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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NG 없는 영화

2013.01.10.

인생은 NG 없는 영화
‘늑대소년’으로 700만 흥행의 영화감독 조성희(산업디자인학과 97)

“51동 미대 연극 동아리방이 지금 창고가 되었다고요? 제 학부생활의 보금자리였는데... 연극 준비한다고 그 방에서 밤샘 작업하면서 음식 배달시켜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늑대소년’으로 700만 흥행의 영화감독 조성희 동문 연극과 애니메이션에 푹 빠진 디자인과생, CG회사를 차리다

영화 <늑대소년>의 흥행으로 송중기 만큼이나 스타가 된 조성희 감독(산업디자인과, 97). 그는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의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미대극예술연구회 활동을 꼽았다. 선배들이 인용하던 스타니슬랍스키의 말, “연출자는 인생을 알아야 한다”를 중얼거리던 4차원 신입생은 결국 98년 봄, 2학년이던 그는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창작극 ‘번개’를 무대에 올렸다.

또 대학생 조성희는 애니메이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니덕후’. “원래 제 꿈은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제작자였어요. 영상이나 CG 쪽을 워낙 좋아하니까 90년대 후반 애니 작품들을 죄다 섭렵할 정도였죠. 사실 당시에는 그래픽 기술이 안 좋아서 여자 머리카락 ‘찰랑’하는 장면 시뮬레이션만 해도 세 네 시간이 걸렸는데, 그거 하나 완성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졸업 후 그는 동기들과 원룸에 ‘아이언 스튜디오’(그는 ‘구멍가게’라고 표현했다)를 차리고 CG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컴퓨터 작업은 점점 지루해졌다. “모션 그래픽 사업이 사실 테크닉만 빌려주는 거예요. 창의성은 필요 없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보니 움직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영화를 시작했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1년에 8명만 뽑는다는 한국영화아카데미에 25기로 입학하게 된 것은 30살 무렵.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여기에 다 쏟아 부었다. 이런 열정 때문인지 혹독하기로 소문난 교육과정 속에서도 그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카데미 수업은 무서워요. 교수님들 칼 같은 비평에 수업 끝나고 몇몇은 울기도 해요. 그런데 이상한 게, 그런 것도 다 재미있어요. 제가 아무래도 영화를 늦게 시작한 초짜다 보니까, 일단 하나라도 더 배워서 빨리 작품을 찍고 싶다는 바람이 컸나 봐요.”

그의 소원은 아카데미 졸업 단편 <남매의 집>을 통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이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칸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3등상, 미장센단편영화제 대상,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최우수작품상 등 영화계의 호평 속에 그는 ‘다음 기회가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었다.

첫 상업영화 <늑대소년>의 성공, 그리고 새로운 도전

드디어 2012년,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700만 흥행을 기록한 <늑대소년>.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감각적인 영상과 호소력 있는 연출도 호평을 받았다. 2009년 겨울, 영화사 대표와 시나리오 공동 작업에 들어갈 때부터 조성희 감독은 이런 흥행을 예상했을까.

“불안했죠. 이게 정말 영화화 될까? 엎어지면 어떡하지? 자신은 없었지만 하나 분명한 목표는 있었어요. 전 연령층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어보자, 영화의 어떤 장면도 이해 불가능한 것이 없도록. 비평과 비난이 있지만 만족해요. 상업영화에 뛰어든 것도 사실 많은 관객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을 찍고 싶었던 거니까.”

불투명한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을 향한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도전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미칠 듯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다시 찍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들 인생은.” 프로들의 세계에서 ‘서울대 학벌’은 소용없다며 실력과 ‘좋은 이야기’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그의 인생에 NG는 없을 듯 했다.

홍보팀 학생기자
문선경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