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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평론가 윤중강 동문

2013.02.22.

‘전천후 예술인’의 국악 사랑
스키니진을 입는 국악 평론가 윤중강(국악과 78학번)

국악 평론가 윤중강 동문 윤중강 동문은 시종일관 웃었다. ‘국악 평론가’라는 직종에 대한 선입견을 깨듯 선명한 통 좁은 하늘색 바지에 밝은 노란색 코트를 입고 가끔씩 온 골목이 떠나가게 터지는 웃음까지, 유쾌하고 친근했다.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뮤지컬 ‘서편제’를 매우 관심있게 보았어요. 이 사람들이 국악을 알리기 위해서 국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좋았죠.”

하지만 요즘 괜찮은 공연을 꼽아달라고 하자 사뭇 진지해졌다. 평론가에서 시작한 공연기획자로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지금 하는 작업, 그리고 앞으로 만들고 싶은 공연까지 나아갔다.

“작년에 국립부산국악원에서 국악 뮤지컬 ‘부산 아라’라는 작품을 기획했는데 뮤지컬 형태이지만 가(歌), 무(舞), 악(樂), 희(喜) 네 가지 요소를 고르게 배합해서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또 가족 연희극 ‘퍼니 도깨비와 미스터 혹부리’나 현재 기획하고 있는 ‘인천 세 자매: 홍예문사랑’ 같은 경우는 국악 뿐 아니라 ‘이야기’라는 요소를 매우 중시한 작품들이죠.”

윤동문은 국악을 음악으로서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전통적 이야기를 음악극으로 새롭게 풀어내어 음악과 이야기를 접목시키는 것이 가장 하고픈 작업이라고 했다. 평론과 공연 연출은 모두 한 줄기로부터 뻗어 나온 가지들이기 때문. 이렇듯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 자신을 그는 ‘전천후 예술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실 날라리 같지만 제가 보기엔 지금 제 모습이 선비와 다를 게 없어요. 이전의 선비야 말로 종합 예술인이에요. 그림도 그리고, 문학 창작도 하고, 거문고를 타고… 그야말로 전천후 문화인이죠. 저는 저야말로 종합 예술인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국악과에서 가야금이 아닌 펜을 잡다

“검정고시를 봤지만 서울대에 가고 싶었어요. 음악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어느 날 황병기의 음악을 듣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실기는 꼴찌였을 거예요.”

그는 국악과에 입학했지만 가야금을 뜯는 것보다 음악을 듣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 국악과에서 예고를 나오지 않은 ‘마이너리티’ 학생으로서 동료들이 연주할 동안 음악을 듣고 마음이 느끼는 대로 글로 적는 연습을 꾸준히 하며 평론가의 ‘발판’을 닦기 시작했다.

“국악에 대해 저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표현은 별로예요. 남의 것은 나쁜 것인가요? 만약 배우로서 ‘김태희가 좋다’라면 ‘왜, 어떤 점이 좋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잖아요? 근데 왜 국악에 매력을 느꼈냐는 말에는 그냥 ‘좋았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어요. 뭔지 모를 국악의 매력을 가야금에서 찾은 거죠. 황병기의 가야금에서 지적이면서도 낭만주의적인, 서양 음악과는 다른 국악의 또 다른 매력을 느꼈어요.”

1985년 윤동문은 황병기의 음악에 대한 비평으로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하고 데뷔하면서 한국 1호 공인 국악 평론가가 되었다.

“저는 항상 마이너리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실은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모두 하는 경쟁에서 이기기보다 나름의 길을 개척하고 싶었죠. 1985년에도 당시 흔치 않게 특정한 작곡가의 음악에 대한 비평을 출품했고, 음대 학생이면서 인문학을 꾸준히 공부했지요.”

소통하는 국악 평론가로서의 삶,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삶.

음악을 하는 젊은 세대에게 멘토가 되는 것이 목표 중 하나라는 윤중강 동문 그렇게 평론가로서 데뷔한지 30년, 평론가로서의 남다른 원칙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세웠다.

“평론가라는 직업은 공연자들 보다 한 단계 높은 위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에요. 국악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연주자, 공연자의 입장을 다른 평론가보다 좀 더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항상 공연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소통하려고 하죠.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거든요.”

이러한 공연에 대한 애정은 공연 기획자로 이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4~2005년 예술 감독을 맡았던 국악축전을 언급했다.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렸었는데, 개그맨 서경석씨 진행으로 이루어지니 국악도 관객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더라고요. 그 때 제가 강의를 맡은 ‘한국 음악의 이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중앙도서관 앞 계단에서 플래시 몹 공연도 해줬는데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이제까지의 30년, 앞으로의 미래

체감 온도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날 촬영을 위해 야외로 나온 윤중강 동문은 “안 추워! 하나도 안 추워!”라고 소리치며 홍대 카페 골목이 떠나가게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머나먼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순간, 순간에 충실한다는 좌우명처럼 오로지 카메라에 집중했다.

“정말 목표가 있다면 지금은 음악극을 대한민국에서 ‘잘 만든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 젊은 연주자들이나 공연 기획자들,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멘토가 되는 거예요. 딱 이거! 끝!”

유쾌한 국악인과의 멘토링을 원한다면 그의 SNS를 찾아보자. 힐링타임을 기대해도 좋다.

홍보팀 학생기자
연혜인(사회과학계열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