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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되려고 손을 내밀자, 내 마음의 눈도 열려

2009.10.22.

눈이 되려고 손을 내밀자, 내 마음의 눈도 열려
전효준 (농경제사회 05)
농경제사회 전효준 학생‘복학생’ 2년여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어느새 나에게 이런 낯선 칭호가 붙어 있었다. 복학생이라고 하면 대개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전공 공부에 몰두하거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소위 스펙쌓기에 혈안이 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나 역시 나를 둘러싼 최소한의 것들 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상실과 도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했기에,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5월 나는 우연히 ‘이웃사랑’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이름에서 풍기는 따뜻한 분위기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이웃사랑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던 건, 봉사활동의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봉사하고 보라는 식의 허술한 체계가 아닌 개개인의 선호에 알맞은 봉사활동을 연결해 줌으로써 이왕 하는 일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이었다.

그렇게 이웃사랑에 가입하고 나는 실로암 시각 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을 이용하는 장애우 중 다수는 전혀 앞을 못 보는 게 아니라 저시력자로 확대독서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난해 수능에서 저시력자에 대한 시간적 배려가 있었지만 풀이 시간이 부족해 고배를 마신 재수생 친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초등학교 시절 뚜렷한 원인 없이 시력을 잃었던 녀석은 갖가지 상처와 절망을 겪은 탓에 대하기 힘든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부하다가 목소리가 조금 커질라치면 자기가 안 보이는 게 나를 답답하고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면서 심하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한 마디씩 무심코 내뱉는 아이의 비관적인 말이었다. 예전에 공부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선생님들은 자기가 잘 안보여서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말도 잘 안 들었기 때문인지 얼마 못 가 하나같이 말없이 떠나갔다면서, 나에게도 열심히 가르쳐줘서 고맙지만 앞으로 힘들어지면 부담없이 그만둬도 된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녀석의 말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오기가 났을까? 한두 살이라도 더 많고, 무엇보다 밝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어 더 행복한 내가 참고 이해하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이 친구의 미래를 바꾸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는 새 녀석에게 한층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했다. 또 봉사를 떠나 친한 형과 동생으로 대하고 싶다고 터놓고 얘기했다. 평소 매너가 아주 좋거나 고운 말투를 쓰는 편도 아니라서 때로는 거칠다 싶을 정도로 호통을 칠 수도 있겠지만, 공부 외에도 서로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주고받자는 제안도 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벽이 조금씩 사라졌던 것 같다. 숙제나 예습이 불성실하면 녀석의 장애와 상관없이 수시로 호통을 쳤기 때문에 ‘호랑이’라는 애칭도 얻었고, 차츰차츰 숙제와 예습을 잘 해 온 덕분인지 녀석의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힘을 모아 다가오는 11월 12일 수능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어느새 후반부로 치닫고 있는 두 번째 경주에서 녀석이 길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끝까지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리고 훗날 녀석이 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복지관으로 향한다.

2009. 10. 22
편집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