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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터닝포인트_2] '법률홈닥터' 임규선 변호사

2013.01.10.

[2012년 터닝포인트 특집]

당신에게 2012년은 □□입니까?

이 질문에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였다고 대답할 서울대 사람들이 네 명 있다. 변호사 강진명 (국문과 98), 탤런트 이상윤(물리천문학부 00), 회사원 박재훈(경제학부 04), 법률홈닥터 임규선(법학전문대학원 09). 앞의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왔고, 다른 두 명은 학교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이들에게 2012년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일까? SNU News가 2012년을 반추하고, 2013년을 설계하는 의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청해봤다.

공익과 봉사를 실천하는 법조인
법률홈닥터 임규선 변호사 (사회복지학과 99)

“‘법률홈닥터’, 이거 이름 지으신 분, 상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듣기에 참 정겹고 친근하잖아요. 법학, 의학처럼 우리 사회에서 진입장벽 높은 분야의 어휘들이 하나로 묶여 있는데도.”

서울대 로스쿨 1호 ‘법률홈닥터’ 임규선 변호사 서울대 로스쿨 1호 ‘법률홈닥터’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 탓일까, 듣고 보니 정말 입에 착 감기는 이름이다. 2012년, 서울대 로스쿨 <법률홈닥터> 1호 변호사가 된 임규선 동문. 그녀는 ‘찾아가는 서민 법률 주치의’ 법률홈닥터 제도로 처음 선발된 로스쿨 출신 변호사 20명 중 한 명이다.

법무부 산하의 법률홈닥터는 법률서비스와 사회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신개념 법률복지. 그녀의 소속은 법무부 인권구조과이지만, 근무는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이다. 기존의 법률구조공단이 분쟁 발생 후 소송 업무에 주력해왔다면, 법률홈닥터는 소송 단계 전·후의 법률보호 사각지대를 복지서비스로 보완한다. 예를 들어 상속채무 때문에 기초수급금이 압류되어 노숙하게 된 대상자에게 법률홈닥터는 한정승인·압류해제 절차를 지원하고, 지자체는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생계·의료·주거 복지 서비스를 지원한다.

법률홈닥터의 특성상 법정에 직접 설 기회는 적지만, 그녀는 “법률 서비스가 절실한 법정 밖의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 상담을 나가면, 법률문제 해결보다 이야기 들어드리는 것 자체를 고마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픈 과거를 꺼내놓는 노인 분들도 계시고. (가끔 ‘~Day’에 초콜릿도 챙겨준다고) 어떻게 보면 법리적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기보다, 그 과정 전반을 거시적인 복지마인드로 대면할 수 있다는 게 법률홈닥터의 장점인 것 같아요.”

사회복지 변호사를 향한 오랜 진로 탐색

그녀가 2012년부터 ‘사회복지 변호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였을까. ‘사회복지학과 출신이니까 그렇겠지’라고만 보기에는 부족. 막상 그녀가 사회복지학과 법학을 제대로 접목시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 원래 이공계였던 그녀는 적성문제로 3년 뒤 사복과에 재입학했다. “MBTI성격검사를 하면 저는 항상 INFJ형이 나왔는데, 이 유형은 타인의 내면을 돌보는데 무척 관심이 많대요. 그래서 상담/심리분야 진로가 적합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학부 졸업 후 바로 상담사로 나서지 못했다. 사회복지사로서 ‘상담’만으로는 전문성을 쌓기 어려웠고, 고학력에 대한 고정관념 탓에 주변에서도 일을 하다 그만둘까봐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결국 그녀는 수년 동안 ‘근로복지공단’, ‘한국복지재단’을 거치며 사회보험이나 후원금을 다루는 행정업무에서 전문성을 쌓았으나, 좀처럼 건조한 행정직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회복지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행정전문가가 꿈이 아니니 행시를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담 그 자체만으로는 전문성이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어요.”

본인의 관심이나 적성을 맞게 풀어내는 직업유형을 찾지 못한 뒤로, 그녀는 한 동안 중앙대 대학원 ‘문화협동과정’을 통해 ‘문화복지’를 공부하며 복지개념을 다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기존의 사회복지가 수혜대상을 수동적인 ‘보호대상자’로 여겼다면, 문화복지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삶의 방식 속에 이들을 ‘수급권자’로 파악하는 것. 자연스럽게 기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복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제도를 위해선 법이 먼저 바뀌어야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서울대 로스쿨 1기로 법학 공부를 시작. 학부 졸업 후 무려 7년 반만의 일이었다. “로스쿨 제도를 통해 변호사와 사회복지사의 영역을 합쳐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이루어졌어요. 발자국을 새로 찍으며 걷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면서도 감사하고 있어요.”

One & Only 의 길을 걷는 법조인

학부를 졸업한 2002년 여름,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2년. 비로소 자신이 가장 꿈꾸고 원했던 직종에서 일하며 보람을 느끼는 임 변호사. 올해를 기점으로 과거를 돌아본다면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한때는 과거가 방황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지금도 빠른 성공을 추구하는 분들은 제가 걷는 길이 아직 모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시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해요. 지금은 제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 있어요.”

초기 단계의 법률홈닥터 제도, 아직 1년 단위 계약직에 머무르는 처우가 혹시 불안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우선 올해는 국회 예산안이 통과되어 다음해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설령 이 제도가 중단되더라도, 업무 중 고민했던 복지제도의 개선점들을 모아 입법안을 건의하는 쪽으로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위한 메시지로 “공익이란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고, 봉사란 서로 갖고 있던 자원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공익이나 봉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진로를 택하든지 저 두 가지를 마음속에 품고 실천한다면 세상은 더 살만한 공간이 될 것”이라 전하는 임 변호사.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그녀의 진정성 있는 경험이,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복지를 지탱하는 큰 힘으로 성장할 것을 믿는다.

홍보팀 학생기자
문선경(법학전문대학원 12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