했지요. 그러나 위기를 거시정책으로만 풀었지 미시정책으로 푸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미시 면에서 고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비용이 들더라도 구조조정이 필연적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려면 교육이 중요합니다. 특히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우리 경제의 발전단계에서 우수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의 요체입니다.
2. 경제를 보는 두 가지 시각: 거시경기와 미시구조
경제를 보는 시각은 거시 경기적 시각과 미시 구조적 시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시 경기적 시각은 경제를 하나의 커다란 숲으로 보고, 그 숲을 멀리서 망원경을 가지고 보듯이, 경제를 파악합니다. 그런데 비해서 미시 구조적 시각은 그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 하나 하나 혹은 나무와 나무 간의 관계를 현미경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거시 경기적으로 볼 때는, 성장률․고용․물가수준․이자율․국제수지․주가지수․외환보유고․환율과 같은 경제 지표들을 분석합니다. 그에 비해서,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의 수익률이라든지 기업의 국제경쟁력․기업 활동의 투명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미시 구조적 시각을 취하는 것입니다.
먼저 지난 40년 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거시경기적으로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고성장의 신화는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미시구조적으로 보자면,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가 밖으로 표출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겪었던 기업부실 문제∘70년대 말의 중동건설 실패∘80년대 중반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어려움에 빠졌던 상황∘90년대 후반에 겪은 외환위기 같은 것들이 소위 ‘위기’입니다. 그런 위기들을 미시 구조적으로 표현한다면, 경제체질이 약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대체로 잘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부양책을 사용하여 경제가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시와 거시라는 거울로 지적인 게임을 계속해 봅시다. 한국경제를 거시지표 몇 가지를 통해 분석하고, 또 미시적으로도 재해석해 보기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거시 경기로 본 한국경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1. 거시경기로 본 한국경제
우선 성장률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연평균 8% 성장을 했으니, 40년을 산술적으로 단순합산하면 320%의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19C 초반부터 20C 중반까지 150년 동안에 성장한 것을 산술적으로 합해도 320%가 안 되었습니다. 아마도 1960-9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 기록은 세계사에서 이변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경제성장의 부작용도 많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파괴되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불균형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사회는 빈부격차∘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도농간의 격차와 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불균형의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 자체는 세계사적으로 남을 만한 대단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8%의 고속성장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GDP로나 GNP로 연 5백조 원 이상, 달러로는 5천억 달러가 되는 경제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규모에서 어찌 8%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많은 산업에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성장의 끝부분에 와 있습니다. 남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성장하는 과거의 양적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신화를 잊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경제성장률 대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달성되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만,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게다가 ‘2만 달러’나 ‘1만 달러’라는 구호는 계수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1달러 당 환율이 1,200원이어서, 우리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전후에서 변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환위기 이전 환율인 800원을 고수하였더라면, 우리 국민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5천 달러’인 나라에 살고 있는 격이 됩니다. 결국 ‘1인당 국민소득 몇 달러’라는 수치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현재 우리는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자꾸 국민소득을 올리려는 경기 부양적 시각으로만 한국경제를 운용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용을 통하여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3, 4년 전까지는 한국이 고용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수준을 유지하였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실업률이 연 3-4%인 경제였으니, 국제비교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 할만 합니다. 단지, 고용에서 임시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 대기업 중심의 고용구조라서 중소기업은 인력채용이 힘들다는 점,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용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용 상황은 괜찮았다고 평가내릴 수 있습니다.
물가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1960, 70년대까지 물가상승률은 20~30%나 되었습니다.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1980대와 90년대에는 계속해서 물가를 한 자리 숫자로 지켜냈습니다. 油價가 안정되는 등 외적 요인도 물가안정 정책을 도와주었겠지만, 한 자리 숫자의 인플레이션율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게다가 경제가 개방된 이후, 우리들은 물가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줄어들었습니다. 개방경제에서는 물가가 상승되더라도, 수입이 즉시 늘어나서, 물가가 다시 잡히기 때문입니다. 또 경제이론으로 보자면, 디플레이션보다는, 완만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약간의 물가상승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자율도 외환위기 이후 10%이하까지 떨어지더니, 요즘에는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주가지수 역시 한때 200-300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700-800선에 올라가 있습니다. 외환도 1,500억 달러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환위기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지표를 보건대, 거시적 측면에서 본 한국경제는 최근까지 대체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2-2. 미시구조로 본 한국경제
이번에는 한국경제를 미시구조적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즉 기업의 수익률이나 국제경쟁력 등의 기준에서 한국경제를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의 초라함에 상당히 실망하실 것입니다.
