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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시간, 서울대학교미술관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

2023.10.30.

‘자아(自我) 위 꿈, 자아(自我) 아래 기억’ 포스터
‘자아(自我) 위 꿈, 자아(自我) 아래 기억’ 포스터

지난 9월 21일(목)부터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을 제목으로 한 새 전시가 시작됐다. 이번 전시는 6월 23일부터 9월 10일까지 진행된 전시인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에 이은 것으로, ‘반추’를 주제로 한다.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은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정화(淨化)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것에 대해 깊이 반추해야 한다. 이번 전시는 그 반추가 진행되는 의식 내부에 관한 일련의 보고서들이다”라고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11월 26일(일)까지 진행되며 권회찬, 김겨울 등 작가 19명의 회화 180여 점이 공개된다.

현실과 불일치하는 의식, 예술 속에서 승화되는 ‘자아’와 ‘타아’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이 궁극적으로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불안정한 현실 속 자아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모두 현시대 예술에 대해 반문하고,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다. 심상용 미술관장은 “진리와 영원 어느 하나라도 손에 쥐길 원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에 대한 감각적 고증의 방식”이라고 이번 전시를 설명한다. 즉, 이번 전시의 핵심은 현실과 불일치하는 의식과 목적의 세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회화의 가능성은 그저 회화로서만 정의되고 끝나버리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예술은 관객을 변화시키고, 능동적으로 만든다.

전시작, 김겨울 작가의 ‘Make No Apologies’(면천에 유채, 180x200cm)는 물리적인 세계 그 자체와는 연계될 수 없는 추상적인 감각을 회화라는 그릇 안에 담아내는 일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전시작, 김겨울 작가의 ‘Make No Apologies’(면천에 유채, 180x200cm)는 물리적인 세계 그 자체와는 연계될 수 없는 추상적인 감각을 회화라는 그릇 안에 담아내는 일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 본인의 진실된 자아, 그리고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놓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로써 감상자들도 회화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표일 것이다. 김겨울 작가의 ‘Make No Apologies’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작품은 선과 형태가 명확하지 않고 가리키는 대상 또한 모호하지만, 제목은 특이하게 아주 구체적인 상황을 지목해 관객으로 하여금 그 간극에 대한 고민을 유도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생각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경험을 얻는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람객으로서가 아니라 ‘변명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추상화 앞에서 자기 삶의 변명들을 되돌아보는 적극적인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꿈과 추상, 기억과 구상의 문제

이번 전시가 내세운 주제가 단순히 ‘자아’의 탐색인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자아 아래 ‘기억’과 자아 위 ‘꿈’을 겨냥한다. 기억이 구상이라면 꿈은 추상에 가깝다. 심상용 관장의 “추상과 구상이라는 근대회화의 이항대립은 성립 불가능하다”라는 언급이 이들의 대립이 아닌 공존을 추구하듯, 이번 전시는 ‘자아’를 탐색하는 작가들의 모든 예술적 고뇌를 긍정한다. 현실과 그것에 어떻게든지 영향을 미치는 비현실의 세계, 그리고 두 세계 사이의 회색지대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구체화와 추상화를 동시에 거친다. 관람객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회색지대의 전시를 감상하며 자기 자아의 기억과 꿈에 대해서도 성찰해보게 될 것이다.

권회찬 작가의 ‘자화상’(캔버스에 콩테와 유채, 160x130cm)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한 형상이지만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분명한 자화상이다.
권회찬 작가의 ‘자화상’(캔버스에 콩테와 유채, 160x130cm)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한 형상이지만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분명한 자화상이다.

권회찬 작가의 ‘자화상’은 복잡한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가득 채워진 작품임에도 자화상이라는 언뜻 조응하지 않는 제목으로 소개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임의로 휘갈긴 낙서 위에 선과 입체를 그려 넣고, 뚜렷하게 도드라지는 색감이 없이 완성한 이 작품에는 외로이 동요하는 물체의 물성이 담겨있다.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난해한 입체 구조물이 ‘자화상’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얻는 순간, 관람객은 그 안에서 작품을 감상 중인 본인, 즉 자아를 발견한다. 스스로가 ‘나’가 아닌 것 같은 경험, 또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경험은 사실 생소한 일이 아니다. 권회찬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겨냥한다. 추상과 구상의 사이, 또는 자아의 기억과 꿈 사이에 선 회화를 통해 관객들이 그러한 ‘사이’의 경험을 해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전시를 감상한 이수빈 학생(서양화과)은 “전시를 관통하는 자아는 위태로움, 아슬아슬함과 같은 불안정한 감정”이었다며 “83~96년생으로 구성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니 현재 사회에서 이삼십대가 느끼는 공통된 감수성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아 공감이 많이 됐다”라고 이번 전시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번 전시도 단지 ‘누군가’나 ‘그들’로 대표되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아(自我) 아래 기억, 자아(自我) 위 꿈’은 삶의 배경, 성별, 세대, 국적, 전공, 관심 분야, 가치관 등 구태여 매겨진 모든 기준을 뛰어넘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닌 동시에 누구에게나 가능한 ‘자아’의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학교미술관을 방문해보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김진영(작곡과)
young716@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