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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뉴스

  • 서울대학교 홍보팀
  • 2013-01-29
  • 조회수 4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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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2012년은 □□입니까?

이 질문에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였다고 대답할 서울대 사람들이 네 명 있다. 변호사 강진명 (국문과 98), 탤런트 이상윤(물리천문학부 00), 회사원 박재훈(경제학부 04), 법률홈닥터 임규선(법학전문대학원 09). 앞의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왔고, 다른 두 명은 학교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이들에게 2012년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일까? SNU News가 2012년을 반추하고, 2013년을 설계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청해봤다.

장애를 딛고 사람을 향해 날다
지체장애 2급으로 공기업 입사한 박재훈 동문(경제학과 04학번)

지체장애 2급으로 ㈜남동발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박재훈 동문 지체장애 2급 장애인으로 서울대 입학에 이어 벤처기업을 창립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박재훈 동문(경제학과 04학번). 올해, 그는 벤처 경영인에서 에너지공기업 (주)남동발전의 신입사원으로 변신하며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했다.

청년 벤처 사업가, 늦깎이 취업준비생이 되다

그가 진로 변경을 결심한 이유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건강의 위기, 경제적 위기, 그리고 꿈의 위기. “밤낮 없이 일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어요. 잠시 일을 쉬며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외면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벤처를 시작할 때 품었던 비전과 현실의 괴리였다. 청소년 시절 목사를 꿈꾸었던 그는, 신본주의에 입각해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는 삶을 꿈꾸어 왔다. 벤처 사업 역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했었다고. “그런데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윤과 거리가 먼 제 아이디어는 점점 설 자리가 작아지더군요. 회사와 저 모두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렇게 서른을 눈앞에 두고 ‘취준생’이 된 박재훈 동문. 돈을 벌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공기업에 관심이 생겼다. “공기업 중에서도 사행성이 있거나, 능력보다 많은 돈을 다뤄야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에너지 분야를 택하게 되었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저에서 지탱하는 일이니까요.”

이제껏 경영에만 매진하던 그에게 취업은 낯선 분야였다. “토익 점수도 낮았고, 입사시험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어요.” 그러나 그는 벤처 경영인 출신다운 순발력으로 부족분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 기출 문제부터 풀며 적응했고, 인터넷 카페에서 자료를 열심히 수집했죠.” 그렇게 2012년, 박재훈 동문은 (주)남동발전의 신입사원으로서 인생의 새막을 열었다.

벤처 경영, 꿈을 현실로 옮기는 방법을 배웠죠

비록 경쟁업체의 빠른 발전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그에게 벤처 경영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었다. “저희가 기획한 쿠폰 서비스 ‘포닝’의 별명은 ‘착한 소셜커머스’였어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삼고 수수료를 없앴기 때문인데, 제가 낸 아이디어였죠.” 성공 지향적 업계에서 사회적 의미에 무게를 두는 그는 괴짜로 통했지만, 박재훈 동문은 그런 이질감마저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제겐 꼭 필요한 경험이었죠.”

장애, 생각을 바꾸자 저만의 장점이더군요

언제나 긍정적인 박재훈 동문이지만, 그 역시 장애로 인한 절망에 직면한 때가 있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착용하게 되었을 대였다.

“어릴 적 앓은 소아암 때문에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데, 오른쪽 다리로 몸을 지탱하다 보니 멀쩡하던 다리에 이상이 생긴 거예요. 아직도 절단 수술 이후의 감정이 생생히 기억나요.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그러나 그는 “환경을 바꿀 수 없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더라” 며 웃었다. “장애 덕분에 저의 작은 성공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가 제 장점이었던 거죠.” 그래서 수술 이후, 그는 강연이나 투고 요청을 마다치 않으며 긍정 전도사 역할을 자청했다. 자신의 삶 역시 변했다. “수술 이전에는 잔병치레 때문에 아웃사이더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수술 후에는 더 많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직업보다 더 큰 가치를 가슴에 품으세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 하나를 좇아 범상치 않은 청춘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박재훈 동문. 그는 후배들에게도 구체적인 직업보다는 추상적 가치를 꿈으로 품으라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직업적 비전을 가지면, 그 직업을 얻은 후에는 허무에 빠지기 쉬워요. 그러나 큰 가치를 비전으로 삼으면 순간의 절망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장애, 벤처 경영, 공기업 입사 모두가 더 큰 꿈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는 박재훈 동문. 그의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홍보팀 학생기자 신유정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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