제조업에서의 총자산수익률은, 자산에 비해서 수익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총자산수익률, 즉 기업수익률은 1960년대 이래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왔습니다. 해외비교를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은 상황입니다. 1960년대는 8.5, 70년대는 4.3, 80년대는 2.6, 90년대 와서 1.4로 떨어졌습니다. 90년대의 총자산수익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일본 역시 낮아서 3.4, 독일은 10.2, 타이완이 5.6, 미국이 6.7입니다. 즉, 실물부문에서 한국 제조업의 총자산수익률이 너무 낮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채권이 아주 많습니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아직도 3-4%대를 맴돌고, 상호저축은행, 투신사와 같은 제 2 금융권은 20% 전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부실채권비중이 1-2%만 되면 금융 감독 당국에서 해당 금융기관에 경고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두 높으니, 누구에게도 경고신호를 보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면 “거시 경기적으로는 좋은데 미시 구조적으로는 나쁘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비유해 보지요. 거시 경기적 상황은 체온으로, 미시 구조적 상황은 체질로 1:1 대응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의문은 “체질은 나쁜데 체온이 좋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되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약한 체질에 링거주사를 주어서 생기를 어거지로 돋우어 체온은 유지시켰지만, 체질개선에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답변하겠습니다. 즉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경제운영자들이 약한 체질의 경제에 자꾸 불을 때어 경기는 좋게 유지해왔고, 체질을 튼튼히 하는데는 소홀히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식의 임시방편이 한계에 도달하여, 1997년 후반에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 잠깐, 즉 98년-99년 초까지만 해도, “이제는 거시 경기가 아니라 미시 구조다.”라는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IMF 차입금을 다 갚더니, 이제 체질개선을 다 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이후 주로 경기 불때기에 눈을 돌리면서 과거의 행동방식을 재연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에 다시 어려움을 가져온 것입니다. 약 3-4년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특소세 면제, 아파트 분양권 전매 허용 등의 무리한 정책을 통해서 경기를 살려놓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에 의한 일시적 경기회복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경기가 계속 나빠져 왔고, 내년이후에 회복될 전망도 불투명합니다. 응급처방식 경기부양에 치중하느라, 결국 경기부양과 미시구조 조정, 둘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경제가 체온 즉 거시경기는 괜찮은데, 경제의 체질 즉 미시구조는 괜찮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에 축적된 문제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미시구조적으로 허약한 경제체질을 갖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과거의 성장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좋은 거시경기 속의 나쁜 미시구조’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어 시장에 직접 개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자원배분과 경쟁제한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유망산업을 선정해서 기업별로 사업영역을 구분해 주었고, 금융을 산업정책수단으로 이용하여 산업별ㆍ기업별로 자금지원규모를 결정ㆍ집행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들을 경쟁과 자금동원의 압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서구 여러 나라들이 100, 200년에 걸쳐서 이룩한 성장을 한국경제 40여년 만에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구조가 왜곡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심화되어 왔습니다. 경제를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우선 실물부문에서의 중복-과잉투자가 경제의 효율성과 신축성을 떨어뜨리고 거품경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대출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결과 부실대출을 양산했습니다.
우선 실물부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원리의 기본법칙은 적자생존입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뒤쳐지고 이윤을 내는 효율적 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40년간 재벌기업은 정부의 보호 속에서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생산규모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재벌기업들은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키며 재고조정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자금회수는 늦어졌고, 금융비용이 급증해서 현금흐름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재벌기업들이 연쇄도산하면서 1997년에 경제위기가 촉발한 것입니다.
