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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유럽을 선물하다

2011.04.08.

책 읽지 않으면 떠날 수 없다 외교학 전공학생들의 서바이벌 유럽 학술답사 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궁전 앞에서 외교학 ??공 학부생ㆍ대학원생ㆍ교수들이 모여

지난 가을 외교학과 게시판에는 특이한 공고문이 올라왔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주경철 서양사학과 교수의 ‘대항해 시대’ 등 유럽사 관련 책 다섯 권 중 두 권의 서평을 제출하면, 잘 쓴 학생들에게만 유럽 학술 답사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학술답사단으로 선정되면 무려 10박 11일간의 답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년도의 3박4일 에 비해 파격적인 기회였다. 외교학과의 해외학술답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85학번 선배님의 지원으로 가능하게 되었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외교학도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지만 과제로 나온 책들이 만만치가 않았다. 다섯 권 모두 ‘대학생이 꼭 읽어야할 고전’이라고 늘 알려져는 있지만 방대한 분량과 난이도 때문에 기피 대상인 책들이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530쪽, 대항해시대는 580쪽, 닐 퍼거슨의 ‘제국: 유럽 변방의 작은 섬나라 영국이 어떻게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는가’는 503쪽, 조르주 뒤비의 ‘프랑스 문명사’는 무려 890쪽에 이른다.

그래도 대학생의 열정은 책 보다 두꺼웠다. 한숨을 쉬던 것도 잠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후배들은 도서관에 있는 해당 책들을 모두 ‘대출중’으로 만들면서 책 읽기 경쟁에 돌입했다. 유럽 역사를 몇 주만에 독파한 학생들 20명이 최종 선발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담당 교수진은 “여행이 아닌 학술답사”임을 되풀이 강조하면서, 두 달 간의 준비과정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제국을 하나씩 맡아서 공부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 앞에 발표해야 했다. 공들인 보고서를 나눠 보고, 유럽 제국들에 대한 빵빵한 지식을 탑재한 후에야 학생들은 유럽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학부 20명, 대학원 8명이 “유럽제국의 흥망과 한국: 로마에서 브뤼셀까지”라는 거창한 이름의 대항해를 다녀온 것이 이번 겨울이다.

한 때 제국을 거느렸다가 이제는 패권을 양도 중인 유럽 5개국을 선정해 역사지 위주로 답사를 했다고 한다. 누구는 네덜란드의 땅이 신기했고, 누구는 영국식 농담이 좋았고, 누구는 EU센터 방문이 유익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10박 11일을 함께 여행한 이들은 지구 저편을 모험하면서 청춘다운 한 때를 보냈다.

이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선물한 동문은 작은 개인 사업을 하는 김진구 동문(85학번)이다.

김진구 동문이 모르고서 선물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단순한 여행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답사는 열정으로 임한 사전 독서 덕분에 교육의 장으로서 제구실을 톡톡히 했다.

자유전공학부 유영상 학생은 소감문에서 답사 전 준비 때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국제정치의 시각으로 한반도를 보는 사고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고, 외교학과 진입생인 김무늬 학생은 이탈리아에 가보니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로마 제국사가 현실로 살아나면서 장면이 눈에 맺히더라고 전했다.

김 동문은 두 개의 선물을 해 준 셈이다. 후배들에게 유럽을 보게 한 것, 또 ‘읽게’ 한 것. 속 깊은 선배의 도움으로 서울대의 청춘들은 아프지만은 않았다.

2011. 4. 8
서울대학교 홍보팀 조문주

학생 소감문 제국의 심장에서 국제정치학을 만나다

[학생 소감문] 제국의 심장에서 국제정치학을 만나다

글: 유영상 (자유전공학부 외교학 전공 09)

유영상 사진지난 2월 중순 외교학과 교수님, 대학원, 학부 선배·동기들과 함께 10박 11일 동안 서유럽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최초로 실시된 유럽 답사는 외교학과 85학번 김진구 선배님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선배님께서는 우리에게 “젊을 때 시야를 넓히고 세계를 품어야 한다”며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고 한다.

9월부터 외교학과 학생들은 관련 도서 서평 두 편, 그리고 국가별 보고서 한 편 씩을 작성하며 제국 답사를 준비했다. 교수님들께서 요구하시는 참고문헌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기에 준비가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 체제를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과 함께 다른 나라의 국제 정치 상황과 한반도를 함께 엮어낼 수 있는 사고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5개국을 방문했다. 제국의 지위에 올라섰던 로마, 네덜란드, 프랑스, 영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제국의 흥망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EU 집행부가 위치한 브뤼셀에서는 통합 유럽의 미래에 대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각 국가의 부침과 주권국가에서 연합체로 나아가는 EU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통일과 발전, 그리고 동아시아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내가 보고서를 쓴 영국이었다. 200년 동안 세계 정치·경제의 수도였던 런던은 여전히 옛 영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본초자오선이 지나는 그리니치 천문대였다. 그리니치가 동경 0도가 된 것은 당시 패권을 갖고 있었던 영국이 국제회의에서 자신들의 표준을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보며 권력의 속성과 문명표준론, 우리 삶과 국제정치학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꼈다.

이번 답사 동안 끊임없이 샘솟던 수많은 고민들을 교수님 혹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심화·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번 답사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몸소 체험하고 느끼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외교학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