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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맑고 깊은 샘

2010.12.20.

마르지 않는 맑고 깊은 샘. 소천장학재단 박영희 여서

피난 시절 폐허 속에서 책을 펼쳐야 했지만 그의 꿈은 늘 맑고 깨끗했다.
나직하지만 강인한 신념과 검소하고 단정했던 삶.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면
가슴이 떨리도록 좋았다던 문학소녀의 마음은 어느덧 세계 곳곳에서 인재의
미래를 열어주고 우리 역사와 문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깊은 샘이 되었다.

한국학 국제화의 미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소천국제회의실 앞에는 이곳에서 강연을 했던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제임스 애덤스 월드뱅크 동아태국 부총재, 뤼디거 볼프룸 국제해양법재판소장을 비롯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수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강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비결 가운데 하나는 동시통역 언어를 바로 청취할 수 있는 소천국제회의실의 첨단 시설 덕분이다. 이 공간은 국제대학원 산하 소천교육연구재단을 설립한 박영희 여사의 기부채납으로 건립됐다. 수학교육과 동문인 박영희 여사는 1986년 소천장학기금 출연을 시작으로 서울대학교발전기금 장학금은 물론 세계 10여 개 명문 대학의 한국학 박사과정을 전공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지원하고 있다. 용산문화원장을 역임한 그답게 그는 우리의 문화진흥에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다. 한국에 대한 어떤 것이든 연구하고 학문적 가치를 발굴하는 일 또한 얼마든지 한국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 의 믿음 가운데 하나다.

“외국 땅에서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이지만 여전히 국제대학원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재단 사무를 돌봄은 물론 용산노인종합복지관 운영위원장 등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는 박영희 여사. 그는 이토록 평생에 걸쳐 누군가를 돕고 사회의 공익을 위한 일에 자신을 바쳐온 동기를 천성에서 찾는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은 소꿉장난할 때부터 가졌던 것 같아요. 어려운 친구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치 본능처럼 그런 마음이 들고 좋았어요. 머리가 굵어지고 난 다음에도 고아원이나 특수학교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지요. 물론 주위에선 이해 못한다는 반응이었지만요.”

배움은 불멸의 가치
박영희 여사가 이러한 마음을 결국 실천으로 옮기는 삶을 선택한 데에는 아무래도 사춘기 시절 겪은 한국전쟁의 영향이 크다. 그의 고교 시절은 온통 전쟁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평화롭던 일상이 순식간에 짓밟혀 폐허가 되고 마는 전쟁의 잔인함. 이곳 저곳으로 피난하러 다녀야 했던 와중에도 그의 어머니는 딸의 손목을 잡고 학교를 찾았다. “배움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대피생의 자격으로 누구나 어디서나 하루라도 공부할 수 있었던 피난 터의 학교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배움의 귀중함을 잃지 않았던 그였기에 그 시절의 공포와 공허함 또한 이겨낼 수 있었다.

“삶에서 어머니의 가르침은 제게 큰 부분을 차지해요. 검소함의 미덕을 깨닫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덕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남을 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리라는 것도 어머니는 예견하셨죠.”

피난을 떠나 임시학교에서 어렵게 공부를 했던 경험 탓에 형편과 배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그는 장학사업에 대한 의지를 한층 더 굳게 다지게 된다. 20여 년 전, 기업의 거액 기부 외에는 개인 기부가 그리 활발하지 않던 때, 그는 일찍이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거액의 발전기금을 기부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오래도록 꿈꾸어 왔던 생각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에게까지 장학혜택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를 쓰듯 진솔한 마음이 기부의 시작
어린 시절, 선물 받은 일기장에 일상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며 시작된 글쓰기는 이제 즐거운 습관이 되었다. 이미 여러 권의 시집을 엮은 시인인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늘 혼자가 아닌 모두를, ‘내’가 아닌 ‘우리’를 배려하고 생각했던 그의 진심이 읽힌다.

내가 인정으로 녹아서/너를 품으며/모두가 하나되는 우리/이제 우리도/나의 누구/나의 그대/나의 것이라 내놓아야 해/내가 바로 우리라 해도/우리의 울타리가 나를 감싸고/나의 우주 안에/우리가 있네/아, 우리/옛날에도/지금도/영원까지/우리가 우리이고/우리가 나이기를/그래서/우리가 원없는 모습/하나 하나/아름다운 물방울로 모여/큰 강이 되리/위대한 힘이 되리 (박영희 作, 우리 中)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과 바다가 되듯, 작은 데서 시작하는 기부의 실천을 중요히 여겨온 박영희 여사.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오랜 외국 생활을 경험하며 그는 다른 나라의 기부문화도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외국에선 수표에 직접 금액을 적고 사인을 하지요. 단돈 1달러를 써내면서도 그들은 멋들어지게 서명을 하면서 매우 자랑스러워 하더군요. 우리의 기부문화도 그래야 합니다. 적은 돈이라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작은 정성이 모여 않을까 큰 힘을 이룰 수 있듯이 작은 자부심들이 모여야 않을까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려운 이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천원을 기부하는 ARS만으로도 몇억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서입니다. 거기에 자연스럽고 성숙한 문화만 더해진다면 우리의 기부도 선진국 못지않은 수준이 될 거라고 믿어요.”

박영희 여사는 또한 검소한 삶이 기부의 싹을 길러내는 비결이라 말한다. 이미 거액을 출연한 자선가이자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국제 키와니스 한국지구 제2지역 총재, 용산문화원장을 비롯한 요직을 역임한 그이지만 장바구니를 맨 채 버스를 타고 시장을 보러 갈 만큼 검소한 생활습관이 몸에 배었다. 재임 시절에도 관용 차량 대우까지 받았지만 꼭 필요한 공무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그였다. 지니고 있는 물건들에서도 오래도록 아껴써 세월의 깊이가 묻어났다.

가진 것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이 기부가 아니라 나의 것을 비로소 나눌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 바로 기부인 셈이다. 소천(素泉). 깨끗하고 순수한 샘을 뜻하는 그의 호처럼 곳곳에서 마르지 않는 나눔과 배려 샘이 차고 넘칠 때, 우리의 기부문화도 풍성하게 아름답게 가꾸어질 것이다.

글 김현남 사진 박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