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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찾은 인간의 아름다움

2009.10.22.

소록도에서 찾은 인간의 아름다움
장민정 (사회학 06)
사회학 장민정 학생4학년 1학기, 나는 불안한 미래와 진로에 대한 고민과 함께 원인 모를 공허감에 시달렸다.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 무엇을 위해 달렸고,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 소록도였다. 그리고 3일 후 나는 소록도로 떠났다.

국립소록도병원 내과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입원 환자들의 대화상대가 되어드리고 편지를 대필하고 산책을 돕는 것을 비롯해 세수, 식사, 샤워, 기저귀 갈기와 침대시트 바꾸는 일 등이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됐다. (05-09시 봉사는 봉사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은 아니었다.)

24년간 이렇게 타인을 위해 오롯이 하루를 살았던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 환자들을 바라보는 거 자체도 고통스러웠다. 하루하루 죽음과 육체적인 고통 속에 초라해져 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힘이 되는지 회의가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평소처럼 한 할아버지의 식사를 도왔던 어느 날이었다. 이분은 한센병의 후유증과 각종 합병증으로 목 아래 부분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분이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식사를 할 때도 수시로 사래가 걸려 내 얼굴에 음식물과 침을 뿌리시곤 하시던 그 할아버지가 식사를 도와드리고 방을 나서는 나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굉장히 느리지만 또박또박 힘들게 말씀하시던 순간의 감동…

그날 나는 깨달았다. 베게 위치를 바꿔드리고 침상 탁자 위의 컵을 조금 앞으로 움직여 주는 등 나로서는 정말 사소한 행동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환자에게 큰 안락함을 준다는 것을. 그 후 나는 내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됐다.

소록도를 떠나는 마지막 날 우연히 성당 미사에 참석하게 됐다. 한센병으로 형체가 무너져내린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기도하고 있는 소록도 어르신들 모습에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름한 성당 안에서 정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에게서도 버림받았던 사람들이 신의 축복을 바라고 별 탈 없는 하루를 감사하다며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내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어느 종교적인 자리의 모습보다 감동적이고 성스러웠다.

나는 이제 좋지 않은 시력이지만 볼 수 있는 눈과 멀쩡한 사지를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한없이 감사하게 됐다. 또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보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서로 부족한 점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느꼈다. 앞으로 내가 알고 배운 것을 토대로 사회에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정도 생겼고,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봉사활동이란 남을 위해 힘을 바쳐 애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남을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어느 순간 자신도 치유하게 되고 자신도 위하게 되는 그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이 봉사활동의 진수가 아닐까.

2009. 10. 22
편집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