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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조수빈 동문

2012.08.27.

계획과 우연 사이의 행복한 ‘힐링’의 삶
KBS 아나운서 조수빈 동문(언어학과 2000학번)

“날씨가 더워서 고장 났나? 원래 이거 누르면 내 얼굴 나오는데…”

조수빈 동문 뉴스룸(Newsroom)을 나온 조수빈 동문은 살가웠다. KBS 견학홀 터치스크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살짝 찡그리는 그녀는 지난 3년 10개월 동안 매일 밤 ‘9시 뉴스’에서 만나던 사람 같지 않았다. 시종일관 반듯한 어깨와 꼿꼿한 허리, 딱 붙인 발뒤꿈치가 형성한 단아하고 정갈한 ‘아나운서 라인’이 아니었다면.

계획하던 꿈, 아낌없이 쏟은 열정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아나운서의 꿈을 키운 그녀는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9시 뉴스’ 앵커는 그 장도(長途)의 종착점. 하지만 그 꿈은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행복했어요, 꿈꾸던 일이니까. 덕분에 제 나이에 만나기 힘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열정을 쏟았고, 그래서 물러난 지금도 큰 미련은 없어요.” 물론 아쉬움은 있다. 뉴스 프로그램의 성격상 개성이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는 없었기 때문. 시간이 갈수록 현장취재 없이 전달하는 뉴스의 생동감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혼, 작년부터 주부, 얼마 전부터 예비엄마였죠. 같은 소식을 전해도 기분이 달랐습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고, 분유 성분에 이상이 있다고 말할 때 뭔가 더 절실해졌어요.”

우연히 찾아온 힐링의 기회
2005년 입사 후 조수빈 동문은 뉴스 외에도 라디오 음악방송과 문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는 뉴스와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전해줬다. 특히 새벽 5시 라디오 DJ는 환경미화원과 같은 이른 새벽에 일하러 나가면서 방송을 듣는 애청자들을 보듬는 힐링(healing) 타임이었다. 아나운서로서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한편 문화 프로그램 MC는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뉴스 진행은 준비하고 꿈꿔왔던 일이라면, 라디오랑 문화프로그램은 계획하지 않은 우연이라고 할까요? 계획한 것과 계획하지 않은 게 모두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삶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하연 오작교와 큰 바위의 추억
언어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한 조 동문에게 아나운서와 직결된 음성학 공부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언어학의 매력은 과학, 인문, 철학 등을 통찰할 수 있다는 점. 반면 경제학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빠져들었다. 덕분에 경제 뉴스를 할 때 기본 개념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멘트를 입에 붙게 했지만, 통계 수업은 정말 어려웠다고. 그럴 때면 자하연을 향했다.
“지금은 오작교가 없어졌죠? 그 옆에 나무 그늘이 지는 큰 바위가 제 아지트였어요. 공간 시간에 혼자 멀뚱하니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죠.”
조수빈 동문이 꼽은 또 다른 핫 스팟은 본부 앞 셔틀버스 정류장. 두 번이나 같은 기획사의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기 때문. 하지만 TV 데뷔는 불발됐다.
“샴푸 광고 찍으러 가서 ‘이 회사는 비누 회사 아니에요?’라하고, A사 관계자들 앞에서 ‘저는 B사 씁니다’라고 했어요. 방송이 되면 이상하죠. 순진했어요.”

조수빈 동문과 과 후배인 최수완 학생 우연을 반길 줄 아는 서울대생
서울대 학생들 대부분은 계획대로 하나, 하나 성취하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당황한 나머지 좌절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삶은 꼭 계획한 대로만 되지 않고, 뜻하지 않은 우연들이 더 큰 행복과 기회를 준다고 조동문은 당부했다.
“경제학 공부를 한 것,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라디오 방송 진행 모두 계획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행복을 주었어요. 계획은 꿈을 이루어주지만, 우연은 힐링을 해준다고 할까요? 그런 우연을 반기고, 기회로 만들어야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방송 경력의 절반 이상을 KBS 메인 뉴스 앵커로 보낸 그녀는 “아나운서 합격에 급급하지 말고,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이 되는가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분간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는 조수빈 동문과의 만남, 같은 꿈을 꾸는 띠 동갑 후배에게 ‘우연’의 행복을 깨닫게 해준 진정한 힐링 타임이었다.

최수완(언어학과 12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