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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뜻, 포기하지 않을 기회를 주다

2012.07.23.

박용현 명예교수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만난 많은 도움으로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박용헌 명예교수가 자신의 연금 일부를 15년간 모은 2억 원으로 ‘박용헌 장학기금’을 설립했다. 스승은 의지를 세운 제자에게 그 뜻을 펼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학생으로, 교수로서 오랜 세월 서울대학교와 함께해온 박용헌 명예교수가 지난 11월 ‘박용헌 장학기금’으로 2억 원을 기부했다.

그의 기부에 많은 이들이 감동한 이유는 15년간 연금의 일부를 저축하여 기금을 마련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모교를 생각하는 마음, 후학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온 스승의 뜻이 알려졌고, 그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신록의 신선함이 넘치는 관악캠퍼스에서 때마침 ‘스승의 날’ 행사를 마치고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꽂은 박용헌 명예교수를 만났다.

“사실, 기부에 대한 뜻을 세운 사람은 제 집사람입니다. 매달 차곡차곡 모은 연금의 액수가 이만큼이고, 기부를 위해 모았다고 하더군요. 내가 배우고 가르쳐왔던 학교를 위해, 내 뜻을 전달하기 위해 모았다고는 하지만, 가족에게 먼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또 요즘에는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잖아요? 내가 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시절이 더 힘들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는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고 고마운 도움이 있었기에, 그 기회와 도움을 돌려줘야 한다는 제 꿈을 가족이 이루게 해준 셈이죠.”

박용헌 명예교수의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이다. 그중에서도 고작 십여 가구가 모여 사는 깊은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그에게까지 오지 않은 배움의 기회를 아쉬워하기보다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는 것에 만족했던 소년 시절의 그도 어느 순간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생 이렇게 발전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둘째였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부산의 외삼촌 집에 보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쌀 한 말 반 정도를 주셔서 어깨에 지고 기차역까지 한 20리 되는 길을 떠났지요. 집을 나오면서 아버지께는 말씀을 안 드렸어요. 둘째 아들에게는 집안의 농사를 맡기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떠나서 한 반쯤 가서 다리 위에서 쉬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막 손을 흔들면서.”

여기까지 어린 시절을 회상하던 박 명예교수는 잠시 숨을 골랐다. 60여 년이 훨씬 지난 그 당시의 감정이 아직도 그에게는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을 흔들며 뛰어오던 그 사람은 박 명예교수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도 안 하고 떠나는 아들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왜 안 했냐며, 자식의 길을 방해할 아비가 어디 있겠냐며, 아들의 손에 목도장을 쥐어주었다. 시험을 보든 학교를 가든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니, 아버지의 도장이 있어야 한다고 그 길을 뛰어오신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마련해 주신 쌀 한 말 반과 아버지의 허락이 담긴 목도장을 손에 쥐고 박 명예교수의 길이 시작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학생에게 힘을 더하고 싶다

박용헌 명예교수는 1957년 서울대 교육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마이애미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부터 30년간은 교육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사범대 부설 교육행정연수원 부원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서울에 올라와서도, 미국에 유학을 가서도 모두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했지요. 그 어려운 시절에도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도움을 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었거든요.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내가 학생들한테도 항상 강조하는 것이, 행운은 찾고 노력하는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것이지, 포기하고 타협하는 이에게는 절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박용현 명예교수박 명예교수는 우리 교육학계에 ‘가치 교육’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한평생 우리 교육의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스승이다. 그가 요즘의 젊은 세대, 제자들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기부를 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온 소중한 가르침을 청해보았다.

“내가 <성취동기>라는 책도 냈는데, 우선 자기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목표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장학기금도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보다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우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어요. 어려움은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모두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여 모든 것이 풍요로운 듯 보이나, 자신의 어려운 사정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더 빛나 보이는 것이 자신의 의지입니다. 서울대학교에 바라는 것도 이런 정신입니다. 지식만 갈고 닦을 것이 아니라 체력이나 정신력도 강하게 키웠으면 합니다. 책 읽고 시험 준비하는 것만으로 인생을 준비했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경험의 폭이 점점 줄어드는 듯해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수들도 힘을 써야 합니다.”

평생 학교에서 학문과 교육의 길을 걸었던 그에게는 또 다른 면도 있다. 그는 개인 전시회를 열 정도로 평생 그림을 그려 왔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채화가 아니라 유화와 아크릴화를 주로 작업할 정도로 아마추어의 범주에서는 벗어난 솜씨이다. 박 명예교수는 수년 전에 유화와 아크릴화 100여 점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고, 판매기금 전액을 교육학과에 기부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의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택의 작업실에서 아크릴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일까? 추상화에 가까운 그의 그림 속에는 우리의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하고 고운 색이 가득하다.

서울대학교는 그의 삶에서 그 희망과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곳이고, 그가 교육을 통해 또 다른 기회를 제자들에게 만들어준 곳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의 가치가 녹아 있는 소중한 연금으로 다시 희망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용헌 명예교수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끈기를 주문했다. 학교 성적보다, 출신과 배경보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기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단 위에서 교과서를 사이에 두고 가르치는 일을 떠나서도 그는 여전히 스승이다. 스승은 그것을 단순히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용헌 명예교수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스승으로 살아온 이이고, 이제는 그 소중한 인연을 영원하게 이어갈 뜻을 행동으로 세웠다. 5월의 푸르른 빛이 넘치는 관악캠퍼스 사범대학교 앞에서 그는 따뜻한 미소로 분주한 학생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옛 건물과 신축 건물이 나란히 이어진 장소와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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