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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식탐 'PD'

2013.06.11.

요리하는 ‘식탐’ PD의 인류학으로 다큐멘터리 찍기
이욱정 동문의 인류학 특강 ‘누들로드’에서 르꼬르동 블뢰까지

“세상에, 오전 수업 시간에는 그 날 실습할 요리들을 교사들이 시연을 하는데, 3~4 개의 요리 시연을 동시에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요리를 하나도 모르니까 말 그대로 ‘멘붕’이었죠.”

‘먹는 것을 좋아했던’ 인류학도가 PD가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그러나 정작 요리의 기본을 모르고 음식 다큐멘터리를 심도 있게 찍는다는 데에 한계를 느낀 그는 휴직계를 낸 뒤 전 세계 최초의 요리학교라는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뢰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 그는 ‘르 꼬르동 블뢰’를 졸업한 최초의 PD가 되어 또 다시 다큐멘터리 현장을 누비고 있다.

바로 그 인류학도, KBS의 이욱정 PD (인류학과 석사 90학번), 시청률 10%를 넘기고 방송계의 퓰리처상인 피버디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의 주인공이 서울대 인류학과 후배들에게 인류학 특강을 선물하러 봄이 다가온 것 치곤 쌀쌀했던 4월 10일 오전, 규장각에서 열린 서울대 인류학과 주최의 ‘인류학의 이해’ 특강 시간에 후배들의 진로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찾아왔다.

‘잘 먹는다는 것’, 그것은 곧 ‘잘 스며든다는 것’

이욱정 PD에게 그의 직업은 곧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었다. 인류학과를 졸업했지만 학부 시절부터 캠코더를 손에 쥐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음식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은 오래 전부터 그의 꿈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먹는 것을 좋아했다던 그.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의 촉감과 맛이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난다는 그에게서 인류학도의 특징인 섬세한 관찰력이 보였다.

“석사 과정 시절 때 외국인 노동자들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는데 그들과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은 고유의 전통 음식을 먹는데 향신료 향이 굉장히 강한데도 저는 정말 잘 먹었어요. 그것 때문에 그들과 훨씬 더 친밀해질 수 있었죠.”

다큐멘터리를 위해 소금 사막에서 시베리아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해야 했을 그에게 이와 같은 능력은 축복이 아니었을까.

음식을 찍는다는 것, 음식을 만든다는 것

“여러분, 국수가 도시의 발달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아세요? 국수는 원래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재료만 바꿔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외식에서 굉장히 효율적인 음식이죠. 따라서 외식 산업, 도시가 발달하면 국수 역시 발달해요. 또 국수는 모든 재료와 다 잘 융합되기 때문에 모든 나라의 고유 음식들과 굉장히 잘 융합해 모든 문화권에서 국수가 나타나는 겁니다.”

흔히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하고 흔한 음식 ‘국수’에 대한 이욱정 PD의 분석에 학생들의 표정이 더욱더 흥미로워졌다. 그의 ‘국수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흔치 않은 궁금증과 음식에 대한 심도 있고 광범위한 분석에서 ‘누들 로드’의 힘의 원천이 어느 곳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풍부한 인류학적 지식과 필드워크에 단련되어 있는 관찰력, 조사 능력이 그를 훌륭한 다큐멘터리 PD로 만든다는 데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듯 했다. 그러나 이내 촬영하는 동안 국수들이 다 불어 정작 자신은 많이 먹지 못했다는 그의 ‘식탐’을 보여주는 귀여운 불평에 학생들의 웃음이 터졌다.

음식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위해 휴직계를 내고 직접 음식을 손으로 다루는 최고의 교육기관인 프랑스 ‘르 꼬르동 블뢰’에 입학까지 할 정도니, 그의 열정이 알만 하다. 르 꼬르동 블뢰에서 그 곳에서 만난 다양한 인종의 동료들에게서 전 세계 고유 음식들에 대해 배운 것이 제일 좋았다는 그, 요리를 하나도 몰라도 된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더니 다 경험 있는 요리사들 밖에 없어서 된통 속고 결국 낙제를 겨우 면해 턱걸이로 졸업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서 설사 남들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고, 성공으로부터 우회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의 모습이 비치는 듯 했다.

앞으로 펼쳐질 이욱정의 ‘다큐 로드’

“누들로드를 찍을 때 일년중 정말 특별한 날에만 소리를 내며 국수를 먹을 수 있는 일본의 스님들을 찍기 위해 하루 동안 수련을 같이 했어요. 한 번만 찍을 수 있다기에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음식’에 대한 열정도 마찬가지이지만 현실에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가감 없이 촬영해서 구성해야 하는 PD로서의 열정 역시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복직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다시 촬영을 위해 시베리아로, 소금 사막으로 떠났다는 그의 모습은 본인의 일에 흠뻑 빠져있는 듯 했다. 이욱정 PD는 다음 다큐멘터리는 국수에 이어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빵’에 대한 것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으로 펼쳐질 그의 ‘다큐 로드’가 더욱더 기대된다.

“자신의 관심사를 잘 알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이욱정 PD의 열정과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 없이 도전하는 정신이 존경스러웠다.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망설이는 일들을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서희경(인류학과, 12학번)의 말처럼 인류학과를 지망하는 새내기들, 혹은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인류학과 학생들에게 이욱정 PD의 강연은선배 탐험가의 하나의 좋은 ‘지도’였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그가 잘 하는 ‘인류학’을 상큼한 샐러드처럼 잘 버무린 그의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또 다시 우리에게 찾아올 날을 기대해 본다.

홍보팀 학생기자
연혜인(언론정보학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