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내

서울대 소식

뉴스

뉴스

리코더 하나로 떠난 네덜란드 왕립음악원 유학

2012.03.15.

권민석 동문

리코더 연주자로 잘 알려진 권민석 동문. 2004년 서울대학교에 작곡과에 입학해 입학하여 작곡 이론을 전공하다가 2006년 리코더를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났다. 그는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 고음악학과에서 석사 과정으로 재학 중이다.

바로크 음악에서 21세기 록 음악까지

“다들 그렇듯이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처음 리코더를 손에 쥐었어요. 점점 악기의 소리에 매료될 때쯤, 어머니께서 프란스 브뤼헨(Frans Brüggen)의 음반을 한 장 사주셨죠.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소리를 내는 악기구나’하는 감동과 놀라움과 함께 이 악기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리코더에 대한 사랑은 음악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음악학은 이러한 고민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도록 해주었다. “바로크 음악과 리코더만 공부했을 때와는 달리, 당시 음악 사조와 문맥을 보게 되니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음악을 300년 뒤에 연주를 하면서 그냥 ‘이국적인 느낌’으로 연주하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더 맞게 해석해내려고 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권동문은 2009년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 1위(현대음악 해석상)와 런던 국제 리코더 콩쿠르 3위를 동시에 입상했다. 몬트리올에서 당시 그는 첫 곡으로 17세기 네덜란드의 리코더 연주자 겸 작곡가 야콥 판 에이크의 ‘사랑하는 다프네가 떠나갈 때’를 연주한 뒤, 이어 직접 만든 변주곡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국의 록그룹 라디오 헤드(Radiohead)의 노래 ‘Paranoid Android’를 변주한 즉흥곡을 선보였다.

짧지만 굵었던 관악 캠퍼스 생활

1학년 때에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며 곧잘 했던 특기를 살려 축구부로 활동도 했다는 권동문은 사실 관악 시절에 ‘수업’에는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고백하기도 했다. “다른 면에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밖에서 연주하고, 활동하고, 작업도 하면서 좋은 연주자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지요.”

당시만 해도 음악학과 리코더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가 리코더 연주자로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고음악 연주가로 유명한 호르디 사발(Jordi Savall)의 공연을 접하고 나서였다. “‘저런 고악기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소리로도 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아직 부족하지만 한번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요.”

특히 악기는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바꾸기가 힘들다는 생각은 그가 더 늦기 전에 연주를 계속 해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했다.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을 왜 좋아하는지, 좋아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확신과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학부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원전연주에 가장 충실하다는 네덜란드로 떠나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조화로운 음악의 큐레이터를 꿈꾸며

그는 현재 네덜란드 왕립 음악원 동문들과 함께 만든 고음악 앙상블 '콩코르디 무지치(Concordi Musici)'을 이끌고 있다. 악기 구성은 곡 편성에 따라 리코더와 반주를 담당하는 하프시코드를 기본으로 첼로, 바순, 베이스, 바로크 기타 등이 추가된다. “라틴어로 콩코르디(Concordi)는 화합을, 무지치(Musici)는 ‘음악가들’을 뜻합니다.” 콩코르디 무지치는 정열적인 이탈리아 음악들을 선곡해 수록한 첫 앨범 '스카를라티·만치니·비발디'에 이어 얼마 전에는 '헨델·텔레만·바흐'로 구성된 두 번째 앨범을 통해 후기 바로크 시대 독일 음악들을 소개했다. “회의를 거쳐 구성한 레퍼토리를 연주 하다보면 ‘우리 앙상블에게 맞는 곡이다’라는 느낌이 오는데, 신기하게 거의 모든 연주자들이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향후 프로그램은 상공업이 번성했던 16-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되었던 음악들이다.

리코더가 아직 국내에서는 연주용 악기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에 대해서도 그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것을 꼭 연주용 악기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반문했다. “어린 학생들이 음악의 기초와 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을 가장 편하게 배울 수 있는 악기가 바로 리코더입니다. 전문 연주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크게 쓰일 수 있는 악기를 제가 연주한다는 것이 감사하죠.”

지금은 수백을 호가하는 리코더를 연주하는 그도 처음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보급형 엔젤리코더를 통해 악기를 익혔다며 웃었다. 권동문은 리코더 연주가에 대해 아직 생소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리코더가 대한민국이나 서울이라는 콘텍스트와는 이질적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아쉬움 같은 건 전혀 없고, 그러한 속에서도 저는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즉흥연주를 즐겨한다는 권민석 동문, 그렇다면 잠시 전공했던 작곡가의 길은 완전히 접었을까. 권동문은 본인을 큐레이터에 비유했다. “저는 연주가로서 제가 보기에 멋진 작품들을 순서, 방식, 위치 같은 것들을 조심스럽게 선택해서 대중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이죠.”

박문경(외교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