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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학부에 가장 어울리는 강의

2011.03.08.

자유전공학부 신임교수인 엘리 박 소렌슨 교수 사진

'한국인' 엘리 박 소렌슨 교수

"어렵사리 고향을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 계시더군요. 고아원에 맡길 때까지 나를 돌보았던 15살 연상의 누나를 만났는데, 많이 우시더군요. 언젠가는 어머니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유전공학부 신임교수인 엘리 박 소렌슨 (33) 교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혈육을 만났던 '아주 감정적이었던 순간'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가 돌을 갓 넘기고 입양된 곳은 조용한 덴마크인 마을이었다. 친절하고 교양있는 덴마크인 양부모는 아이가 한국에서 왔음을 말해 주는 박씨 성을 이름 가운데 넣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성장기를 보내게 된 곳은 '색깔 있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작은 백인 마을. 어릴 때부터"나는 입양되었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르다"고 말을 해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정체성을 고민하던 소년, 소설에서 길을 찾다

"어려서부터 정체성이란 걸 늘 의식하고 자랐어요.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이해하기 힘든 현실에서 떠나고 싶을 때면 그는 혼자 소설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토마스 하디의 '주드' 같이 500페이지가 넘어서 책 속으로 마구 빨려 들어가게 되는 책들을 특히 좋아했다."넌 소설 읽는 걸 좋아하니까, 그걸로 돈도 버는 게 어때?" 고교 시절 친구의 제안에 사우든 덴마크 대학 영문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혼자서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랐다. 문학을 연구하는 여러 방법 중에 그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탈식민주의)'을 선택했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은 식민지 지배를 받던 국가가 독립국이 된 다음에도 정신적으로는 지배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신적 혼란 상황을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피지배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지배국의 영향이 뒤섞인 문학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는 그 문학들을 분석해 피지배를 경험한 자들이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연구를 한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타자로서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를 분석할 힘을 얻지 못한다"는 의견을 책으로 피력했다. 내가 왜 남들과 다른지, 다르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 없이 고민하며 자랐던 소렌슨 교수가 탈식민지 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런던 대학으로 떠났다.

런던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을 그는 잊을 수 없다. 런던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해서 한국계 영국인 (Korean-English) 같은 '하이픈 아이덴터티'가 일반화된 독특한 다인종 도시였다. 더 이상 혼자만 다르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를 만났고, 자유롭게 연구에 몰두했다. 런던 대학은 식민지 문학을 연구하는 '한국계 덴마크인'에게 전액 장학금을 안겼고, 그는 아프리카 세네갈과 인도의 탈식민주의 문학을 연구해 4년만에 석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다. 맥밀란 출판사에서는 그의 논문을 모아 ‘탈식민주의와 문학’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였다.

가장 자유전공학부 답게 가르치겠습니다

자유전공학부 신임교수인 엘리 박 소렌슨 교수 사진한국 학계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에게 처음으로 교수직을 제안한 대학은 우연찮게도 한국의 대학이었다. 경희대에서 1년 반 동안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자신의 가르치는 재능을 새롭게 발견했다.
"한국 학생들은 잘 훈련되어 있지만 자기 생각을 말이나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열정이 없더군요."
타자의 문학을 연구해 온 그이지만, 교육에서만큼은 정통 교육 방식을 선호했다. 그는 오랜 시간 서구의 대학에서 검증되어 온 읽기, 쓰기, 말하기 교수법을 한국인 학생들에게 적용했다. '질문을 질문하는' 인문학식 토론을 연습한 아이들은 차츰 더 열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로 성장해 갔다.

경희대에서는 작은 독서 토론회를 만들어 학점과 무관하게 책을 읽고 토론하는 그룹을 만들었다. 캠브리지 대학의 유서 깊은 연구소에 발탁되어 다시 한국을 떠날 때까지 그는 매주 학부생들을 만나 프로이드나 쟈끄 라깡을 읽고 토론했다.

"서울대 학생들에게도 정통에서 따온 나만의 교수법을 이용해서 읽고, 쓰고,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시험에 찌들고 게임에 빠져있던 한국 학생이었다고 해도 제가 가르치면 고전의 세계로 빠져들어서 대학 교육의 진수를 체험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대학의 기본 소양을 충분히 기른 후에 자유롭게 자신의 전공을 추구하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유전공학부는 소렌슨 교수의 합류로 더욱 제 색깔을 찾아갈 전망이다.

2011. 3. 8
서울대학교 홍보팀 조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