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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맞은 나의 다짐

2012.02.27.

동양사학과 박한제 교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인간사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퇴직하는 나의 마음은 실로 감개무량하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에게서 서울대학이라는 이름을 들은 이후 이 단어를 빼고는 내 인생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서울대학은 나에게 첫사랑이었고, 서울대학교 교수가 된 것은 꿈의 실현이었다. 내 인생의 2/3인 40여년의 세월을 함께 했으니 내 인생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서울대학과 이제 이별이라니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교수라는 직업을, 그것도 서울대학교 교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하였다면 제 인생은 어떠했을까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끔직한 일이다.

돌아보면 서울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하여 참으로 행복했다. 직업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준 자랑스런 나의 모교 서울대학교, 연구의욕을 적당하게 유발시킨 나의 동료교수들, 그리고 君子三樂을 만끽하게 만들어 준 사랑스런 제자들을 포함한 서울대학교에 관계한 여러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진한 사랑과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던 이 서울대학의 멤버에서 내일이면 제외된다. 아내와 딸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전화기를 들 때마다 “서울대학의 박한제입니다”라 하던 내가 내일부터는 뭐라 해야 하는지 그저 멍멍할 뿐이다.

이렇게 사랑해 온 서울대학의 위상이 작금 사방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아 날로 흔들리고 있다. 수교가 된지 얼마지 않던 1990년대 중반 중국인 교수들이 학회 등에서 나를 소개하면서 서울대학은 중국의 北京대학이나 淸華대학 상해 復旦대학과 유사한 위치에 있는 대학이라고 설명하면 나는 어김없이 한국에서의 서울대학은 이들 대학과는 달리 독보적이라고 굳이 이의를 달곤 했다. 그랬던 서울대학이 곤경에 처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책임만은 서울대 구성원 모두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서울대학이 관악에다 새터를 잡을 때 동문시인은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고 읊었다. 우리는 과연 이 시인의 바람에 맞게 연구하고, 또 가르쳤는지 검증하고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외국대학이 실패한 길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가려고 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즉 “Veri 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창학이념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수에게는 정년이 있지만 학자에게는 정년이 없다고 한다. “전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더욱 치열하게 연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울대학이 내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한 저의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012.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