기업이 중복과잉투자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비효율을 낳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한국에서는 내적 기준이 아닌 외적 기준에 따라서 기업이 평가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기업규모보다 수익성이 기업성패를 좌우합니다. 기업이 작다는 이유로 투자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인프라스트럭쳐가 미비된 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내적 기준에 해당하는) 수익성을 산정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히 기업이 금융기관이나 정부와 협상할 때, (기업)규모와 같은 외적기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은 담보제공능력이 좋습니다. 설혹 사업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국가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우려한 정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규모만 크면 망하지 않는다, 즉 ‘Too big to fail’이라는 원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대마불사의 신화는 IMF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따라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보다는 규모 극대화를 추구해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중복과잉투자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로, 금융기관도 이른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었습니다. 혹시 금융기관이 위험한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서 손실을 보더라도,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손실을 보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이른바 downside-risk보다는 upside-gain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행은 자연히 기업들의 대출신청심사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게 되고, 철저한 심사 없이 대출을 해 주었습니다. 방만한 대출의 결과는 당연히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투자가 집행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외에 정치적 측면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3공이나 유신, 5공, 6공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정부는 정통성 결여나 여러 가지 과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수단으로 가시적 경제성장을 무리하게 추구해왔습니다. 예컨대 경제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기업에게 분별없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기업들은 중복・ 과잉투자를 하게 되었고, 기업의 현금흐름은 더 나빠져 갔습니다. 기업의 현금흐름이 나쁘니 채무상환이 안 되고, 은행에는 부실채권이 쌓였습니다. 결국 은행도 기업도 모두 어렵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그런데 어떻게 거시 경제적으로 성공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에 대해서 대개의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충 이런 것들입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는 노동력이 풍부했고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도 용이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 마저 단순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87년 이전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기술도입 용이성, 기업경영의 단순함 덕분에 성장이 쉬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 70년대는 동서냉전의 기류속에서 외국의 원조를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70년대의 중동건설 붐, 오일 달러의 환류, 80년대의 3저 현상과 같은 것들도 고도성장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보너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이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려움의 절정이 마침내 1997년에 경제위기로 나타났습니다.
4.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 평가
이제는 외환위기를 맞은 후에 한국경제가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거시경기적으로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도 거시경기적으로는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의 성장잠재능력에 비해서 더 많이 성장했고, 물가도 안정되었습니다. 국제수지도 큰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은 오래 못 가는 법입니다. 6% 성장은 무리한 경기부양책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가는 정부정책 덕분이라기보다는 개방경제라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수지는 수출이 잘 되서가 아니라 수입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개선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미시구조적인 눈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실물부문에서는 1999년 이후에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여왔으므로, 문닫아야 할 상당수의 한계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연쇄부도를 차단하기 위해 크게 확대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이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계속 연장되고 있어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창업을 지원하기보다는 기존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지원에 치우쳐 경쟁력 없는 기업이 계속 살아남아 가고 있습니다. 즉 시장 내 잠재부실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이자보상배율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말해봅시다. 이자보상배율이란 영업이익을 차익금 이자로 나눈 수치(=영업이익/차입금이자)입니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큰 기업은 이자를 내고도 영업이익이 생기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아서 영업이익이 금융비용, 즉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 제조업체가 1999-2000년 동안에 30%나 됩니다. 3년 이상 이자보상배율이 1이하 이면서도 생존한 기업도 5%나 됩니다. 정부는 한국경제가 고통을 겪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키며, 또 다시 경기진작이라는 유혹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아직도 요원하니,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금융부문의 부실채권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하겠습니다. 2003년 3월말 기준으로 국내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 규모는, 느슨한 한국기준으로도, 35조원이나 됩니다. 은행권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서 부실비율이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 금융권의 부실채권 문제는 아직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2 금융권 중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보험사, 종금사,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건전합니다. 그러나 같은 제2 금융권이라도 투신사, 상호저축은행, 리스사의 부실은 심각합니다. 부실채권이 많아서는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금융권 전체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LG카드 사태로 대변되는 신용카드사의 부실문제도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아직도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소비침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을 통한 거품성 경기부양책과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의 대량 발생,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 올 수밖에 없었던 카드사 부실의 고리는 아직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한 상태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대출행태의 변화로 등장한 가계부채문제도 한국경제를 뒤흔들 만큼의 위력을 가진 새 불씨로 등장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금융회사들은 기업대출을 매우 꺼려하였고, 가계대출이라는 손쉬운 대출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는 급속하게 늘어갔고, 자금흐름의 불균형 현상을 유발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규모가 97년에 247조 원이었다가, 2003년 3월에 462조원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업부채는 같은 기간 동안에 644조 원에서 699조 원으로 증가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가계들이 빚을 못 갚는 것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것입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서 물가가 하락하면, 가계부채의 실질치가 커집니다. 가계는 훨씬 더 소비를 줄일 것이고, 경기는 더욱 더 수렁에 빠져들 것입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가 “제2의 위기”로 갈 우려가 커집니다. 