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여러 지역의 양서류들이 1990년대 말 처음 발견된 병원성 항아리곰팡이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고 있다. 이 곰팡이는 개체의 피부에 침투하여 정착하고 호흡을 방해하는데, 감염된 개체는 결국 심장마비로 인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양서류 개체군 크기에 치명타를 입힌 이 항아리곰팡이는,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으로 기를 쓰지 못하였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브루스 월드만(Bruce Waldman)교수 연구진은 한국의 개구리들이 해당 곰팡이에 면역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으며, 국내 항아리곰팡이의 여러 계통을 분리 배양한 결과, 개구리를 감염시키는 해외의 항아리곰팡이 계통들보다 국내 계통들이 유전적으로 더욱 다양함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항아리곰팡이가 한국에서 최초로 병원성을 가진 후 변형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한국의 개구리들이 오랜 시간 항아리곰팡이로 인한 발병에 면역적 저항성을 가지도록 진화해왔다고 본다. 국외의 개구리들이 전염병의 영향을 받기 훨씬 이전인 1900년대 초 한반도에서 채집된 개구리의 피부 조직에서 해당 항아리곰팡이를 발견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항아리곰팡이는 1950년대 해외 교역이나 군수 물자 수송을 통해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언스(Science)지에서 발표된 논문은 서울대 연구진을 비롯해 전 세계 연구팀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로, 앞선 추론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새로운 유전자 분석 방법(전장유전체염기서열분석법; whole-genome sequencing)을 통해 한국은 물론, 아프리카, 미주, 유럽의 개구리에서 추출된 항아리곰팡이 계통들의 전체 게놈을 분석하여, 세계적인 병원균 계통이 모두 한국의 무당개구리(fire-bellied toads, Bombina orientalis)를 감염시킨 항아리곰팡이로부터 유래하였음을 설득력 있게 입증하고 있다. 이는 항아리곰팡이가 한국에서 처음 기원하여 확산된 이후 해외의 다른 계통과 유전 형질을 교환하면서 전염병으로 탈바꿈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병원성 항아리곰팡이는 1998년 처음 보고된 이후, 북중미와 유럽, 호주의 양서류 개체군을 크게 감소시키거나 집단 폐사로 이끌기도 하였으며, 감염 지역 내 양서류 종의 40%에 달하는 개체를 멸종의 위험에 이르게까지도 하였다. 현재 이 항아리곰팡이는 세계동물보건기구(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에 의해 국제적으로 신고의 의무가 있는 질병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대 연구진은 피해를 입고 있는 해외의 다른 양서류 종들도 이 병원성 항아리곰팡이에 대한 면역저항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도 역시 발견하였다. 해당 항아리곰팡이로 인한 발병에 저항성을 가진 국외의 종들은 모두 같은 형태의 면역세포수용체를 가지는데, 이는 한국의 양서류들에게는 가장 흔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 형태의 면역세포수용체는 항아리곰팡이를 인식하는데 최적화 되어있어, 면역기능을 통해 항아리곰팡이가 병을 발병 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아울러 국외 계통에 저항성을 갖추지 못한 해외 다른 지역의 개구리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항아리곰팡이가 또한 치명적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행동 및 집단생태학 연구실에서 수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