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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현 교수의 못 다 이룬 꿈

2011.07.25.

신광현 교수 수업 사진


영어영문학과 신광현 교수가 7월 24일 병으로 별세하였다.

신광현 교수 미니 홈피 사진들 북경에서

1년 전 신광현 교수는 북경 대학에서 여름 학기 수업을 했다. 서울대가 아시아의 지적 허브로 성장하기 위해 2000년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던 '베세토하'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첫 시작이었다. 베세토하 (북경-서울-도쿄-하노이)의 대학들이 서로 강의를 교환하면서 동아시아 대표 대학들 간에 공동문화를 창출하여 새로운 지성을 세우겠다는 서울대의 야심이 담긴 사업이었다.

2009년 교육상을 수상하고 '잘 가르치는 교수'로 공인된 신광현 교수가 '한국의 대중문화와 사회변동'이라는 과목을 북경대 학생들에게 영어로 가르치고, 화학부 김희준 교수가 자연과학 분야 강의를 맡았다. 첫 강의 소재로 대중문화를 선택한 것은 신 교수가 문화 연구가로서"대중문화에 보이는 일상 생활이 실제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역사적·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중국의 지성들과 과감한 소통을 첫 시도했다.

"북경대학교 학생들은 진지하고 순수하고 열정적이면서 비세속적으로 느껴진다. 이들을 보면 서울대 학생들과 섞어놓고 싶다. 서울대와 북경대가 번갈아가면서 주관하면서 매년 학생들을 반씩 섞어서 써머스쿨을 운영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욕심을 언젠가 꼭 현실화시켜보고 싶다." (2010년 7월 24일, 신광현 교수 미니홈피)

그가 꿈꾸던 전 지구적 소통

정신분석학적인 접근법으로 문학을 다루었던 신광현 교수는 더 큰 소통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년 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에서 수 년전에 '세계문학전집' 재발행 사업을 계획했다. 세계의 고전 문학들에 대한 오역을 털고 제대로된 번역서를 내겠다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인문학계의 저명한 교수들이 참가하는 이 사업에서 신광현 교수는 위원장직을 맡았다. 현직 교수들이 교차 번역까지 참여하면서 매달려야 하는 고된 연구 끝에, 신광현 교수는 5년 만인 작년부터 성과물을 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적 양식이 전 지구화된 오늘날, 타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고전에 있어요. 한국 문학을 제대로 영어로 번역하는 일도 그래서 중요합니다." (한국일보 인터뷰)

신광현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앞으로 20년 동안 300권의 고전을 출판할 예정이었다.

학생들이 기억하는 신광현 교수

젊은 신광현 교수의 별세 소식을 들은 서울대 학생들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있다. 학생들의 냉정한 강의 평가에서 매 학기 4.0을 넘기는 평점으로 최상위권에 오르던 명강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신 교수를 누구보다 따뜻한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60명이 넘게 수강하는 대형 강의에서도 두번째 수업이면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는 교수님,
일부러 소규모 강의를 열어 학부생에게 꼼꼼한 개인지도를 마다 않는 교수님,
싸이월드 클럽을 열어 '쥔장' 노릇을 하며 질문에 일일이 답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수님,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나요?" 같은 난데없는 질문에도 당신의 경험을 되새기면서 답변해 주던 교수님,
돈 없는 대학원생에게 사비로 장학금을 주며 '언제 책상이나 치워주고 아르바이트비라고 생각하라'고 말하던 교수님,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학생들 밥사주는 약속을 미뤄서 미안하다고 하던 교수님,
서울대에서 본 가장 인자한 교수님..."

서울대 학생들은 이런 기억의 편린을 모아 놓고, 뜨거운 눈물로 그를 보내고 있다.

신광현 교수 (1961~2011)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4년 본교 영어영문학과에 임용되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설 영문화권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고, 기초교양교육 웹진 '열린지성' 부편집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2011. 7. 25
서울대학교 홍보팀 조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