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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것을 새롭게 창조하다 - 규장각 ‘한국적 경험과 융합 그리고 시각적 언어’ 특강

2023.06.27.

이제는 국악, 수묵화 등 우리나라 고유의 예술을 넘어, 다른 예술 방식과 융합한 퓨전 예술도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식이 있던 우리나라 전통문화는 융합과 변용의 과정을 거치며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6월 5일(월) 한국의 문화와 디자인의 융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대회의실(4층)에서 신준범 교수(오리건주립대학교 그래픽 디자인과)의 ‘한국적 경험의 융합 그리고 시각적 언어’ 특강이 열렸다. 이번 특강의 사회는 조인호 동양화과 학과장이 맡았다.

규장각 특별강연 〈한국적 경험과 융합 그리고 시각적 언어〉 포스터
규장각 특별강연 〈한국적 경험과 융합 그리고 시각적 언어〉 포스터

일상과 경험, 기술과 디자인을 모으다

신준범 교수는 발표에서 자신이 제작에 참여한 여러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사회 현상과 디자인의 융합에 대해 설명했다. 신 교수는 정치, 심리, 사회학 등을 함께 공부하며 그때 학습한 지식과 한국의 고유한 사회 현상을 작품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먼저 형형색색의 촛불을 배경으로 민본주의(民本主義)라는 커다란 한자가 적힌 포스터가 공개됐다. 해당 작품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참여한 대규모의 ‘촛불집회’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신 교수는 유달리 한국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촛불집회의 근간에는 국민이 국가의 근본이라 여기는 민본주의의 오랜 정신이 깔려있다며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소개된 여러 작품은 공통적으로 남북 분단의 현실을 담고 있었다. 남북한이 공유하는 한민족 정서와 남북한의 독립된 특징을 나타낸 ‘남북의 창’과 인공위성의 촬영 사진에 착안해 남북한의 모습을 재현한 ‘하나의 눈동자’는 다름에 대한 이해와 공존을 바라는 신 교수의 생각이 표현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한국의 정원 소쇄원을 모티프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interactive media) 작품을 소개하며 이를 ‘한국적 가치와 융합’이라는 특강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말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정원은 담이 낮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와 자연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에 착안해 신 교수는 관람객이 정원이 재현된 전시장을 거닐며 정원과 자연을 느끼고 공감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관람객의 동선과 머문 시간 등을 파악한 후, 얻어진 3차원 데이터를 토대로 색과 명도를 활용해 이를 움직이는 그래픽으로 드러냈다. 해당 그래픽은 3초마다 변화하며, 고즈넉한 배경과 음악을 통해 관람객의 경험을 물 흐르듯 담아낼 수 있었다. 신 교수는 “해당 전시를 통해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는 한국적 가치를 느끼게 되었고, 이를 기술적으로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준범 교수가 제작에 참여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거닐며 만들어 낸 것〉의 모습
신준범 교수가 제작에 참여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거닐며 만들어 낸 것〉의 모습

“학생들이 스스로 다양한 분야에 자발성을 갖는 것이 중요해”

신준범 교수의 특강이 마무리된 후, 김수정 교수(디자인과)의 주도로 질의응답 및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김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신 교수는 현재 음악,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영역에서 한국이 가지는 매우 높은 위상의 이유가 전쟁으로 인한 ‘무(無)존재’에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러한 ‘무(無)존재’ 기반 위에 트렌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재창조하는 능력, 감각을 지닌 개인들의 특성과 교육을 진행하는 지식인들이 융합되어 빠른 문화 발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자발성이 더욱 보장되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경쟁에 노출되어 정형적인 틀에 익숙해진 한국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의 경계를 허물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 교수 스스로도 “미국 유학 당시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어 힘들었지만, 다른 학생들의 작품을 관찰하고,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병행하며 역량을 차츰 높여나갔다”라고 말하며 자발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생각과 의식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높이는 교육의 깊이감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특강에 소개된 작품에 관한 질문이 여럿 제기되며 토론이 마무리됐다.

신준범 교수(오리건주립대학교 그래픽 디자인과)와 관계자들의 기념사진
신준범 교수(오리건주립대학교 그래픽 디자인과)와 관계자들의 기념사진

사회적 환경변화의 중심에 있는 예술과 디자인은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창조하며 우리의 일상과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한국적 요소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번 강연이 전달한 것처럼, 한국적 경험에서 우리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다채롭게 재현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정치외교학부 김규연
rbdus752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