과거의 금융위기가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기업 때문에 일어난 외환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가계로 인해 금융위기와 ‘심각한 디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경제위기를 동시에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5. 한국경제의 중단기적 과제 -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경제개혁의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구조조정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에 대해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알고, 구조조정을 행할 추진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제를 맡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구조조정을 격려하되, 그 역작용인 실업대책도 강구해야 합니다.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의 많은 정책 관여자들은 글로벌 시대라는 이유로 혹은 선진국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될 텐데 자꾸 정부가 개입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시장체제가 만족스럽게 확립되지 않은 경제에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는 개입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야 경제를 시장에 맡기되, 구조조정만은 정부가 일정수준에서 개입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가 확립된 곳에서 거시 경기가 나쁠 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케인즈주의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입장이 시장주의입니다. 거시적 케인즈주의라고 하는 것은 ‘시장이 확립된 경제에서 거시 경기적 상황이 과도하게 끓으면 진정시키고, 지나치게 냉각되면 부양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확립되지 않은 곳에서는, 거시적 케인즈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시장 확립을 위한 제도개편 등을 추진하는 미시적 케인즈주의도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결국 실물이건 금융이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은 간단하게 두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물기업이건 금융기업이건 그 활동상황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잘 되는 기업은 시장에서 보상을 받고, 잘 안 되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기업은 문닫고 싶은데 정부가 사회적 충격을 고려해서 못 닫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정부는 문을 닫기 원하지만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재벌 그룹이 소유한 수많은 기업 가운데, 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3년 이상 1 미만이라고 합시다. 그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벌 그룹이 그 기업을 키우고 싶어서, 잘 되는 타기업의 이윤을 그 쪽으로 돌리고, 문닫지 않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적인 자원배분 측면에서 그런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정부는 문 닫으려는 기업이 있으면 그대로 문 닫게 두고, 또 문닫아야 할 기업들이 문을 안 닫으면 문을 닫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투명성과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입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취업자수가 감소하고 있고, 소비의 위축으로 자영업주, 일용직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경기를 살리기 보다는 실업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 안전망 확충을 비롯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6.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 - 인적자원 재구축으로서의 교육 개혁
한국 경제가 이와 같은 경제정책 외에 중․장기적 대책의 하나로 역점을 두어야 할 중요한 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육정책, 즉 인적자원의 재구축정책입니다. 저는 작년 7월 하순에 ‘차세대 성장엔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 소르망이나 폴 로머 같은 발표자들 모두가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대로 교육받은 인적자원이 경제운영의 핵심 엔진’이라는 평소의 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세계가 개방되었기 때문에 자본부족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이 모자라면, 외국자본을 유치할 환경을 조성하면 됩니다. 하지만 WTO 체제에서도 사람의 이동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인적자원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몇 가지만 추려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 대학의 현실과 문제들을 지적해보고, 이 문제들을 타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대학의 구조조정과 선발방법의 다양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6-1. 한국 대학의 현실
과거 3․40년 동안,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의 지식격차가 컸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우리의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왔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교수들로부터 선진지식을 습득하고, 사회 각 곳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써, 자본과 자원이 모두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연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대학은 경제성장의 동인이 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성공적으로 양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하였습니다. 우리와 선진 국가들의 기술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대학은 이제 지식을 전수할 뿐 아니라, 창출도 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육면에서 볼 때 교수들은 학생들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배양해주는 강의를 해야 합니다. 즉,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주어진 빈칸을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빈칸 밖까지 사고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아직도 지식창출이 아니라 지식전수 중심대학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경제나 마찬가지로 대학도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뒤떨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연구는 어떻습니까, SCI라는 것이 있습니다. SCI는 Science Citation Index의 약자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ISI라는 회사에서 세계 유명 학술지 4천 개를 선정한 후, 그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학자들의 국적과 소속대학을 따져서 순위를 매기는 것입니다. 한국은 여기서 13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제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가 SCI의 35등입니다. 밖에 나가서 크게 자랑할 성과입니다. 세계에 대학이 적어도 1만개는 넘을텐데, 그 중에서 35등이면 괜찮지 않습니까? 일본은 네 개 대학, 즉 동경대학, 경도대학, 동북대학, 구주대학이 서울대학보다 앞서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옥스퍼드대와 켐브리지대만 서울대학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 밖에 토론토 대학과 브라질 대학이 우리보다 앞서 있습니다. 나머지 대학은 모두 미국대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국 자연과학자들의 논문 피인용 횟수는 35등이 못 됩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나 공과대학의 교수들 중에서 논문이 피인용 되는 횟수가 1,500회 이상인 분들은 고작해야 20여 명 정도입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약 4,500회 정도 인용되어야 한다는데 노벨상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이지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학도 한국경제처럼 양적 팽창이 앞섰을 뿐이지, 질적으로는 갈 길이 먼 것이 분명합니다. 교육시설 부문에서는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대학생 수는 시설투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아니 한국경제보다 한국대학이 더 뒤떨어져 있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대학은 한국경제처럼 IMF에 의해 구조조정 당하는 기회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대학들이 왜 그렇게 부실팽창을 거듭해왔을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한국대학은 한국경제와 쌍둥이처럼 이른바 나도주의(me-tooism)에 젖어서 팽창을 계속해 왔습니다. 한 대학이 종합대학을 하면 다른 대학도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거의 모든 대학이 커다란 종합대학이 되었고, 과잉규모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학도 한국 경제처럼 규모의 경제를 과신했습니다. 대학의 규모를 키워 학생 수가 많아지면 원가 절감이 된다는 생각에 집착해 왔기에, 팽창노선을 계속해왔습니다.
