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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간을 이야기의 무대처럼

2013.05.02.

삭막한 도시에 생동감을 입히다

서울대로 등교하는 길,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색(色)에 물든 도시와 만난다. 콘크리트 도로를 달리는 ‘꽃담황토색’의 해치택시, ‘한강은백색’의 공사 가림막, ‘단청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공공표지판 등등. 이들은 서울시가 도시 고유의 브랜드가치 제고를 위해 선정한 서울대표색으로 지난 2009년부터 도시 경관조성을 위한 공공 디자인 부문에 활용되어왔다.

공간의 기능성을 높이면서도 도시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공간디자인 분야의 국내 대표주자는 바로 김현선 1세대 공간디자이너(환경대학원, 84). 서울색은 물론 책을 모티브로 조성된 파주 책방거리,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생태영향 최소화를 목적으로 한 한탄강 댐 건설 등 국내의 굵직굵직한 프로젝트 다수가 그녀의 손길을 거쳐 갔다. 2012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대통령상, 유엔 NGO 세계평화교육자국제연합회 그랑프리상, 2004 세계학술심의회 국제 그랑프리상 등 화려한 수상기록을 가진 그녀는 무형문화재 채화칠장 전수이수자 1호이기도 하다.

열린 관계 속의 공간 철학

공간디자이너 김현선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그녀라면 당연히 디자인 전공생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출신의 그녀는 학부시절 호기심 많고 행동력 넘치는 낭만소녀였던 것. “관심분야가 넓어 대학시절 내내 학보사, 방송반, 대학문화연구회 활동에 집중했어요. 그 당시 꿈이 뚜렷하진 않았지만, 개인과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것만은 분명해요.”

그녀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한국 문화예술사에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 김수근과의 만남. “한국인의 정서와 철학을 담은 김수근 선생님의 공간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공간은 특정 계층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이 아니라, 열린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분의 철학에 이끌려 저 역시 ‘공간’을 디자인의 거점으로 삼게 된 거죠.”

그렇게 그녀는 84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하여 공간구조 및 도시 디자인과 같은 프로젝트 경험을 쌓았다. 이후 일본 문부성 장학생이 되어 김수근 선생의 모교 동경예대에서 미술학부 박사과정을 밟으며 세부 조형을 연구했다. 양국을 오가며 공간에 대한 거시적·미시적 접근 방식을 두루 갖춘 그녀는 김현선디자인연구소를 설립, 공공·민간 부문 모두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제로 디자인

공간디자인 분야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우선 공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대중의 미적 욕구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 또한 컴퓨터 기술이 도입되면서 에어 브러쉬로 일일이 수작업하던 시절에 비해 작업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그러나 대중의 선호와 기술력만으로는 좋은 디자인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기술을 익히기에 앞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혀 디자인을 숙성시키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러려면 디자인만 봐서는 안 되죠.”

‘스토리텔링’을 통한 감성 디자인은 ‘숙성’을 중시해온 그녀가 3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추구해온 작업방식. “모든 것이 세련되고 깨끗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디자인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느냐의 문제죠.” 동시에 그녀는 이기적이지 않은 ‘제로 디자인’을 추구한다. “공간디자인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 속에 정체성을 찾아야 해요.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개성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죠.”

서울대 캠퍼스를 위한 낭만 디자인

공간에 대한 안목이 남다른 그녀가 서울대 캠퍼스 경관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 젊은 에너지를 반영한 컬러 코디네이션과 부분적 개방감을 반영한 건물 개조는 기본.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낭만이 깃든 이색 장소 조성’이라고 덧붙이는 그녀.

“대학 내 어딘가 비밀스러운 장소 다섯 가지를 만들 거예요. 이를테면 사랑을 고백하기에 좋은 건물옥상, 시험 전 정신을 맑게 하는 연못 같은 거죠. 자칫 현실에 대한 부담으로 삭막해질 수 있는 대학시절에 풋풋한 웃음이나 잔잔한 빛처럼 남을 수 있는 공간이 가장 필요해요.”

가상의 계획일 뿐인데도, 특정 공간 속 사람들 사연에 귀 기울이는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 벌써부터 서울대 캠퍼스를 힐링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느낌이다.

홍보팀 학생기자
문선경 (법학전문대학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