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이과생, 베르디의 남자가 되기까지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 1위, 성악과09 김정훈
국제 성악계에서 동양인이 주목을 받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푸른 눈의 외국인이 창 읊는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듯, 문화적 정서나 시각적 이미지의 간극을 극복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국제적 장벽을 허문 이가 있다. 얼마 전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쥔 성악과09 김정훈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축하드립니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베르디 콩쿠르 역대 최연소 1위 기록을 경신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감사합니다. 기록 자체도 감사한 일이고, 무엇보다 이것이 동양계 성악가에 대한 이질감을 해소한 결과라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베르디 콩쿠르는 어떤 대회인가요?
베르디 콩쿠르는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르디의 명성만큼이나 권위 있는 국제 성악 콩쿠르입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대회이고, 1971년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1위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 정도의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그렇죠. 실제로 학부생이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심지어 베르디의 곡은 중후한 음색에 잘 맞기 때문에 30대 지원자들이 대다수예요. 그러나 주변 교수님들께서 적극 추천해주신 덕분에 큰 맘먹고 참가했습니다. 대회 준비를 위해 하루 10시간씩 녹음한 곡을 다시 듣고 부른 보람이 있었지요.
-원래부터 성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어머니께서 성악가이셨지만, 부모님은 저를 그쪽으로 키우실 뜻이 전혀 없으셨어요. 그래서 고3 때까지 저는 포항공대 진학을 희망하는 이과생이었고, 운동을 좋아해서 수영, 스키선수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지요?
변성기가 지나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니 노래를 자꾸만 부르고 싶더라고요.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진로에 대한 확신이 섰고, 부모님 앞에서 ‘제발 성악하게 해달라’고 (말 그대로) 노래노래를 한 결과, 결국 고3 수능 2주 전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의 사연도 궁금합니다.
저는 중앙대•경희대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하기까지 대입을 수 차례 치렀어요. 서울대의 지적 풍토 속에서 노래의 기교뿐 아니라 음악의 역사나 문화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지요. 근데 그게 될 듯 될 듯 하면서 계속 안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간절했던 대입 준비과정을 통해 오히려 제 목소리가 더 깊어질 수 있던 것 같아요.
-서울대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간절함 속에 입학한 곳이라 4년 내내 행복하게 다녔습니다. 입학 후의 실력도 눈에 띠게 좋아졌어요. 교양 수업을 들으며 노래에 담아야 할 감정을 키울 수도 있었고, 저보다 나이 어린 동기들과 매년 음악대학 정기오페라를 준비하면서 책임감도 커졌지요. 그래서인지 제 목소리도 더욱 힘있고 굵은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정훈씨가 즐겨 부르는 곡도 웅장하고 힘있는 곡이겠네요?
네. 오페라에는 여러 역할이 있는데, 저는 농부, 젊은 청년보다는 왕, 장군과 같은 굵직한 캐릭터가 잘 맞더라고요. 베르디 콩쿠르 결선에서 불렀던 ‘가면무도회’의 ‘영원히 그대를 잊을지라도’ 역시 총독 리카르도의 아리아로서 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성악가로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국제 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성악이라는 기반 위에 다양한 경험을 쌓아 파바로티와 같은 세계적인 테너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미국 등 여러 곳에서 공연을 제의 받고 있고, 당장은 다가오는 10월 말 서울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음악대학 정기 오페라 – 푸치니의 라보엠(La Boheme)을 공연합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많이 보러 와 주세요.
단순히 노래 잘하는 성악가이기보다, 지성과 감성이 충만한 성악가가 되기를 원하는 김정훈씨. 이러한 노력 때문일까. 베르디 콩쿨의 심사위원이었던 세계적인 바리톤 Leo Nucci(74)는 그의 목소리를 두고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했다. 인터뷰 시간 내내 힘있는 목소리로 답을 하던 그가 국적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성악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홍보팀 학생기가자
문선경(법학전문대학원 12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