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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활동 체험수기 수상작] '밥'

2012.10.24.

오리나

사회봉사활동 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작
오리나(법과대학 법학부 05학번)

2012년 9월, 나는 서울역 근처 급식센터인 ‘따스한 채움터’를 찾아갔다. 내가 채움터 1층으로 들어섰을 때는 벌써 식사가 시작될 참이었으므로 나는 허겁지겁 앞치마를 받아 매고 멸치조림이 담긴 통 앞에 섰다. 나는 식판에 음식을 담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봉사자들뿐이었다. 나는 멸치조림을 적당한 양으로 나누어 주는 일에만 집중했고, 눈이 마주칠 새도 없이 배식이 끝났다.

식당을 치우고 사무실에서 쉬고 있으니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시는데 눈매가 가늘고 목소리가 퍽 점잖으셨다. 할아버지는 ‘요즘 학생들이 작가 김승옥이를 아나 모르겠네. <무진기행> 과 <서울 1964년 겨울> 이라고 들어봤는지?’라고 하시며 문학애호가였던 젊은 시절에 대해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노인대학에서 받은 에프학점을 나도 받았다는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에프를 받아서 어떡하겠느냐고 나를 걱정하셨다. 할 말이 없어 슬그머니 도망가려는 내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를 쥐어주시며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자리를 옮겨 사무실 밖 식당에서 책을 읽고 있자니 오후의 알콜중독자 모임이 시작될 모양이다. 모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동료의 말에 술 끊는 것으로도 힘들다고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 김밥과 달걀, 사이다를 싸서 ‘원족’ 갔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렸다. 이를 웃으며 듣다가도 오늘 저녁은 빵을 주는 원불교에서 먹을까 장조림을 주는 교회에서 먹을까 하는 이야기가 들려올 적에는 조금 고개를 숙였다. 저녁 배식이 시작되고, 이번에 내가 할 몫은 식판을 식탁에 날라다 주는 일이다. 이건 음식을 그냥 퍼주는 것보다는 조금 어려운 일인데 사람들이 온 순서대로 밥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차로 배식이 끝나고 밥이나 반찬을 더 줄 때에도 누가 무슨 부탁을 했는지 얼굴을 똑똑하게 기억했다가 틀림없이 그 분에게 가져다 드려야 한다. 종종거리며 식당을 돌다가 저녁배식도 끝나고, 청소를 마쳤다.

정리를 마치고 채움터를 나서는데 아까 그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시더니 노숙인이 하는 말도 무시하지 말아달라며 ‘내가 사업이 망해서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자식도 있고 동생도 있고 조카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놀랐다. 그 분이 노숙인 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입은 옷도 말끔하시고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이 말씀하시기에 나는 그 분 역시 봉사자인줄로만 알았다.

내가 하루 동안 멸치조림을 담고 식판을 나르고 왔다고 해서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간혹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지금은 이렇게 되었지만 자식도 있고 동생도 있고 조카도 있다.’ 그렇다, 길에서 사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는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갔다. 엄마가 아끼는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형이었으며 대학생이었고 문학을 사랑했다. 내가 한 봉사에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형이고 삼촌인 한 사람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