셋째, 대학은 사회의 장기적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국가정책 목표에 따라 단기적 공급 측면을 따라 학생 수를 늘려왔습니다. 정부가 고급 노동력이 부족해서 한 대학교의 공대정원을 늘리면, 다른 대학교들도 모두 공대를 육성했습니다. 서울대가 대학원 중심대학을 한다고 하면, 다른 대학도 대학원 중심 대학을 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4년제 대학이 200개이고, 전문대학이 160개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천명당 대학원생 수가 미국은 3.9명, 일본은 1.9명인데, 우리나라는 6.1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학생 수는 전체 인구 대비 4.08%입니다.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합니다. 대학을 양질의 교육과 연구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바로잡아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6-2. 대학의 구조조정
대학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잘 안 되는 대학은 문을 닫고, 지금 잘 되는 대학도 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우선 방만하게 늘어난 대학원 규모부터라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서울대 대학원생 수가 1만 천명인데, 세상에서 이렇게 큰 대학원이 많지 않습니다. 숫자로 비슷한 대학이 하버드대와 콜럼비아대학인데, 그 대학들도 특수대학원인 법대․상경대․신학대․의대등의 대학원생을 제외하면, 일반대학원생 숫자는 3-4천명에 불과합니다. 이러니 ‘서울대 대학원이 정원미달’이라는 신문기사가 전혀 놀라운 소식이 아닌 것입니다. 서울대가 정원을 못 채우니, 서울의 다른 대학이나 지방대학도 정원미달입니다. 정원을 못 채우니, 지방대학은 지방의 기관장(예: 세무서장, 경찰서장)들을 대학원에 유치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총장이 된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학원정원 감축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과는 신통하지 않습니다. 지난 1년간 줄인 대학원 정원이 겨우 500명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여러 구성원들이 팽창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은 임기 동안 서울대대학원 정원을 대폭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정시점에서 각 교수들에게 대학원생을 2-3명 배정하고, 대학원생 전원은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지급하는 학문후속세대로 기를 예정입니다. 그 이상으로 지도 대학원생 숫자를 늘리려는 교수가 있다면, 교수 자신이 연구비 등을 통해 모든 대학원생을 전액 장학생으로 만들기 위한 경비를 조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사과정 정원 축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대는 그동안 꾸준히 정원을 감축하였지만, 현재도 매년 4천명 정도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고대는 각각 5000명 이상씩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세 대학에서 1년 동안 약 만 오천여 명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하바드 대학은 1년에 1,500명 뽑습니다. 예일대는 1,300명을, 프린스턴 대학은 1,100명을 선발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고 크다는 10개정도 사립대학에서 1년에 배출되는 학생 수가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습니다.
