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교수칼럼

공짜는 없다

2012.07.23.

공짜는 없다
글: 김영진 교수 (경영학과)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재무관리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찾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공짜는 없다” 라는 말을 들고 싶다. 충분히 큰 규모와 적절한 제도를 갖추고 있는 시장에서 기대수익과 위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쉽고 자명한 원리를 잘 기억하고 있으면 기업의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기업의 경영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위험을 선택(혹은 결정)하는 행위이다. 미래의 상황에 대해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는 현재 시점에서 기업가치 최대화가 목표인 경영자는 어떤 위험이 상대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지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나 큰 규모로 투자를 할지 (자산투자결정), 또는 여기에 필요한 자금을 어떤 방법으로 조달할 것인가(자본조달결정)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결정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미래에 펼쳐질 상황을 미리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불확실한 대안 중에서 어쨌든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은 기업의 경영에서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즐기는 카드게임에서나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특징이다.

카드게임을 하러 갈 때 돈을 얼마를 가지고 갈 것인가(투자규모)와 필요한 자금을 어떤 구성으로(자기 자금과 타인에게 빌린 자금의 구성) 마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카드게임에서 돈을 많이 따려면 일단 거는 돈의 규모가 커야 한다.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은데 큰 돈을 따고 싶다면 남한테 빌리는 것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 때 돈을 많이 딸 욕심으로 거액을 걸 때에는 잘못될 경우 잃게 되는 돈도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남에게 돈을 많이 빌려서(타인자본에 과다하게 의존하여) 판돈이 큰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투자) 게임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의사결정이 최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무관리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는 위험의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험하다는 의미와 나쁘다는 의미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투자란 미래 상황들의 발생가능성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했을 때 예상 성과가 예상 비용에 못 미치는 투자를 말한다. 이와 달리 투자 의사결정에서 위험이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또 나쁠 수도 있는 불확실한 경우를 말한다. 즉, 위험한 투자란 미래 상황의 변동에 따라 예상 성과가 달라질 수 있는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어떤 투자안의 위험 정도는 그 투자로부터 오는 미래의 성과가 얼마나 불확실한가에 달려 있다. 반면에 투자를 수행하기 위한 자본의 투입은 현재 일어나기 때문에 불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확실한 투입에 대해서 불확실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므로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미래 상황의 변동 가능성이 클수록 이에 대해 요구하는 기대수익 역시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다 하더라도 경영자가 의사결정에서 실제로 이 개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투자안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의 측정이란 말이 매우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면 그 투자로부터 앞으로 30년간 전기를 공급받게 되는데 전기공급으로부터 오는 혜택이 현재가치로 얼마인지를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미래에 있을 수 있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혜택을 계산하는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쉽다. 따라서 이 발전소에 투자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미래의 전기공급으로부터 소비자들이 얻는 불확실한 혜택이 현재가치로 계산할 때 얼마에 해당하느냐에 달려있다. 위험을 고려했을 때 혜택의 현재 가치가 건설비용보다 크다면 이 투자안을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결국 경영자의 모든 의사결정은 미래에 있을 위험한 혜택이나 비용을 어떻게 확실한 금액으로 환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위험의 측정 문제는 공장의 건설 등과 같은 장기 실물투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에게 기업이 발행하는 장기증권(주식, 채권 등)의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기업은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증권을 자본시장에서 가능한 한 비싸게 팔려고 하는 반면, 기업에 자금을 공여하는 투자자는 가능한 한 기업이 발행하는 증권을 싼 값에 사려고 노력한다. 이 때 기업이 발행한 증권이 미래에 어떠한 혜택(불확실한 현금흐름)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고려하여 증권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나 투자가의 입장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50여 년간 재무관리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분야 중의 하나는 이 같은 위험을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것이었다.

한편, 시장이 경쟁적인 방향으로 발달할수록 위험 고려 후의 기대수익이 비용보다 더 높은 상황,즉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발달된 시장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시장가격이 그 자산의 진정한 가치를 잘 반영하기 때문에 초과수익을 올릴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초과수익이 발생하는 곳을 찾는 경영자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위험을 정교하게 계량화하려고 시도하는 수리모델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위험을 측정하려는 부단한 노력에 앞서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위험과 수익률이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은 종종 엄청날 수 있다.

90년대 아시아 경제위기 때 우리나라가 휘말리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경영자들이 위험이 큰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본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투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자금의 상당부분을 과감하게 부채로 조달해야 했었다. 상황이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면 자본 대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여건이 불리해지면 부채조차 상환하지 못해 신용도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오게 되는 투자였던 셈이다. 나쁜 투자였는지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위험도가 큰 투자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 수십 년간 재무관리 이론분야에서 많은 발전들이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흥미 있는 주제는 바로 위험과 수익률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노력 없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고, 준비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재무관리나 기업경영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항상 적용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신문에 최고의 수익을 보장하는 마지막 기회이니 빨리 신청하라는 식의 광고를 접하면 나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왜 자신들이 갖지 않고 비싼 광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남에게 주려고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재무관리를 공부한 덕에 갖게 된 생활의 지혜인 셈이다.

경영대 소식지 <Seoul Business Letter>6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