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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출신 멀티 플레이어 <응답하라 1997> 신원호 PD

2012.10.19.

공대 출신 멀티 플레이어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화학공학과 94학번)

상암동 CJ E&M센터에서 만난 신원호 동문은 부드러웠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흰 티셔츠, 수수한 회색 재킷, 잘 웃지 않다가 가끔씩 씨익 웃어보이는 입매, 나긋나긋한 목소리. 촬영 현장을 지휘하는 카리스마는 떼어둔 채 온 것 같았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년, 화학공학도로 변신하다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 “저는 중학교 때부터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희망했어요.”

집안 어른들의 시각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었으므로 신 PD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터였다. 고등학생 신원호의 의지도 당시 어른들의 고견을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생으로서의 자유를 틈타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영화감독의 꿈 언저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영화사 스태프 직에 자원해서 수 개월동안 일해본 것이다. 그런데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 가 보니 일은 고되고, 연봉은 턱없이 낮았다. 영화계에 품었던 핑크빛 로망이 흔들렸던 때였다.

“엄청 방황했지요.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들어가서부터 영화 분야로 계속 나아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어렵고 힘든 영화 분야에 있을 자신이 없더라구요. 고심한 끝에,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면서도 직업 안정성이 있는 방송사 PD직을 생각하게 됐어요.”

차선으로 선택했던 PD의 매력을 느끼다

그는 4학년 때 비로소 방송사 입사를 결심하고 ‘언론고시’ 대비를 시작했다. 언론고시 준비생이 많은 타 학과생에 비해 화학공학과생인 그는 더 어려웠다. 같은 고민을 털어놓은 과 후배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화학공학과 출신은) 언론고시를 경험한 선배나 동료가 없으니 힘들긴 하죠. 제 경우는 직접 중앙도서관에 벽보를 붙여 스터디를 모집했어요. 제가 모집하다 보니 스터디원들과 처음 한 일이라곤, 친해지자면서 술을 먹는 것이었지만요. (웃음)”

그는 스터디를 조직해 마음의 불안감을 차츰 덜면서 입사 준비에 매진했다. 처음 우려와 달리, 화학공학과 출신이어서 ‘튀는’ 지원자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KBS PD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화학공학도인데 PD가 되려는 그를 주목했다.

“화학공학과 출신으로서의 장점이오? (언론정보학과 등) 다른 과 출신 PD에 비해 사고방식이 조금 다른 점인 것 같아요. PD처럼 창의성이 필요한 직업에는 이게 나름대로 장점인 것 같아요.”

마침내 KBS에 입사한 지 10개월 뒤, 신 PD는 첫 조연출로 <공포의 쿵쿵따> 팀을 도왔다. 그는 쿵쿵따 게임이 삽시간에 인기를 얻자 처음으로 PD로서의 뿌듯함과 재미를 느꼈다. 그 이후로 10년 넘게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보니 내공이 쌓였다. 2011년에는 ‘남자의 자격’으로 한국 PD대상 TV예능부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드라마 PD로의 깜짝 변신과 앞으로의 꿈

상암동 CJ E&M센터 앞에서 신원호 동문과 화학생명공학부 권일재 학생(화학생명공학부 12학번) 신 PD는 이렇게 10년 넘게 예능을 하다 보니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침 영화 제작이 오래 전 꿈이었던 터라, 비슷한 형식인 ‘드라마’가 떠올랐다. 원래 몸담았던 KBS를 떠나 CJ E&M으로 옮긴 뒤, 그는 예능 PD 명함을 잠시 떼고 드라마 PD로 변신할 수 있었다.

“시트콤 대신에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이번에는 웃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시청자가 애초에 웃음거리를 기대하고 보는 시트콤과 달리 드라마는 정극이잖아요. 그런 정극을 보다가 웃음 포인트가 나오면 예상 외여서 훨씬 더 재밌게 느껴지니까요.”

신 PD가 연출한 <응답하라 1997>는 올해 7월에 방영을 시작해 인기를 끌더니, 최종화인 16화에서는 최고시청률 9.47%을 기록했다. 케이블TV에서 방영된 자체제작 드라마 중에서는 사상 최고 시청률이다.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이 드라마의 배경인 90년대 모습에 주목하고 열광했지만, 신 PD가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누구에게나 보고 싶은 자기만의 ‘지난’ 시절이 있잖아요. <응답하라 1997>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그 시절을 봤으면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주인공들이 서로서로를 좋아하는 관계를 보면서 시청자들도 마음이 한껏 데워지길 바랐죠.”

앞으로의 꿈을 신 PD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의 씨앗’를 던져줄 수 있는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원래 꿈이었던 영화도 생애 한 편 정도는 만들고 싶고요.”라고 답했다.

<남자의 자격>을 본 뒤, 40, 50대 아저씨들에게 <응답하라 1997>은 20, 30대 청년들에게 화제가 됐다. 신원호 PD가 씨앗 뿌리기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인터뷰동행: 화학생명공학부 12학번 권일재
취재: 홍보팀 학생 기자 조은애(외교학과 07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