미국인구의 1/5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명문대라는 SKY(서울,고려,연세)대학출신의 숫자가 미국 최일류 대학 졸업생 수의 거의 1.5배를 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극단적으로 비유해, 대한민국 직업세계 피라미드의 정상에 만 오천자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SKY 대학 출신만으로도 이미 그 자리는 다 충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그 곳에 갈 여지가 희박하게 되니, 소외감을 느낄 것입니다. 사회통합이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학벌 혹은 대학서열 철폐운동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SKY 대학이외의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학정원 감축은 사회 형평성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면 질좋은 교육을 효율적으로 시키기 어렵다는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2003년에 서울대 신입생 기본교육의 일환으로 ‘글쓰기 훈련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전년도 예산에 편성된 사업이 아니다보니, 예산을 3억 밖에 투입하지 못했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신입생이 주로 수강하는 12개 학과목에 한해서, 한 학기에 두 번 정도 글을 써오라고 하였습니다. 미미한 횟수에도 불구하고 센터 조교들은 ‘제대로’ 첨삭과 지도를 해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학생 수를 대폭 줄여야, 내실있는 글쓰기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같은 논리가 다른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과 대학 시설의 이상적인 비율, 교육의 질을 고려한다면 정원축소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미 1년에 3,900명의 정원을 3,250명으로 줄였습니다. 많은 저항이 있었으나 설득을 통해 성사시켰습니다.
6-3.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제도
이처럼 학생 수를 줄이고 더 잘 교육해야겠는데, 어떤 학생을 가르칠 뽑을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선발하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신입생들을 다양한 출신지역에서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전국의 행정구역이 232개인데, 서울대에 학생을 하나도 못 넣는 행정구역이 70여개나 됩니다. 20년 후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퍼지게끔, 서울대는 다양한 지역출신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출신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놓으면 기대할 수 있는 부수효과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나누어 가지며, 이질적인 문화 자본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생기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창의성이 개발됩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전수단계에서 지식창출단계로 가는 필요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한다는 의미의 ‘지역 균형제’라는 입시제도가 탄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각 지역에 최소 4명의 쿼터를 배정하려 했으나, 현실적 난점이 있었고, 생각 끝에 내신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보다는 지방 고등학교에서 여러 과목 내신 1등을 하기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어, 지방학생들이 지역 균형제에서는 유리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전적으로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으면, 사후적으로 전국에서 골고루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외에 서울대는 수능만 잘하는 사람,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사람들도 뽑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골고루 잘 하는 평균인을 뽑던 입시제도에서 다양한 기준에서 다양한 재능을 갖춘 사람을 뽑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학부모님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 경시학원을 조장하는 ‘국내’ 올림피아드 입상경력이라든지, 과외를 하고 만든다는 자기소개서, 돈주고 만든다는 추천서 같은 것들은 입시자료에서 모두 폐지하거나 당락에 영향을 별로 안 미치게 할 것입니다.
사회일각에서는 서울대가 지역균형선발제를 통해 지방인재를 독식하려고 한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지역균형선발제는 입학정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지역균형 선발제 때문에 불합격한 우수학생들은 타대학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인재독식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의미있는 새 선발기준을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다양한 기준에서 학생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다양한 환경에 자극받아 창의성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7. 결론
실물부문에서의 구조조정, 금융구조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단ㆍ중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수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것은 장기적 대책입니다.
대학은 전문지식 뿐 아니라 지식, 지혜, 자긍심, 자기통제력, 사명감, 타인에 대한 감수성, 비판정신 등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창의성의 토양을 개발하고 경륜을 키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완수해야만, 비로소 한국의 미래가 밝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 할수록 개별지식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판별할 수 있는 감식안과 종합적 판단력을 갖춘 인재가 요구됩니다.
또한 대학교육은 전문지식의 전수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과 연관해서 정의, 고결함, 도덕관념,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지도력의 가치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행하는 역할과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이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예컨대 학생 1인당 교육경비, 교수와 학생의 비율, 도서관의 장서 수 등의 제고를 위해 과감한 교육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분위기는 학생들을 전통적인 학문 탐구보다는 자격증 획득에 더 관심을 보이도록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건강하고 본질적인 지식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기초학문의 지원이 시행되지 않으면 빈칸 밖에서 사고하는 창조적 능력의 습득은 요원해지고 그럴수록 새로운 지식창출은 어렵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연구지원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일부 분야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면 학문 전반적인 영역에서 기존연구자들이나 학문 후속세대들을 위한 지원체제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대학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해나갈 기회를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재능있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나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만드는데서나 제한이 있어선 곤란합니다. 최근 대학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학의 유연성과 능력을 제한하는 규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자율성을 더욱 허용해야 합니다.
경제와 대학에 대한 저의 제안들이 잘 시행된다면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세계 어딜 가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경제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 되어서, 한국경제나 대학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대학교 총장 정 운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