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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名著)와 명강(名講)의 브랜드

2012.10.31.

서울대 우수연구자 시리즈②

명저(名著)와 명강(名講)의 브랜드
김호동 교수(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 ‘졸업하기 전에 꼭 한번 들어볼 만한 강의’, ‘널리 인정받는 좋은 교양 수업’, ‘공과 시간을 들인 만큼 거두는 것이 많은 수업’.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의 <동서문명의 만남>에 대한 학생들의 강의 평가이다. 실제로 김교수는 창의적 강의와 우수한 콘텐츠로 제2회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과연 그의 강의는 무엇이 특별할까?

“열정,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 열심히 설명하면, 듣는 사람도 ‘뭔가 재미난 게 있기는 있나 보다’하며 집중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제 열정이 좀 식었는지, 학생들 호응도 전만 못한 것 같아 고민 중입니다.”

학생들에게는 명강으로 유명한 김호동 교수는 학계에서는 공인된 명저의 저자 및 번역자이다. 1994년 <이슬람문명사>를 번역해 제35회 출판문화상 번역상을, 2002년에는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으로 제43회 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았다. 낯선 중앙아시아 관련 서적을 평균 2~3년에 한번 꼴로 국내에 소개해 온 것.

“올해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가 나올 예정이었는데, 늦어졌네요… 집필과 번역의 난이도 차이는 없습니다. 전자가 창의성을 요구한다면, 후자는 노력을 더 필요로 할 뿐이죠.”

이러한 김교수의 저작 활동의 배경에는 탄탄한 외국어 실력이 있다. 석박사 과정 때부터 차근차근 익힌 러시아·터키·아랍·페르시아어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직역, <집사>의 최초 번역 등을 가능하게 했다. 그 역시 페르시아어를 가장 요긴한 언어로 꼽을 정도.

태어나면서부터 학자였을 듯 하지만 사실 김호동 교수가 학문에 뜻을 정한 것은 군 복학 이후였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교외에서 동아리 활동을 할 만큼 문학을 빠져있었기 때문. 그를 학문의 길로 이끈 것은 민두기 교수였다. “학문의 abcd와 자세를 배웠다”는 김교수는 “지금의 저를 몰딩(molding)한 멘토”라고 민교수를 회고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김호동 교수가 어느덧 동양사학과의 가장 시니어가 됐다.

“깜짝 놀랍니다, 시간의 흐름에…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동양사학과 젊은 교수들은 학부생들과도 친하고, 대학원에 학문후속세대가 될 만한 재능 있는 친구들도 꾸준히 들어와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학교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김호동 교수의 인지도는 높다. 지난 2009년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시민강좌: 실크로도, 몽골제국, 세계사의 탄생’ 강연은 통로를 가득 메울 만큼 인산인해를 이뤘다. “재미와 펙트(fact)가 어우러진 스토리의 힘 덕분인 것 같다”는 김교수는 학문적 연구 성과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데 보람을 느낀다. <주간조선>에 ‘중앙유라시아 역사기행’을 20회 가까이 연재한 것도 같은 이유.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흥미와 학문적인 깊이를 조화시키는 작업은 여전히 숙제”라고 덧붙였다. 나름 쉽게 풀어쓴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에 대해 어렵다는 반응에 적잖이 난감했었다고.

올해의 남은 과제를 그는 새롭게 시작한 <캠브리지 몽골제국사>로 꼽았다. 캠브리지 역사서 시리즈의 하나로 외국 학자 한 명과 함께 책임 에디터를 맡아 40여명의 저자들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 역작인 만큼 기다림은 길어지겠지만, 그만큼 전작들을 넘어서는 만족과 보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증명된 ‘김호동 브랜드’의 작품이므로.

홍보팀 학생기자
김어진(외교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