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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읽은 책] 리빗의 별 - 김희준

2008.03.25.

과학자가 읽은 책 리빗의 별, 김희준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화학자인 내가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람 중에는 세실리아 페인이라는 여성 천문학자가 있다. 나는 10여년 전 사이언스지 서평을 통해 세실리아 페인을 알게 되었다. 핵분열 발견과 관련된 리제 마이트너, 이중나선 관련 로절린드 프랭클린, 중성자별 관련 조슬린 벨 등 노벨상급 업적을 내고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로 이미 잘 알려진 여성 과학자들의 리스트에 페인이 추가된 것이다.

러셀 등 당시 주요 천문학자들이 별의 주성분은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라고 믿고 있던 1920년 대 초에 영국에서 하버드로 유학온 페인은 별빛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별의 주성분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하버드 천문대 소장이었던 섀플리는 후일 신이 세상(world)을 단 한 마디의 말(word)로 창조했다면 그 말은 수소일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페인은 그 사실을 확인하는 첫발을 디딘 셈이다.

그러나 페인은 지도교수의 반대로 학위논문의 요지를 상당히 희석할 수 밖에 없었고 후일 모든 별과 은하의 주성분이 수소인 것이 밝혀지자 오히려 처음에는 반대했던 주류 천문학자들이 페인의 공을 상당 부분 차지했다. 페인은 하버드 천문학과의 1호 박사가 되었고, 하버드의 첫 번 여성 교수, 그리고 하버드 천문학과장이 되었지만 시대적인 여건 때문에 그녀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제때에 인정받지 못했다.

몇 년 전에 나는 사이언스지를 통해서 페인의 선배격인 또 하나의 여성 천문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리빗의 별”이라는 책(Miss Leavitt's Stars, George Johnson, Atlas Books, 2005)의 서평이 실린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페인이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교수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렸다고 한다면 리빗은 페인 못지 않은 위대한 업적을 내고도 박사학위도 없이 평생을 하버드 천문대에서 단순직에 종사한 경우이다. 이 책에 소개된 리빗의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나는 요즘 신입생 세미나에서 이 책의 요약을 통해 리빗의 일생과 리빗의 법칙, 또 리빗의 법칙을 통해 얻어진 허블의 법칙, 그리고 허블의 법칙이 말해 주는, 수소의 고향, 빅뱅 우주를 이야기하고 멋진 문장은 같이 외우기도 한다.

영국에서 뉴잉글랜드의 플리머스로 건너온 청교도의 후예답게 독립심이 강했던 페인은 지금은 하버드와 합쳐진 래드클리프의 학부를 졸업하고 천문학을 공부하려고 1893년 25세 나이에 하버드 천문대에 자원봉사자로 첫발을 드디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하버드 야드에서 가까운 한 회중교회의 목사였다. 당시 하버드 천문대에는 컴퓨터라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10여명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남성 천문학자들이 찍어온 수많은 천체 사진들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단순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리빗에게 주어진 과제는 변광성이라는 좀 특이한 별을 찾는 일이었다. 변광성은 1일 내지 100일 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별이다. 리빗이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변광성의 밝기가 변하는 이유는 고사하고 대부분 별이 수소의 핵융합에 의해 빛을 낸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핵융합 과정에서 질량의 일부가 에너지로 바뀌는 원리를 제공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 나온 것은 10년도 더 지나서이다.

리빗은 언뜻보면 아무 의미없는 것 같은 이 따분한 일에 열과 성을 다해서 매달렸다. 이 책에는 리빗의 자세에 관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들이 여러군데 나온다: "별의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기록된 일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No diary has been found recording what it was about the stars that moved her)." "천성적으로 마음에 햇빛이 넘쳐서 그녀에게는 인생 전체가 아름답고 의미로 가득찬 것이었다 (possessed of a nature so full of sunshine that, to her, all of life became beautiful and full of meaning)."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연필을 들고 별에 관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리빗의 사진을 보면 수 많은 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배후에 숨어 있는 조물주의 의도를 찾으려는 듯한 그녀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수 년 간의 방황기를 거쳐 1908년에 40세의 리빗은 “마젤란 성운의 1777개 변광성”이라는 보고서를 하버드 천문대 연감에 발표했다. 1777개의 변광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녀는 도대체 몇 개의 별을 조사한 것일까? 그 하나하나의 별이 변광성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몇 차례나 그 별의 광도를 측정하고 분석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두 장의 사진이 들어 있고 도표만 15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의 말미에 서 리빗은 16 개의 변광성을 따로 표에 정리하면서 "변광성이 밝을 수록 주기가 긴 것이 눈에 띈다 (It is worthy of notice that the brighter variables have the longer periods)."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저자 죤슨은 이 짤막한 문장을 왓슨과 크릭이 자신들이 제안한 구조가 유전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을 시사한다고 언급한 1953년 네이처의 이중나선 논문 말미의 문장과 대비시킨다 (It has not escaped our notice that the specific pairing we have postulated immediately suggests a possible copying mechanism for the genetic material).

변광성의 주기와 절대광도에 관한 리빗의 법칙은 멀리 있는 별과 은하의 거리를 잴 수 있는 표준잣대가 되었고, 리빗의 법칙을 사용하여 1920년 대에 수십 개의 은하를 발견한 허블은 1929년에 은하의 후퇴속도와 거리 사이의 비례 관계인 허블의 법칙을 발표하게 된다. 허블의 법칙은 우주의 팽창이라는 해석을 낳았고, 1965년에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면서 빅뱅우주론이 확립되어 페인이 발견했던 별의 수소가 결국은 137억 년 전 빅뱅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이 상식화 되었다.

리빗은 허블이 자신의 법칙을 통해 안드로메다 성운이 두 번째 은하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 2년 전 1921년 12월 12일에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섀플리는 리빗이 쓰던 책상을 페인에게 물려주었다. 몇 년 후 1925년에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한 수학 교수로부터 편지가 하버드 천문대에 도착했다. 그 편지에는 본인은 천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변광성에 관한 리빗의 법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녀를 1926년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리빗이 죽은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 편지는 소장 섀플리에게 전해졌고 섀플리는 리빗의 초기 관찰을 확장하여 주기-광도 관계를 확립하고 그로부터 은하수의 크기를 측정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답장을 보냈다. 섀플리는 노벨상 후보로 자신을 추천한 것이다.

1920년 리빗이 죽기 전 해에 호구 조사원이 평생 독신이었던 그녀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케임브리지 린네가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직업을 물었을 때 리빗은 천문학자(astronomer)라고 한마디로 대답했다. 20여년을 천문학자들이 찍은 사진을 분석하는 컴퓨터로 일한 그녀는 자신의 법칙이 천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줄 예견한 것일까?

리빗, 페인, 허블, 그리고 찬드라세카, 베테 등의 노력 덕분에 지금 우리는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자연은 빅뱅 우주에서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그리고 별들의 내부에서 수소를 융합하여 탄소, 산소, 질소 등 무거운 원소를 만들고 이들을 조합하여 별의 세계와 원자 세계의 비밀을 밝혀내는 과학자들을 만들었다. 원자가 원자를 드러내기 위해, 별이 별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된 셈이다.

이 인간이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파악해 가는 과정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을 밝혔고, 섀플리는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이 아닌 것을 밝혔다. 현대우주론은 팽창하는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 리빗의 별이 있는 것이다 (At the core lies Miss Leavitt's stars). 리빗의 별이 없다면 은하나 우주의 크기와 구조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