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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팜(SNUfarm)의 가을 수확

2012.12.10.

좌담자
이충근(원예과학과, 10학번): 3기 운영진
최은아(원예과학과, 10학번): 3기 운영진
변지민(시각디자인과, 09학번): 1기 운영진
유병준(화학생물공학부 대학원, 10학번): 스누팜 회원
안승엽(생명과학부 대학원, 10학번): 스누팜 회원

기숙사 한쪽의 공터. 언뜻 보면 그냥 빈 땅 같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파릇파릇한 무언가가 보인다. 지난 24일, 드디어 그 밭에서 새파란 배추가 수확됐다. 한 학기 동안 바로 그 서울대 채소농장을 가꿔온 스누팜(SNUfarm)의 회원들을 만났다.

서울대 채소농장 ‘스누팜(SNUfarm)’의 탄생

기숙사 한쪽 공터에서 농사를 짓는 스누팜 회원들의 가을 수확 이충근: 스누팜은 2011년 원예과 전공 중 ‘채소학’ 수업의 팀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어요. 지금까지는 채식 식단을 짠다거나 작물 관련 주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한 선배가 교내 텃밭에 ‘직접 채소를 기르는’ 프로젝트를 새롭게 제안하셨죠.

최은아: 당시 신축 기숙사를 완공한 후 기숙사 한 동 정도 면적(약 132평)이 빈 공터로 남아있었어요. 이를 의미 있게 활용해보자고 설득한 끝에 결국 관악사측의 지원을 받아 땅을 갈고 33구획으로 나누어 분양을 모두 완료할 수 있었어요.

변지민: 홍보를 맡은 저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책상 앞을 벗어나 색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그때 생각한 문구가 바로"밥은 나의 빛(CIBUS LUX MEA)"이었지요. 말 그대로 ‘땅 파서 공부한다’는 의미랄까. (웃음)

유병준: 전 우연히 스누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봤어요. 보는 순간, ‘이거야’ 싶더라고요. 3공대 특유의 적적함 아시죠? 반복되는 학교생활의 매너리즘을 달랠 무언가가 절실했어요.

안승엽: 저도 비슷해요. 스누팜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실험실 사람들을 설득해서 팀을 꾸려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쭉 농사를 짓고 있어요. 회원 분들 중에는 저희 대학(원)생 같은 생초보 농부도 있지만, 다년 간 농사경험이 있으신 교직원, 외국인 분들도 계셔요. 그분들로부터 많이 배웁니다.

이번 가을 작황은 ‘무난’

가을 농사는 배추, 무, 쪽파 같은 김장 작물을 많이 심는다 최은아: 모든 과정은 인터넷으로 분양 신청을 받으며 시작돼요. 이번엔 홍보를 많이 못했는데도, 탈락하신 분이 있을 만큼 경쟁이 상당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직접 기르는 것’ 에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이충근: 신청 완료 후엔 2만원의 활동비를 걷고 팀별로 텃밭을 배분해요. 9월 8일에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본격적인 밭갈이를 시작했습니다. ‘4드론’, ‘쑥대밭’ 같은 재미난 팀 이름을 해당 텃밭 앞에 꽂아두기도 하고요. 밭갈이 후 씨를 뿌린 1주일 동안은 거의 매일 밭을 찾아야 하지만, 이후에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 와서 관리합니다. 농사일지도 작성하구요.

안승엽: 사실 가을농사는 8월 말부터 시작해야 돼요. 그런데 올해는 8월 말에 태풍들이 연이어 상륙하는 바람에 9월 초에야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지요.

유병준: 특히 이곳은 산에 있어서 기온이 평지보다 낮아요. 그래서 가을농사는 보통 과실을 맺는 작물보다는 배추, 무, 쪽파 같은 김장 작물을 많이 심어요. 12월 이전에 모두 수확하죠.

변지민: 궂은 날씨에 비해 가을농사가 잘 된 편이긴 하지만, 수박·가지·토마토·고추 등을 다양하게 재배했던 봄·여름 농사가 워낙 풍작이었던 탓에 심리적으로 비교가 되긴 했어요. 다음 농사에는 향기나무처럼 다양한 품종을 시도해 볼 생각이에요.

