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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열심장’으로 만든 베이징의 자폐아들

2009.10.22.

나를 ‘열심장’으로 만든 베이징의 자폐아들
최환기 (중어중문 04)
중어중문 최환기 학생나를 얽매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국제협력NGO에 해외봉사활동을 신청했다. 지금껏 못해 본 젊은 날의 열정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철저하게 타인을 위해 살아보는 것이었다. 오랜 선발과정과 교육과정을 거쳐 베이징 변두리의 한 자폐아동교육학교로 파견이 결정됐다.

사실 출국 며칠 전 취소신청을 할까 망설이기도 했다. 같이 가기로 한 대원이 갑작스레 취소를 해버려 한국인이 한명도 없는 곳에 홀로 가게 된 것이다. 또 봉사활동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다. 1학년 때부터 조금씩 모아온 적금을 송두리째 다른 사람을 위해 쓴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세 이하의 가벼운 자폐증세 아이들을 교육시켜 증상을 완화시키는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던 파견기관의 정보는 엉터리였다. 자폐아동학교에는 ‘아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이들뿐이었다. 남학생 5명 중 4명은 키가 모두 180cm이 넘었고, 5명의 몸무게를 합치면 0.5톤을 가뿐히 넘었다. 1명인 여자아이마저 머리를 바짝 깎아놓은 데다 검게 탄 얼굴에 인상까지 잔뜩 찌푸리고 있어 인민해방군 청년 같았다. 겉보기에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이 아이들이 실제로는 15살에서 18살이었다.

자폐증상도 보통 자폐아들보다 훨씬 심했다.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간단한 인사말 등을 가르치기도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소변을 가리는 기본적인 교육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했다. 또 주위의 관리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돌발행동을 일삼았다. 자기 머리를 벽에 내리찧거나 창문을 주먹으로 깨뜨리려 하고, 이를 막으려고 하면 내 몸에 가래침을 뱉기도 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참을 만 했다 하지만 수십 번씩 반복해서 가르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의 허탈감은 정말 괴로웠다. 교육의 효과를 전혀 알 수 없이 반복되는 내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내가 과연 전 재산을 털어 쳇바퀴나 굴리려고 중국까지 온 것인가’라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렇게 5개월이 넘어갈 즈음 한 아이의 부모님이 들뜬 얼굴로 찾아와서 자기 아들이 얼마 전부터 집에서 한국 노래를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에게 틈날 때마다 ‘곰 세마리’ 동요를 불러주며 율동을 가르쳤는데 내 앞에서는 그렇게 하기 싫어하더니 집에서 혼자 잘 하더란다. 그리고 바지에 용변을 보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 말에 그동안의 눈물과 고생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쳇바퀴 같기만 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을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아이들에게 곧 헤어져야 한다며 "잘 가, 건강해" 라는 작별인사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 때 유난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나를 힘들게 했던 ‘펑화이’라는 아이가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다른 사람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아이의 눈물에 아이의 증상이 개선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현지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가족들이 나를 한국의 열심장(热心肠,뜨거운 심장을 가진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주며 전송했다. 나는 아직 열심장이라는 칭찬을 들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내 심장은 이제 겨우 미미한 온기를 띄기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온기를 띄기 시작한 내 심장을 점점 더 뜨겁게 달구고 싶다. 전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내 온기를 나눠주고 싶다.

2009. 10. 22
편집 서울대학교 홍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