땅이 주는 열매, 그 달콤 쌉쌀함

유병준: 스누팜에서 고구마를 처음으로 재배했어요. 그런데 고구마는 수확한 뒤에 바로 먹으면 안 되더라고요. 수분이 날아갈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것도 모르고 너무 기쁜 나머지 수확하자마자 인터넷에서 ‘전자렌지로 고구마 쪄먹는 법’을 찾고 따라했다가 된통 후회를 했죠. ‘역시 사 먹는 게 낫다’, 이런 한탄을 하면서. 그런데 열흘 정도 지나니 다시 맛있어졌어요.

안승엽: 저희는 애호박을 길러 실험실 사람들을 위해 호박전을 만들어주었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물론 그런 후에도 어느 하나 밭에 물주는 일을 도와준 사람이 없었지만. (웃음)

최은아: 저는 봄에 방울토마토를 재배했는데, 처음 자랄 때 옆 가지를 따줘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무성하게 자라면 그저 좋은 줄만 알고 있었던 거죠. 잎을 솎아주면서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열매로 맺힌 알들이 정말 볼품없이 작았어요.

이충근: 초보이다 보니 이것저것 실수가 많긴 하지만, 농사를 하면 어떤 날씨에도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돼요. 해가 뜨는 날엔 밭에 있는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랄 생각에 기분이 좋고, 비가 오는 날엔 텃밭까지 물 주러 가는 수고를 덜어 좋고.

변지민: 벌레나 지렁이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장점일까요? (웃음) 저희는 농약을 한 방울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시로 벌레들을 잡아주는데, 이젠 털이 숭숭 난 애벌레들을 봐도 아무렇지 않아요. 오히려 몰래 와서 열매 파먹는 까치들이 무서워요.

직접 기른 농작물의 invaluable한 가치

안승엽: 손수 키운 채소니까 남다른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직접 떠온 물을 먹고 자란 채소이다 보니 자식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요.

유병준: 물론 저희 팀이 재배한 채소들을 다 합쳐도 시중에서 몇 천원밖에 안하는 양이지만, 그걸 어떻게 그 돈 받고 팔겠어요. (웃음)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해요.

이충근: 스누팜 채소는 질적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상업화된 농장에서 대량으로 재배한 채소는 단기간에 속성시킨 경우가 많아 맛도 밍밍하고 빨리 상하죠. 하지만 스누팜 채소는 자연 성숙된 것이기 때문에 바깥에 오래 두어도 잘 상하지 않고 씹는 맛도 깊어요.

변지민: 실제로 농사 교육 프로그램 ‘레알텃밭학교’의 강사님께선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몇 십 년 전 토마토 한 개의 영양소 함유량을 채우려면 오늘날 시중에서 파는 토마토 세 개는 먹어야 한다고. 직접 농사를 하면서 채소도 다 같은 채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최은아: 수업에서는 기계적으로 최적 생장 조건을 맞추는 법만을 배워왔어요. 그런데 노지 재배 경험을 통해 무조건 빨리, 많이 키워내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깨달았죠. 미래의 농업도 이런 측면과 그에 대한 수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심 있다면 바로 지금 스누팜으로

스누팜 회원은 대학(원)생 같은 생초보 농부부터 다년 간 농사경험이 있는 교직원, 외국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최은아: 텃밭농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때입니다. 본인이 모르는 건 자연이 뒤에서 말없이 챙겨주더라고요. 적당히 비도 내려주면서.

변지민: 스누팜에서의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배신 안 당했다는 느낌.’ 제 전공인 디자인이든 뭐든 그게 남의 일을 해주는 것 같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텃밭 농사에선 제가 직접 재배한 채소를 제 입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에요.

안승엽: 흙을 만지고 생명을 본다는 것. 씨 뿌리고 수확하는 생명의 전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 도시 사람들도 이런 걸 좀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요?

유병준: 스누팜 회원 분들 중 베테랑 교직원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농사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한대요. 사람은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데 제 손으로 농사지은 채소는 관심 준만큼 보답해온다는 거.

이충근: 손수 재배한 작물은 마음에 풍년을 가져다 줘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삽질’을 거듭하는 우리. 하지만 텃밭에서의 ‘삽질’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스누팜 회원들의 말이 솔깃하다. 내년 새 학기에는 이 힐링팜(healing farm)으로의 외출도 계획해보면 어떨까.

홍보팀 학생기자
문선경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